미탄우체국 전인호 집배원이 소개하는 어름치마을
5억 년 전 자연을 찾아가는 길
백룡동굴로 가려면 강원도 평창군 어름치마을을 지나야 한다. 어름치마을로 가는 길은 봄부터 짙어진 초록이 여름에 닿아 그 빛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강원도 평창과 영월, 정선을 굽이굽이 돌아 남한강으로 흘러나가는 동강에 위풍당당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백운산의 녹음이 물들어 강이 산인지, 산이 강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하여 어름치마을은 시선 두는 곳마다 한 폭의 수채화가 그려졌다. 동강 물길 100리 길 중 태고의 자연 신비와 비경을 간직한 어름치마을은 평창에서도 가장 아래에 위치해 있다. 해가 잘 드는 양지마을, 마을이 북서쪽을 향하고 있는 음지마을, 마하동쪽에 위치한 두리니마을, 백운산 서쪽 능선 아래 자리한 문희마을까지 4개의 마을을 일컬어 마하리 어름치마을이라고 한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 장평IC를 빠져나와 녹음이 짙어질 대로 짙어진 31번 국도를 타고 어름치마을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대형 어름치 조형물이 반겨준다. 어름치마을은 천연기념물 295호인 어름치가 다량 서식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 아마도 수억 년 전부터 지켜온 천혜의 자연환경 탓일 터. 동강의 맑고 푸른 저 물속에 그것들이 살고 있다는 것 자체로 이곳이 얼마나 맑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 짐작이 되었다. 어름치는 물론 동강에 서식하는 다양한 물고기들을 보고 체험할 수 있는 민물고기생태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마을로 들어섰다. 더러는 래프팅 여행자들을 위해 식당을 하고 더러는 민박을 하고 그러면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는 어름치마을 사람들. “동네가 조용해서 좋아요”라고 하자 주말이면 래프팅 하러온 사람들로 동네가 북적북적하단다. “어제도 엄청 왔다갔어요. 이제 본격적으로 래프팅할 때잖아요. 동굴 구경 오는 사람들도 많고 주말엔 바빠요.” 물 한병 사러 들어간 가게 주인장 노부부가 잘 알지도 못하고 찾아든 젊은 여행객에게 이러저러한 동네 이야기를 들려준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좋지. 동굴은 저기 저 길 따라가면 나올 거야. 우리 어릴 적에 거기서 참 많이 놀았는데. 놀이터였지 뭐….”
보존구간 D구역 대형광장. 안전과 훼손의 우려로 현재 B, C, D구간은 보존구간으로 미개방이다.
홈페이지를 통해 미개방구역 사진을 볼 수 있다. cave.maha.or.kr
보존구간 C구역의 석순과 석주, 종유석. 동굴 생성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드문 현상이다.
백룡동굴에서만 볼 수 있는 동굴 생성물들. 동굴방패, 종유석과 석순이 만난 기형 석주, 에그후라이형 석순, 동굴커튼. 5억년의 시간동안 만들어진 자연 예술작품이다.
동강이 숨긴 비경을 찾아서
병풍처럼 펼쳐진 동강을 따라 백룡동굴생태체험학습장에 도착했다. 운이 좋은 건지 어쩐 건지 평일 오후 2시 탐사객은 우리 일행뿐. 탐사 가이드는 운이 좋은 거라고 했다. 평소 같으면 시간대별로 20명 내외의 탐사객들이 들어가는데 지금 시간은 단둘이니 구석구석 살펴보기 좋을 거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안내에 따라 탐사복과 장화, 헤드랜턴, 장갑을 착용하는 것으로 탐사 준비를 완료했다. 거기서부터 또다시 10여 분을 걸으니 동굴로 오르는 입구가 보인다. 당시 영월과 평창을 오가던 절매나루터 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절매나루터는 뗏사공들이 뗏목을 세우고 하룻밤 쉬던 나루로 20~30년 전만 해도 주막이 있었다고. 이제는 뗏목을 넘겨주던 뗏사공들은 사라지고 나루터만이 지난 시간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동굴로 가는 문이 열리고 돌계단을 따라 발걸음을 내디뎠다. 몇 계단 오르지 않았는데도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다. 그렇게 돌계단과 안전을 위해 설치한 나무테크를 오르락 내리락 하며 백운산 해발고도 235m, 수면 위로부터 약 10~15m 지점에 위치한 동굴입구에 도착했다. 동강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지고 자연 그대로의 매력에 흠뻑 취해본다. 올해 처음 등줄기로 땀이 흐른다. 결코 짜증스럽지 않은 시원한 땀이었다.
동굴문이 열렸다. 밖의 온도는 섭씨 27도를 가리키고 있는데 동굴입구에 들어서자 시원한 냉기가 몸을 에워싼다. 백룡동굴 연중 평균 온도는 10~13도. 아무런 장치도 없는, 오로지 헤드랜턴과 탐사 가이드의 LED 조명에 의지해 점차점차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동굴의 사전적 의미는 ‘자연적으로 생긴 깊고 넓은 큰 굴.’ 자연적으로 생긴 만큼 그 모습도 제각각이니 한 동굴 안에서도 넓고 화려하며 웅장한 구간이 있는 반면 엎드려 기어가야 통과할 만큼 좁은 구간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동굴은 대체로 석회동굴과 화산동굴. 1976년 발견된 백룡동굴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회동굴로 물이 땅속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통로를 만들고 그 통로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넓어지고 변형되어 오늘날의 동굴이 된 것. 한방울의 물이 수억 년 전부터 흘러들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니 그 어떤 말로 설명한들 그저 신기하고 또 신기할 따름.
마을 사람들만이 드나들던 이 동굴은 1976년 동강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정무룡 씨에 의해 동굴의 주 통로 중간에 있던 주먹만한 좁은 통로(일명:개구멍)가 확장되고 이후 대대적인 학술조사가 이루어지고 지난 2010년 7월 국내에서는 최초로 탐사동굴로 일반인에게 오픈되었다. 오래 전부터 동네 주민들이 드나들던 동굴 초입구간에서는 아궁이와 온돌, 토기가 발견, 남아있는 숯을 감정하니 서기 1800년께 것으로 나타나 오래전부터 조상들이 거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2000년 동강댐 계획으로 수몰될 위기에 처했다 전 국민 반대운동으로 댐 건설이 무산되었다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어름치마을 풍경. 자연을 벗 삼으며 살아온 사람들, 더불어 자연과 함께 그들을 품고 있는 오래된 집안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동굴 탐사객. 자연이 만들어낸 믿지 못할 풍경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고.
미탄우체국 전인호 집배원
절대 어둠이 주는 자연 이치의 깨달음
훼손구간인 동굴 초입에서 10여 미터를 들어가자 호수로 연결되는 가지굴이 나타났다. 이곳에서 물고기를 잡기도 했다는 이야기로 이 동굴이 동강과 연결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실제로 장마철에는 이곳까지 물이 차 들어 탐사를 제한한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 들어가자 동굴 벽과 천장에 종유석과 석순 등 동굴생성물이 여기저기 눈에 띄기 시작했다. 동굴 생성물은 그 모양도, 색깔도 제각각 어느 것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땅의 성분이나 흘러든 수질에 따라 동굴 생성물이 가지각색으로 자란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동굴이 먼저 생기고 그다음 지형지물이 생기는 탓에 어떤 것은 암적색을 어떤 것은 오색빛으로 다르다고. 천장에 매달려 자라는 종유석, 바닥에서 위로 자라는 석순, 종유석과 석순이 맞닿은 석주 그리고 석화로 백룡동굴은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 없는 천상의 화원 같았다. 종유석에 매달린 물방울은 헤드랜턴에 반사되어 영롱하게 빛을 발했고 빛의 각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동굴 생성물들은 화려한 그 어떤 예술품에 비교할 것이 못 되었다. 발견 당시 이미 훼손되었던 구간을 지나면 백룡동굴의 신비로움은 절정에 이른다. 다랑이논 형태의 휴석, 유석, 국내 동굴 중 가장 긴 동굴커튼(11m), 베이컨시트, 동굴산호, 방패 등 다채로운 동굴 생성물이 마치 예술품의 전시장인 듯 진귀하게 펼쳐진다. 학술적 가치도 가치지만 자연이 수억 년에 걸쳐 만들어낸, 절대 어둠 속에서 펼쳐지는 이 아름다움에 그저 겸허해질뿐.
서서 걷다, 오리걸음으로 걷다 때로는 엎드리고 기어 1시간여를 들어가니 천장이 무너져 내리면서 형성된 넓은 광장이 나타났다. 막장이었다. 탐사 가이드는 자리에 앉아 조명을 끄라고 했다. 일종의 막장식. 빛 한줄기, 인공적인 조명 하나 없는 암흑, 절대 어둠이었다. 눈을 감으니 어디선가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뿐, 절대 어둠의 공포 대신 어떤 긍정의 울림으로 가슴이 채워지는 듯했다. 동굴 전체 유일하게 설치된 조명이 30초 간격으로 차례로 켜지고 자유의 여신상, 만물상 등으로 이름 붙여진 동굴생성물이 하나둘 펼쳐진다. 거슬러 올라가 셈하기도 어려운 4~5억 년 전 한방울의 물로 시작되어 형성됐을 백룡동굴. 2000년 당시 동강댐 사업이 추진되었다면 이 진귀한 자연이 만들어낸 위대한 모습의 흔적이라도 보았을까 싶다. 5억 년 전으로 떠난 여행, 두고두고 신비로울 터.
백룡동굴 생태체험학습장
1976년 정무룡 씨에 의해 발견, 1979년에 천연기념물 제260호로 지정된 백룡동굴. 2010년 7월 국내 최초 탐사형 동굴로 일반인에게 오픈된 백룡동굴은 조명과 사람 손에 의한 녹색오염과 흑색오염을 막기 위해 인공적인 그 무엇도 설치하지 않았다. 미끄럼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발판, 막장에 4~5개의 조명이 전부다. 현재 개방된 A구간 785m의 주굴과 미개방 가지굴 B, C, D구간 1875m. 인터넷 예약과 현장 티켓구매로 탐사가능하며 전문 동굴 탐사 가이드가 설명을 해준다. 시간대별 탐사객을 20명 내외로 제한하니 사전 전화문의하면 좋다. 10살 이상 65세 미만 입장 가능하다.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문희길 63(산82번지) 033-334-7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