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열혈청춘 두 남자의 아주 특별한 여행
울산 간절곶우체국 배경만 대리, 최문태 집배원이 소개하는울산 대왕암
선입견이란 참 무섭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공업도시로 각인된 울산, 누가 이곳을 여행지 목록에 선뜻 올려놓을까. 왠지 울산에 가면 각종 공해에 시달리다가 더욱 피폐해져서 나오게 될 것만 같은 걱정이 앞선다.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언컨대 오해에서 빚어진 기우다. 의외로 울산은 생태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춘 곳이자, 수많은 경승을 품고 있는 매력적인 여행지다.
젖줄인 태화강에는 황조롱이와 백로 따위가 무시로 날고, 연어가 거슬러 올라온다. 강변의 십리대밭은 가벼운 바람에도 사르르 노래를 한다.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암각화를 찾아가는 길은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진경으로 맞이한다. 병풍처럼 펼쳐진 기암괴석과 이리저리 휘돌아 흐르며 크고 웅장한 그림을 그리는 계곡, 그곳에 전설의 고래가 산다. 가지산(1,241m)을 중심으로는 영남알프스가 펼쳐진다. 가을이면 억새군락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칠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울산에는 새벽 정취에 누구나 취하고 마는 대왕암공원 솔숲과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어 하하호호 즐거운 야음동 신화벽화마을,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간절곶이 있다. 30대 열혈청춘 간절곶우체국 배경만 대리와 최문태 집배원 두 남자의 마음을 듣는 장소로는 이들 만한 곳이 없을 듯 했다.
울산 야음동 신화마을. 오래되었다고 갈아엎고 부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마을 사람들은 말한다. 작은 변화를 통해 삶의 활기를 찾고 의미를 찾는 것, 신화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과거와 현재를 살고 있었다. 각자의 삶의 활기를 그려 넣으며.
새벽의 바닷가 솔숲에서 나를 찾는다
장마 기간 내내 안개에 허우적대던 대왕암공원은 비구름이 걷히자, 하늘인지 바다인지 분간 못 할 푸름으로 유혹한다. 어느 계절 어떤 시간에 찾아도 좋은 곳이지만, 새벽을 틈타 대왕암공원으로 향한다. 어스름의 기운이 남아 있을 때 이 공원의 솔숲은 넘치는 피톤치드로 가슴의 근심을 말끔히 게워낸다. 대왕암공원은 본래 울기공원으로 불리던 곳이다. 1906년 이곳에 울기등대를 설치하면서 조성된 울산 최초의 공원이다.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등대는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106호로 지정되어 있다. 바다의 길잡이로서 역할은 그 옆 최신 등대에게 넘겨주고 다만, 울기등대는 공원을 찾는 이들을 위해 4D 입체영화관과 선박조종체험관으로 기능을 하고 있다.
대왕암공원은 바다에 섬처럼 박혀 있는 기암들과 해송군락이 조화를 이루며 멋진 풍경을 완성한다. 이름 때문에 경주 감포의 수중릉인 문무대왕릉과 혼동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동떨어진 자리에 있지만, 두 곳이 아주 연관이 없는 것도 아니다. 삼국통일을 완성한 신라의 문무왕이 영원한 잠에 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왕비도 세상을 떠났는데, 그녀의 넋이 한 마리의 용이 되어 날아든 바위가 울산 동구 일산동 해안의 대왕암이라 전한다. 그 전설 탓인지 대왕암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자못 상서롭다. 수많은 바다의 기암들 중에서 구름다리로 연결된 가장 큰 바위가 대왕암인데, 댕바위나 용추암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두 남자는 솔숲산책로를 따라 대왕암으로 걸어갔다. 입구에서부터 대왕암까지 약 500m쯤 솔숲길이 이어졌다. 오른편으로 태양이 솟아오르며 흩뿌린 빛에 바다가 황금처럼 빛났다. 같은 우체국에서 매일 마주치는 두 사람은 애써 말을 꺼내지 않았다. 사실 이 숲은 침묵으로 소통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곳이다.
1만500여 그루의 해송이 뿜어대는 알싸한 향기는 머리를 맑게 하며 심신의 안정제 역할을 했다. 묵직한 새벽의 공기가 일반적으로 피톤치드라고 일컫는 그 향기를 꾸욱 눌러 내리면서 오래도록 숲에 붙잡아 두었다. 세상과 미래에 대한 꿈이 누구보다 큰 시기가 30대다. 일에 대한 포부와 미래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두 사람은 무엇보다 사랑을 갈구하지만, 때때로 만난 암초로 인해 알게 모르게 생채기가 많이 났다. 충만한 피톤치드의 솔숲에서 두 사람은 모처럼 오랜 시간 스스로를 돌아보며, 그 아픈 구석구석을 어루만졌다.
울산 간절곶. 소망우체통에 저마다의 소망을 적어 소식을 전하러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간절곶우체국 배경만 대리, 최문태 집배원도 모처럼 자신들의 소망을 적어 넣었단다. 그 소망 이루어지길.
비록 내 몸은 추레하나 젊고 새로운 꿈을 꾼다
솔숲을 나와 남구 야음동 신화마을로 길을 잡는다. 아름다운 동화와 흥미로운 전설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벽화마을이다. ‘2010 마을미술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곳 174번지 일대에 벽화거리가 조성되고 있다. ‘이강준공공미술연구소’가 지휘하는 벽화작업은 본래 지난해 말까지 모두 끝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사업도 커져서 요즘도 그림 작업이 한창이다.
신화마을은 1960년대 울산석유화학공단이 들어서면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이주해 정착한 마을이다. 야트막한 언덕바지에 집들이 더덕더덕 붙어 있다. 도시계획의 입장에서 보자면 불량노후 주택들이다. 그러나 갈아엎고, 부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신화마을은 항변한다. 사실 ‘도시는 번듯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대한민국의 경겨운 골목과 오래된 집들이 사라졌다. 그것은 곧 추억이 설 자리를 빼앗아 갔다.
통영의 동피랑이나 청주의 수암골처럼 벽화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신화마을에 새 기운을 불어 넣었다. 조용히 늙어가던 마을은 회춘이라도 한 것처럼 활기가 돌았다. 곱게 화장을 한 담벼락을 보노라니 그저 기분이 즐거운 주민들이다. 상호가 ‘구멍가게’인 동네슈퍼 안주인 김남주 할머니는 “벽화가 마을사람들 얼굴에 꽃을 피웠다”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장사가 잘 되니 더욱 기분이 좋은 김 할머니다.
알록달록한 마을의 벽화를 모두 즐기지만, 동네 개들은 불만이 크다. 어느 집에 사는 누구의 발자국소리인지 모두 기억하던 개들은 끊임없이 벽화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낯선 이들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고 목이 쉴 지경이다. 그러니 이해해야 한다. 녀석들이 경계의 기운을 품고 컹컹 짖어대더라도 말이다.
암각화의 골목, 채색의 골목, 착시의 골목, 동심의 골목, 만화의 골목 등 마을의 뼈댓길에서 뻗어나간 가짓길들은 두 남자의 걸음을 자꾸만 붙잡았다. 울산에 살지만 소문으로 들어서 알 뿐, 처음 와 본다고들 했다. 신기한 듯 두리번두리번,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항상 평탄하고 순조롭게 인생의 항해를 해나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살다보면 언젠가는 큰 파도를 만나고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가 있다. 둘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신화마을은 결코 좌절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허물어진 것은 다시 세우고, 빛바랜 벽에는 즐겁고 가치 있는 그림을 그리며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면 된다고 신화마을은 말한다.
울산 대왕암공원. 전설을 간직한 바다를 향해 가는 길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솔숲도 지나야 하고 기암절벽도 지나야 한다. 눈앞으로 펼쳐지는 바다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삶의 열정을 한순간에 일깨워준다.
해가 처음 뜨는 바다에서는 내게 엽서를 쓰고 싶다
각별한 의미의 바다들이 있다. 마지막 들른 간절곶도 그중 하나다.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에 자리한 이 바다는 매년 1월1일 기준으로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다. 경도상으로는 포항의 호미곶이 129도 24분 3초로 간절곶의 129도 21분 50초보다 더 동쪽으로 나가 있다. 그러나 간절곶은 호미곶보다 약 1도 2분 정도 위도가 낮다. 두 지역은 경도에서 거의 비슷하고, 위도에서 1도 이상 차이가 나는 셈이다. 겨울철에는 경도보다 위도가 해오름 시간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이유로 간절곶은 호미곶보다 신년 해오름이 1분가량 빠르다.
간절곶에는 커다란 소망우체통이 세워져 있다. 1970년대 체신부에서 사용한 추억의 우체통 모양이다. 2006년 12월22일 세워진 이 우체통은 높이 5m, 가로 2.4m, 세로 2m로 초대형이다. 만드는 데만 무려 7톤의 강철이 소요됐다. 이 우체통은 단지 모형으로 세운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평소에 연락하고픈 사람에게 따뜻한 마음을 동봉한 엽서를 보낼 수 있도록 고안된 우체통이다. 집처럼 문이 있고, 그것을 열고 들어가면 엽서가 비치된 선반이 있다.
이번 여행을 함께한 최문태 집배원은 소망우체통의 엽서들을 매일 수거하는 사람이다. 평일에는 40통 정도, 주말 치까지 쌓이는 월요일에는 그 3~4배를 수거한다. 두 남자와 함께 그곳을 찾은 날, 한 노인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우체통에서 나오고 있었다. 어떤 사연을 누구에게 부쳤기에 슬픔이 복받쳤던 걸까.
소망엽서를 취급하는 두 남자. 이날만큼은 엽서의 주인공이 되어 보고 싶었다. 수취인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 말하자면 다짐의 엽서였다. 여행을 마무리하며 둘은 소망우체통 속으로 들어가 엽서에 한 자씩 또박또박 적었다. “조금 더 힘내고, 앞으로도 더욱 떳떳하게 살아가도록 하자….”(배경만) “오늘 흘린 땀이 내일을 더욱 밝게 할 거야. 파이팅이다….”(최문태)
관광통신일부인으로 여행을 특별하게 기억하는 것도 좋은 방법. 울산에 갔다면 서생진하우체국에 들러 울산진하해수욕장, 간절곶등대 관광통신일부인을 찍어 남겨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