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우체국 이창규 운영실장, 박상온 집배원과
함께 걷는 갈대밭길
낙안읍성 사람들은 여전히 옛것을 지키며 현재를 살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 했어도 낙안 사람들의 삶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시간이 멈춘 곳,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전라남도 광주에서도 자동차로 한 시간은 더 가야 순천땅에 다다른다. 5시간을 내달려 도착한 남도 순천은 어느새 높아진 하늘 아래 오곡백과가 익어가고 있었다. 어머니의 품처럼 모든 것을 내어주는 남도 여행은 언제 찾아도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 풍요의 땅 순천에 도착해 낙안면에 위치한 낙안읍성 성문을 지나 마을에 들어섰을 때, 마치 시간이 과거로 흐르는 듯했다. 이곳이 현재의 내가 사는 시간과 같은 시간인지 그저 휴대폰의 시간을 확인하고 또 했다. 낙안읍성은 예나 지금이나 초가집에 옛것들을 지키며 살아가는 곳. 여느 민속촌처럼 옛것들을 재현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선인들이 살았던 그대로의 땅에서 낙안읍성 사람들은 삶을 일구고 있었다. 편리하고 화려한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건만, 이곳 사람들은 조선시대 그대로의 소박한 멋을 가꾸고 또 우리가 옛날 것이라고 하는 것들을 지금까지 온전히 지키며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길이 1410m의 견고한 석성에 둘러싸인 낙안읍성은 본래는 태조6년(1369년)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김긴빌 장군에 의해 토성으로 지어졌었다. 그러다 1626년 낙안군수로 부임한 임경업 장군에 의해 석성으로 다시 개축되었다고 전해진다.
낙안읍성은 동문과 서문을 연결하는 대로의 북쪽으로 동헌과 고을 수령의 숙소인 내아와 외지 손님을 맞던 객사가 위치해 있다. 대로 남쪽엔 초가집과 대장간, 장터, 서당, 우물 등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120여 초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이 그저 정겨워 급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성문 입구부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낙안읍성 입구에는 개를 형상한 조각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석구들은 원래는 낙안읍성을 둘러쌓고 있는 산의 기운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처음엔 세 마리의 석구가 마을 어귀에 있었는데 현재는 두 석구만이 남아있다. 동문을 지나 동헌으로 향했다. 동헌은 조선시대의 지방관아로 나라의 행정을 보던 곳. 그 옛날 한양의 모습을 본떠 조성한 것처럼, 뒤로는 금전산이, 앞으로는 광장이 있어 그 모습이 마치 청와대와 광화문광장과 닮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낙안읍성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지방계획도시.
낙안의 초가들은 대부분이 사유지다.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드는 여행객들로 인해 불편할 일이 어디 한둘일까마는, 그저 웃는 얼굴로 여행자들을 맞아준다. 사진 몇 장 찍으려고 대문 밖을 서성이는 여행자를 기꺼이 마당 안으로 불러 시원한 물잔을 건네시던 할머니는 ‘뭐 볼게 있느냐’며 타박 아닌 타박을 하셨어도 막내딸 대하듯 그렇게 반겨주셨다. 미로 같은 마을길을 따라 걷는 것도 운치 있지만 낙안읍성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성곽길을 따라 걷는 것이 제일 좋다. 높이 4~5m, 폭 2~3m인 성곽길을 따라 걸으면 낙안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문쪽으로 난 계단을 따라성곽에 오르면 더 깊게 마을을 들여다볼 수 있다. 둥근 초가지붕은 주변의 산세를 닮았고, 미로 같은 돌담엔 단풍이 물들어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절로 편안해진다. 성곽을 돌아 다시 마을로 내려오자 어디선가 남도소리가 들려온다. 소리에 이끌려 마을길을 거닐며 무에 그리 바삐 살았는지 새 계절을 맞이하며 또 지나 보낼 계절의 지난날을 한순간 한순간 되짚어본다.
삶을 사는 사람들의 배경이 되는 곳
낙안읍성에서 느려진 발걸음이 순천만에 닿아 더욱 느려진다. 발걸음에 맞춰 호흡도 느려지고. 가을여행이 주는 어떤 여유로움이라 여기며 이 순간을 즐겨야지 마음먹는다. 언젠가 여행을 좋아하던 선배가 술만 마시면 순천만에 가면 헛헛한 마음이 꽉 차는 것 같다고 했다. 순천만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와온마을 여자만에 당도하면 붉은 석양에 마음이 벅차다고 그렇게 입버릇처럼 말하며 지금 당장 떠나자며 취기를 부리곤 했었다. 그런 비슷한 기운이 스멀스멀 내 안에서 꿈틀거린다. 3km에 달하는 물길을 감싸고 있는 갈대군락, 오래된 자기 자리인양 갯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철새들을 바라보자니 조금씩 마음이 채워지는 기분이다.
“가을 겨울이면 새들의 천국이죠. 마음이 허전할 때, 일상에 지칠 때 혼자서 조용히 찾아와 잠시 쉬다 가곤 했었죠. 지금은 정비를 해서 편의시설도 들어서고 산책하기가 아주 좋아졌습니다. 그래도 그 옛날 불편하고 조금 거친 순천만이 더 좋았습니다. 여름이면 초록으로 물들었고, 가을이면 누렇게 물든 갈대밭을 걸으면 마음이 아주 편안해지죠.” 순천우체국 이창규 운영실장이 느린속도로 걸음을 옮기며 지난날의 순천만을 이야기한다.
“순천만이 생태보존지역이잖습니까? 허가받은 사람들 아니면 낚시가 불가하니 물고기도 많고 갯벌에 사는 생물도 다양하지요. 저희 아이들 어렸을 적에 데리고 오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순천시민 중에 순천만에 얽힌 기억 하나쯤은 누구나 있을 겁니다.” 박상온 집배원은 어린 자녀들과 함께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행복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두 사람의 말대로 순천만은 순천사람들에게나 외지사람들에게 가진 것을 다 보여주며 품어 주었던 곳. 순천만의 이러한 뛰어난 자연경관은 많은 예술가들의 창작혼을 불태웠기도 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 정채봉의 ‘오세암’ 등이 이곳 순천만을 배경으로 태어났다.
갯벌의 주인은 물때마다 바뀐다. 때론 마을 사람들의 치열한 생계의 터전이기도 하고, 때론 철새들의 안방이 되기도 한다. 순천만은 사람에게나 철새들에게나 저의 자리를 내어주는 그런 넉넉하고 푸근한 바다이자 땅이자 자연이다.
수천 년 자연이 만든 장엄함
순천만은 수천 년에 걸쳐 바닷물과 강물이 오가며 풍요로운 갯벌을 만들었고 그 갯벌에 뿌리를 내린 갈대는 오랜 시간을 두고 200만 평 넘게 퍼져 나갔다. 짱뚱어를 비롯한 칠게, 방게, 맛조개 등 30여 종의 생물이 멸종된 것 없이 살고 있으며 200만 평 갈대군락은 국제적인 습지조약인 람사르조약에 등록될 정도로 세계적으로도 가치 있는 곳이다. 순천만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용산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용산은 용이 하늘로 오르려다 순천만의 풍경에 매료되어 그대로 머물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산. 배들이 드나들었던 대대포구 무진교를 건너 갈대밭으로 향했다. 나무테크가 잘 정비되어 있어 어린아이부터 노인들 누구라도 편히 걸을 수 있도록 말끔히 정비해둔 덕에 큰 불편 없이 갈대밭을 지나 용산전망대로 갈 수 있다. 나무테크가 끝나는 지점, 용산전망대 안내판이 보인다. ‘유모차도 갈수 있다’는 안내문구가 보이니 어쩐지 마음이 가볍다. 그러나 늘 운동 부족에 시달리는 여행자는 얼마 가지 못해 숨을 헉헉거리고 동행하던 이의 등줄기도 어느새 땀으로 축축이 젖었다. 10분쯤 걸었을까? 두 갈래의 길을 마주했다. ‘다리아픈길’과 ‘완만한길’. 다리아픈길은 직선코스라 시간이 단축되는 장점은 있지만 말 그대로 다리가 아프고 힘들다. 그럼에도 굳이 다리아픈길을 택해 길을 오른다. 경사가 제대로 느껴지는 계단으로 이어진 길을 지나고 울창한 소나무숲길을 20여 분쯤 걸었을까, 용산전망대에 이르렀다.
실제로 보는 순천만은 사진으로만 봤던 풍경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S자 물길을 따라 오가는 고깃배와 생태체험선, 이따금 날갯짓하는 새, 붉은 칠면초와 이제 막 누렇게 물들기 시작한 갈대군락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가 되어 마음을 사로잡는다. 황홀지경에서 헤어나올 무렵, 사진 동호회에서 출사 나온 노인 한 분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다. 그 노인은 지금까지 살아온 중 몇 안 되게 본 최고의 풍경이라고 했다. ‘언제 또 이런 풍경을 볼까’라며 오랜 시간 긴 여운을 담아 셔터를 누르고 또 눌렀다.
S자 물길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일몰이 시작되면 순천만은 장엄해진다. “어디 가서도 이만한 낙조를 본 적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최고지요. S자 물길에 붉은 해가 떨어지면 무아지경입니다. 힘든 일 잊고 장엄한 풍광에 위로를 받지요.” 이창규 실장과 박상온 집배원이 해질녘의 순천만을 떠나지 못하고 그 멋진 풍경에 빠졌다.
해는 지고 다시금 순천만에 어둠이 찾아왔다. 온종일 사람들을 품었던 순천만도 이제쯤 휴식의 시간일 터. 내일이면 또 찾아드는 여행자들을 위해 갈대밭을, 긴 물길을 내어줄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순천만에 위로를 받고 또 살아갈 힘을 얻을 테고. 순천만은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수천 년을 또 흐릴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우리 모두의 다음 세대를 위해서. 남도 땅 순천만은 그래야 한다.
순천우체국 이창규실장, 박상온 집배원
자연으로의 여행은 언제나 가슴이 벅차다. 순천만 여행 후 순천남정동우체국에 들러 관광통신일부인을 찍었다. 순천만 자연여행이 더 특별하게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