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우체국 김동석 집배원과
함께 떠나는 미각여행
남다른 젓갈 맛 비밀 간직한 곰소염전
곰소항은 변산반도의 남서쪽에 자리한 줄포항의 대안으로 만들어진 항구다. 곰소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줄포항이 점점 쌓이는 토사로 인해 수심이 낮아지면서 항구로서 기능이 위협받자 일제가 눈을 돌린 곳이 바로 곰소항이다. 군산항이 그랬던 것처럼 곰소항 역시 농수산물들을 밀반출하기 위한 통로였다. 지금은 이곳도 수심이 낮기로는 줄포와 마찬가지여서 작은 어선들만 분주히 오갈 뿐이다. 1987년 하루 두 차례씩 위도를 오가던 정기여객선도 1989년부터는 격포항으로 항로를 바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곰소항으로 향하는 이들의 발걸음은 전혀 줄지가 않았다. 그 이유는 젓갈에 있다. 곰소에는 젓갈집들이 한 데 모여 거대한 단지를 이루고 있다. 곰소젓갈은 짜지 않고 달다. 소금에 그 맛에 비밀이 숨어 있다. 곰소항 앞에 부안 사람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는 염전이 있는데, 여기서 난 소금이 아주 품질이 좋다. 곰소염전은 일제가 곰소항을 건설할 당시 함께 만들어졌다. 곰소항에 집결되는 수산물을 일본까지 변질되지 않게 가져가려면 소금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의 것은 지금처럼 태양의 열기로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생산하는 천일염전이 아니라 장작불을 떼어 소금을 얻는 자염전이었다. 천일염전으로 바뀐 것은 광복 직후의 일이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소금창고들은 모두 1946년에 지어졌고, 염전도 천일염으로 전환됐다. 곰소의 염전은 약 15만 평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다. 신안이나 영광 등지의 것들이 워낙 거대한 탓에 비교당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면적이 아주 작은 편도 아니다.
염전의 소금창고는 건물의 밑이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사다리꼴 형태를 띠고 있다. 세월에 주저앉은 게 아니라 애초에 그렇게 설계되었다. 소금을 한가득 쌓아두면 측벽과 하부로 어머어마한 하중이 실린다. 벽면을 수직으로 세웠을 때는 그 힘을 오랫동안 버틸 수가 없다. 벌써 65년이나 된, 그것도 나무로 지은 건물들이 아직까지 생생한 것은 과학에 바탕을 둔 지혜 덕분이다.
한껏 입맛 돋우는 바다의 선물들
곰소염전에서 나는 소금은 간수의 염분 비중을 정확히 25도에 맞추어 생산한 것들이다. 아주 짠물을 가두어 소금을 만들면 보다 많은 양을 빨리 생산할 수 있겠지만, 이 경우 소금이 써진다. 곰소염전에서는 간수를 수시로 교체함으로써 소금의 짠맛과 쓴맛의 황금비율을 찾았다. 그러니 이 소금으로 담은 젓갈의 맛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비 때문에 여름농사를 망쳤다는 염부는 그래도 가을로 넘어오면서 날이 좋아 다행이란다. 새벽부터 그의 걸음은 분주하다. 통 트기 훨씬 전에 일어나 염전에 바닷물을 갈아 넣고, 지난밤 자정까지 작업을 했어도 다 담지 못했던 소금을 창고로 옮기다 보면 오전 10시를 훌쩍 넘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그의 일은 햇볕에 소금이 익어 단단한 결정을 맺는 오후 서너 시경 다시 시작된다. 소금보다 더 짠 땀방울이 온몸에서 줄줄 흐른다.
곰소염전에서 난 소금으로 담은 젓갈은 그 종류만도 10가지가 넘는다. 생이젓(토하젓), 꼴뚜기젓, 가리비젓, 갈치속젓, 청어알젓, 황석어젓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젓갈들이 입맛을 돋운다. 곰소항 앞에는 그 맛좋은 젓갈들로 마음을 잡아채는 매장들이 즐비하다. 뒤편으로는 젓갈정식을 파는 식당들이 줄지어 있다. “옛날에는 어머니께서 재료를 모두 단장해서 담으셨죠. 요즘이야 어디 누가 손수 젓갈을 담나요. 그래도 우리야 곰소가 있으니까 참 좋죠. 어머니 손맛만큼이야 하겠습니까만 여태껏 곰소젓갈만한 것을 다른 곳에서 먹어보지 못했어요.” 김제에서 근무하다가 10년 전 고향인 부안으로 돌아온 부안우체국 김동석(55) 집배원은 가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에 잘 삭은 젓갈을 올려놓고 밥 한 공기 뚝딱 비우던 옛 시절이 그리울 때면 곰소항 젓갈단지를 찾노라고 했다. 곰소항을 슬쩍 돌아보노라니 입맛을 자극하는 구수한 향기가 어디선가 흘러나온다. “전어를 굽나 봐요. 그러고 보니 지금이 전어철이네요. 칼집을 잘게 낸 후 노릇하게 구워서 뼈째 먹으면 그만이죠. 참 요즘 위도 부근에서는 게와 대하, 바지락도 나요. 옛날에는 백합이 그렇게 지천이었는데, 씨알이 작아진 편이에요. 채취량도 줄었고요. 바지락은 정식으로 내는 집들이 많은데, 아주 별미에요.” 김 집배원의 변산 맛자랑은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름 내내 내린 비 탓에 염전밭이 걱정이었지만 다행히도 가을볕이 좋아 그나마 염부들의 시름을 덜어주고 있다. 곰소 소금은 그 짠맛과 쓴맛의 황금비율로 젓갈의 감칠맛을 더해준다고.
치유의 숲길을 가다
곰소에서 젓갈맛을 콕콕 집어가며 제대로 보고는 내소사로 향한다. 곰소 바로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 내소사는 전나무숲길과 꽃살창으로 유명하다. 내소사 전나무숲길은 가히 ‘치유의 숲길’이라 부를 만하다. 잃어버린 여유를 되찾게 해주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느림의 미학’이 꽃 피는 곳이다. 머리가 가리키는 대로 몸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몸이 그저 길에 반응한다. 일주문까지 약 600m가량 이어진 전나무숲길은 생각을 정리하기에 딱 적당한 거리다. 가슴의 묵은 때까지 씻어주는 청량함이 숲길에 들어서는 순간 느껴진다. 바쁠 것 없는 걸음. 천천히 발길을 옮기며 숲의 향기를 만끽해본다. 숲길을 지나 닿은 내소사는 흑백사진처럼 다소곳이 앉아 있다. 마치 들꽃 같다. 수더분한 게 화려하지 않지만 정감이 가는 모습이다. 찬바람이 불면 주위의 나무들이 잎을 다 떨구고 비릿한 순수의 몸으로 돌아가듯 내소사의 건물들도 단청을 벗은 속살이다. 누군가는 그것이 초라하다 할지도 모르겠지만, 애써 치장하지 않는 본모습이 아름다운 것은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다. 능가산 가선봉 기슭에 자리한 내소사는 백제 무왕(633년) 시절 지어진 유서 깊은 절이다. 그 긴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보물들이 이 사찰에 있다. 고려시대 만들어진 동종과 3층석탑이 절마당에 자리하고 있고 대웅전이 그들을 굽어보고 있다. 꽃살무늬창이 있는 곳이 대웅전이다. 창에는 결코 지는 법이 없는 연꽃과 국화꽃이 활짝 피어 있다.
변산반도는 산과 바다 모두가 아름다운 곳이다. 변산은 내변산과 외변산으로 나뉜다. 내변산은 변산의 중심 산악지대. 외변산은 내변산을 감싸고 있는 서쪽 해안지대를 일컫는다. 내변산은 산악지대라고 해봐야 그리 높은 산이 없다. 가장 높은 의상봉이 508m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풍모만은 빠지지 않는 호남의 5대 명산에 당당히 든다. 내소사를 품은 곳은 내변산에 든다. 봄이면 홍매화가 예쁜 개암사도 내변산의 명찰이다.
부안우체국 김동석 집배원
모항마을, 솔섬, 내소사, 월명암 낙조대로 이르는 길은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기에 충분하다. 바쁜 도시생활에 지쳤다면 한번쯤 쉬어가기 좋은 장소. 입맛 돋우는 젓갈에 흰쌀밥이라도 든든히 먹는다면 삶이 그렇게 삭막하지도 않을 것이다.
산행의 수고로움이 전혀 아깝지 않은 월명암 낙조대
이미 곰소를 들렀다 나오긴 했지만, 외변산을 도는 것은 아주 늦은 오후 녘이 제시간이다. 해거름을 앞둔 1시간 전부터의 외변산에서는 마음이 속절없이 무너진다. 멀리 외변산 남서쪽의 줄포에서부터 시작해 해안을 끼고 북으로 올라가는 길에 알알이 달린 풍경들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 황금처럼 빛나는 모항의 갯벌에서는 잠시 멈추고 뒹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모항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포구 옆에 드라마 촬영 시 썼던 판옥선 세 척이 정박되어 있다. 갯벌은 썰물이 되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게 드러난다. 길은 궁항으로 이어지는데, 구불구불 휘고 도는 것이 아주 매력적이다. 도중에 전북학생해양수련원 앞을 지난다. 해거름 명소로 자자한 솔섬이 이곳에 있다. 호젓하고 낭만적인 해거름을 원한다면 여기가 제격이다. 자그마한 섬에 소나무 몇 그루가 서 있어서 솔섬이라 불리는데, 그 주변에 누가 매었는지 모를 조각배 하나가 항상 떠 있다.
채석강이나 적벽강도 해거름의 장소로는 그만이다.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 절벽이 높이 솟은 채석강에는 파도의 침식작용에 의해 생긴 해식동굴이 여러 개 있다. 물때가 맞는다면 이 안에서 바다와 해를 가두고 어둠을 맞이하는 것도 좋겠다. 채석강에서 북으로 1km가량 떨어진 적벽강은 백사장이 드넓다. 맨발로 모래의 감촉을 느끼며 걷다가 해거름에 취하면 된다. 하루의 시간이 더 있어서 월명암으로 향한다. 꼬박 1시간 30분쯤 산행을 해야 하지만, 그 수고로움이 전해 아깝지 않다. 월명암은 통일신라(692년) 시절 창건된 사찰이다. 월명암으로 올라가는 길은 내변산탐방지원센터나 내소사 쪽도 있지만, 남녀치공원지킴터 쪽이 가장 짧다. 월명암에서 10분 거리에 낙조대가 있는데, 여기에 서면 외변산 전체가 한눈에 펼쳐진다. 월명암에 미리 묵어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으니, 내려갈 걱정 없이 느긋이 그 풍경을 즐긴다.
변산반도 여행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면 부안격포우체국에 들러 관광통신일부인을 찍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