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우체국
김남규 집배원과 함께하는 주왕산
오랜 역사와 이야기가 전해지는 주왕산과 산중호수 주산지는 태곳적 자연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새벽어둠 물안개 피어오르는 주산지는 신비로운 황홀지경이다.
태곳적 신비의 황홀지경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를 빠져나와 34번 국도를 타고 안동을 거쳐 구불구불 고개를 넘어 청송 주산지로 향하는 길에는 새벽안개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검푸른 어둠, 인적 없는 도로… 어쩐지 두려운 생각도 들지만 반드시 봐야 할 것이 있기에 찾아든 두려움을 털어내고 목적지를 향해 또 한번 느려진 자동차 속도를 올린다. 지금이야 길이 좋아졌다지만 그 옛날에는 인적이 끊긴 산길을 수백 리 걸어 하늘과 맞닿은 고개를 넘고 깊은 계곡을 따라 하염없이 걸어야만 이르던 곳이 바로 청송 주왕산이요 주산지였다.
새벽 6시 30분. 서울에서부터 4시간을 쉼 없이 달려 도착한 청송군 부동면 주산지 주차장은 아직도 검푸른 어둠이 그대로였으나 이미 여러 대의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누군가 더 앞서 어둠을 헤치고 산중호수로 올라간 모양. 주왕산은 신라 말 당나라 주왕이 은거하였던 산이라 하여 주왕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산 남서쪽으로 300년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산중호수 주산지가 있다. 은밀하게 산중에 숨어 있는 주산지는 조선 경종 1720년에 만든 농업용 저수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바닥을 들어낸 적 없다는 이 호수는 처음 만들어진 때부터 지금까지 청송 사람들이 믿고 의지하던 생명수 같은 저수지다. 아직도 농사철이면 물을 대주고 주산지 아래 마을 사람들은 그런 주산지를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 해마다 호수 주변을 정리하고 동제를 지내며 태고의 자연을 지켜가고 있다.
‘둑을 쌓아 물을 막아 만인에게 혜택을 베푸니, 그 뜻을 잊지 않도록 한 조각 돌을 세운다’라고 쓰인 석비를 지나면 노랗고 붉은 물이 든 울창한 숲길이 이어진다. 새벽이슬을 머금은 숲길은 나무냄새 풀냄새 흙냄새가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15분쯤 걸었을까? 비로소 비밀스럽게 산중호수 주산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거울처럼 잔잔한 수면으로 짙은 물안개가 피어나고 가을빛 물든 산과 새벽하늘이 포개져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가 펼쳐졌다. 그것은 마치 다른 세계,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툭 하고 떨어진, 그래서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이었다. 일상에서 마주할 수 없는.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 압도적으로 이끄는 것은 수중에 잠긴 수령 1백 년이 넘는 왕버들나무다. 더러는 세월을 못 이겨 죽었지만 시간의 역사만큼 왕버들나무 또한 신비로운 모습으로 그 위엄을 자랑하며 산중 물안개와 어우러져 선계를 연출하고 있다. 물안개가 스멀스멀 사라지고 주왕산 붉은 단풍이 수면 위로 더 짙게 드리워지면 왕버들나무 사이로 아침햇살이 비추며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몽환적이고 신비롭던 공간이 아늑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시간, 산중호수는 여전히 고요하다. 들리는 것은 바람결에 나뭇잎 스치는 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새벽잠을 포기하고 검푸른 새벽어둠에 주산지를 찾아든 사람들의 카메라 셔터소리뿐이다.
주왕산우체국 김남규 집배원
천년고찰 대전사를 굽어살피는 주왕산
‘택리지(擇里志)’의 저자 이중환은 주왕산을 일러 ‘모두 돌로써 골짜기 동네를 이루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는 산’ 이라고 했다. 그만큼 주왕산은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암산으로 꼽힌다. 골짜기마다 기암의 웅장함과 화려함에 눈이 호사를 한다. 그 골짜기 산 아래 대전사가 있다. 대전사는 고려 태조 2년에 보조국사가 창건한 절. 뒤편에 솟아있는 기암을 비롯해 병풍바위, 급수대, 시루봉, 학소대 등의 기암괴봉과 폭포가 병풍이 되어 천년고찰 대전사를 굽어살피는 듯하다. 보광전 앞에 손을 모으고 섰다. 오랜만에 마음을 다해 기도를 한다. “내일은 모두 편안하기를.”
대전사를 나와 절골계곡 앞에서 주왕산우체국 김남규 집배원을 만났다. “주왕산은 내주왕산과 외주왕산으로 구분됩니다. 대전사가 있는 곳이 내주왕산이고요, 이곳 절골은 외주왕산에 포함되는데요, 내주왕산에 비해 찾는 이들이 적어 한적하게 산행하기 그만입니다. 원시적 풍광이 아주 멋진 곳이죠. 저희 주왕산우체국, 청송우체국 직원들도 자주 찾는 산행지입니다.” 주왕산우체국 김남규 집배원이 절골계곡 공원관리사무소에 우편물을 배달하며 외주왕산 자랑을 내놓는다. 그는 평소 나무와 식물에 관심이 많아 틈틈이 공부를 했다며 주왕산에서 자생하는 희귀식물과 나무를 가리키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그의 설명이 함께여서인지 붉게 물든 절골이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절골에서 나와 우체국으로 향하던 그가 한 사과농장 주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때마침 관광버스가 도착해 너도나도 그 유명하다는 청송사과 사기에 정신이 없고, 김남규 집배원도 잠시 주인을 도와 사과 자랑에 나선다. 오가는 길목의 사과밭 주인이 모두 고객이요 가족이라며 그는 청송 사과 홍보도 빼놓지 않았다.
파천면 송소고택은 따뜻한 풍경이었다. 낯설지 않은 외가에 온듯한 풍경, 여유롭고 포근했다. 사람들은 그곳에 가 생활자로서의 애환을 위로받고 또 살아갈 힘을 얻는다.
자연과 소통하는 느린 마을, 오래된 송소고택
부동면에서 나와 파천면으로 향하는 길, 허기진 배를 달래러 청송읍내 달기약수터에 들렀다. 약수터 주변으로 달기약수백숙이 유명하지만 시간 관계상 닭불고기를 택했다. 고추장양념을 한 닭떡갈비로 그 맛이 일품. 달기약수로 입가심을 하는데 찝찔한 맛이 처음 먹어본 여행자에게는 썩 맞지 않는다. 어쨌든 배도 부르겠다, 지난 6월 국제 슬로시티로 지정된 파천면 덕천마을로 향했다. 마을 입구에 자동차를 세우고 그저 잠시 바라봤을 뿐임에도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들판으로 펼쳐진 노랗게 익은 벼, 오래된 고택과 가을빛을 제대로 머금은 산새가 어우러진 전원 풍경이 외할머니 집에 온 것 마냥 푸근하다. 마을 곳곳이 아름답고 오래 되었지만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곳이 송소고택이다. 송소고택은 조선 영조 때 만석꾼이었던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 선생이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동으로 들어와 1880년에 지은 집이다. 청송 심씨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정승 13명, 왕비 4명, 부마 4명을 배출한 명문가로 세종대왕의 정비인 소헌왕후도 이 가문 출신이다. 아직도 당시 명문가의 위엄 그대로를 간식한 송소고택, 홍살문으로 장식된 솟을대문을 지나자 가을바람에 실려 온 토석담 냄새가 기분을 좋게 한다. ‘ㅁ’형 구조의 99칸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별채, 디딜방앗간, 곳간, 헛간, 우물, 장독대 등이 들어서 있다. 마당에 들어서면 ‘ㄱ’자형 헛담이 가로막는다. 큰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놓인 헛담은 안채에 기거하는 아녀자들이 대문을 드나들 때 사랑채에서 보이지 않도록 만든 담으로 조선 후기 상류층 양반가의 생활문화를 잘 보여준다. 송소고택에서는 봄, 가을이면 해마다 정원이나 후원에서 음악회가 열린다. 미리 예약하면 고택체험도 가능한데 특별히 무엇을 하기 보다는 그저 마음을 내려놓고 온전히 쉬고 싶다면 찾아볼만 하다.
마을로 나와 길을 걷는다. 황금들판에 농부마냥 마음이 넉넉해지고 길가 감나무에서 감 하나를 따 건네주는 동네 할머니의 마음에 훈훈한 정을 느낀다. 덕천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변함이 있다면 그것은 계절일 뿐. 마을은 계절의 풍경과 하나 되어 조금 느리지만 자연과 소통하며 흐르고 있었다. 경북 청송은 그런 곳이었다. 그곳이 산중호수 주산지든, 천년고찰 대전사든, 송소고택이든… 제 빛을 내는 자연과 소통하며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청송 주왕산과 주산지 여행을 마치고 청송우체국에 들러서 낙엽 한 장 주워 수첩에 끼워 일부인을 찍었다. 훗날 주왕산 추억이 아름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