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우체국
김규호 집배원과 함께하는 왜목마을
오늘 뜨는 해를 바라볼 수 있다는 건 46억년 중 아주 특별한 하루의 찬란함일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내가 그 찬란함 앞에 서 있는 것이 행복 아니겠는가. 충남 당진의 왜목마을의 특별한 일출.
어제와 같은 해는 절대 아니다
오늘도 해가 떴다. 어제와 같은 해다. 별로 다를 게 없다. 해가 뜨는 게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요, 특별한 일도 아니다. 어제나 오늘이 특별한 날도 아니니까. 그런데 정말 그런가? 정말 태양이 뜨고 지는 게 특별한 게 아닐까? 혹시 ‘오늘 뜨는 해처럼 대단한 것이 또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매일매일 따뜻한 한줌의 햇볕을 던져주는 태양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없다면 그건 인생을 살아가는 자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삶에 대한 방기요, 살아가는 자의 근무태만이다. 아니, 태양이 떠오르는 걸 무심코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는 건, 46억년 동안 이글이글 타오르면서 빛을 뿜어내는 태양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태양에 비해 인간은 너무나 사소한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 보라. 오늘 뜨는 해를 내가 바라볼 수 있다는 건 46억년 중 아주 특별한 하루의 찬란함일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내가 그 찬란함 앞에 서 있는 것이 행복 아니겠는가? 왜 아니겠는가?
헬렌 켈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만지거나 볼 수 없다.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가 해를 보기 위해 해맞이여행을 떠나는 건 단순히 ‘어제 떴던 해’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해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행복을 만나기 위함이다. 해돋이, 해넘이, 낭만, 행복이라는 선분의 교차점이 있다. 그게 바로 충남 당진의 왜목이라는 작은 어촌이다.
왜목의 해돋이는 삶에 대한 경배다
이곳 지형이 마치 왜가리의 목처럼 불쑥 튀어나온 모습이라고 해서 왜목마을이다. 좁은 땅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외길목이라고도 불린다. 당연히 서해안이니까 해넘이만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겠지만 왜목마을에서는 해넘이뿐 아니라 해돋이도 보인다. 이 작은 어촌이 유명해진 건 사진가의 사진 한 장 때문이다. 서해에서의 일출을 생각지도 못하던 때 바위와 바위 사이에서 불쑥 떠오르는 사진 한 장이 세상에 알려졌고, 그게 해돋이 사진이라는 말에 ‘그게 어디야, 서해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니…’, 해서 세상에 왜목마을이 나서게 됐다. 그 전까지는 그저 초라한 어촌에 지나지 않았다. 반갑게도 그 조용함은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는 풍경이다. 왜목마을은 펜션, 음식점이 새로 들어섰지만 아직도 호젓한 바닷가 마을이다.
왜목마을 해돋이는 충남의 장고항 용무치와 경기도 화성시 국화도를 사이에 두고 계절별로 조금씩 위치가 바뀌며 이루어지는데 해가 노적봉(남근바위)에 걸리는 10월 25일부터 1월 16일까지의 일출이 가장 아름답다. 1월 1일 노적봉의 일출은 선착장에서 북쪽 200m 지점에서 볼 수 있다. 왜목마을 일출 중 장관은 촛대바위 위로 뜨는 해를 바라보는 일이다. 왜목마을에서 3km 동쪽으로 바다를 보면 바다에서 불쑥 봉우리 하나가 솟아 있는데, 이것이 노적봉이고 그 바로 옆에 꽃봉오리 같이 생긴 바위가 촛대바위이다. 그리고는 장고항 언덕이 그 바로 옆으로 붙어 있다. 왜목마을 사람들은 촛대바위를 남근바위라고도 하는데, 이곳에서 뜨는 해는 가히 절경을 이룬다. 초의 심지 끝에 불이 댕겨졌으니 오죽 예쁘지 않겠는가. 동해의 일출이 넘실대는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용맹스러움의 표출이라면, 이곳 왜목마을의 해돋이는 여인의 손길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조바심이고, 밀고 당기는 은근함이다. 떨림이다. 그래서 붉지도 않고, 묽지도 않다. 동해의 해돋이가 삶의 경이로움이라면 왜목의 해돋이는 삶에 대한 경배다. 살아 있음으로써 반갑고 즐거운 것이다.
낭만과 삶이 교차하는 바닷가 풍경
왜목마을의 낮은 연인들에게는 낭만이다. 물이 빠져나간 갯벌에서 연인들은 깔깔 호호 모래알보다 더 찬란한 웃음으로 해 아래서 뛰어논다. 낭만이란 이런 것이다. 가끔은 부끄러움도 잊고, 유치해지는 것이다. 연인들에겐 낭만인 왜목마을의 낮이 주민들에게는 삶이다. 바다에 물이 빠지면 할머니들은 하나둘 바다로 나간다. 거기서 갯가 돌에 붙어 있는 굴을 따느라 바다의 바닥을 온통 다 뒤진다. 저렇게 다 뒤지면 다음 날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싶은데, 그 다음날에도 여전히 할머니들은 바다의 밑바닥을 뒤지러 나온다. 바다가 할머니들에게, 그 느린 손에게 들려주는 것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느릿느릿 살아서 바다가 주는 것을 더 잘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곳의 굴은 양식 굴이 아니다. 양식 굴은 씹는 맛이 덜한데, 자연산 굴은 알이 작아도 쫀득쫀득하다 할 정도로 씹는 맛이 찰지다. 게다가 크기도 크다. 자연산 굴이 작다는 건 이곳에서만큼은 편견이다. 바다 한편에서 할머니들은 바다 밑바닥에서 걷어 올린 것들을 판다. 굴이며, 낙지 몇 마리가 할머니들이 파는 전부인데, 그걸 파느라고 하루해가 저무는 시각까지 낭만에 젖은 사람들을 기다린다. “할머니 이거 얼마예요?” 이렇게 묻는 사이에 낭만과 삶이 교차한다. 이제 해는 저물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다시 삶이 시작되고, 낭만이 시작된다.
왜목마을은 낭만과 생활자들의 치열함이 공존하는 곳이다. 낭만을 찾아온 여행자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생활자들이 한데 어울려 함께 삶을 이룬다.
당진우체국 김규호 집배원
미련도 버리고 탐욕도 버리고 사라지는 해
왜목마을에서 해넘이를 보려면 석문산에 올라야 한다. 왜목마을에서 석문산 정상을 가자면 왜목마을 해양경비초소 옆으로 난 탐방로를 따라 오르면 된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라서 10분 정도만 걸으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데, 그래도 산이라 품위와 절도가 있다. 적당히 숨을 헐떡이게 한다. 그렇다고 뒤를 돌아보지 마라. 뒤를 돌아보는 순간 당신은 소금기둥이 될지 모른다. 뒤를 돌아본 순간 한낮에 만났던 어촌의 고깃배와 작은 섬과 바다와 저 멀리 보이는 촛대바위가 당신의 다리를 잡고, 당신의 눈길을 옭아매고, 급기야 당신의 심장까지 붙잡아둘지 모른다. 그 부동의 간절함을 선사하는 곳이 석문산이다. 그 절경 때문에 석문산이 고맙고 반갑다.
석문산 정상에 서면 서쪽 하늘이 다 들어온다. 석양으로 가는 해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의 풍경은 바다가 아니라 논이다. 왜목마을 서쪽은 간척지다. 1984년 대호방조제 준공 이후 왜목마을의 서쪽 일대가 육지로 변하면서 동쪽 바다와 함께 서쪽에서 마을을 감쌌던 바다는 사라졌다. 해는 간척지 들판을 지나 난지도 뒤로 넘어가는데 난지도 앞 바다를 잠깐 비추곤 그냥 쑥 사라진다. 미련도 버리고 탐욕도 버리고 사라진다. 그 여명이 사라질 때까지 지는 해를 끝까지 지켜보기란 쉽지 않다. 마치 떠나는 연인의 뒷모습처럼.
당진우체국 김규호 집배원은 당진을 평화로운 땅, 왜목을 아름다움이 넘치는 땅이라고 말한다. 올해 많은 비가 내렸는데도 당진에는 큰 피해가 없었다. 눈이 내려도 당진은 그리 크게 내리지 않는다. 적당하게 내릴 만큼 내리고 누릴 만큼 누리는 게 당진 땅이다. 그래서 김규호 집배원은 올해 내린 비에도 그리 큰 불편 없이 우편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에게 2011년은 어떤 해였는지 물었다. “올해는 사고 없이 무사히 한 해를 지내온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참 행복한 한 해였어요. 이제 곧 둘째도 태어나고요.”
행복은 행복해지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발견하는 것이다. 아침에 뜨는 해가 어제와 다르다는 걸 느끼는 순간 행복은 내게 ‘온다’. 삶이 무료하다면, 아니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을 두 사람의 가슴에 심고 싶다면 당장 서해 당진의 작은 어촌마을 왜목으로 가보라. 거기 서 있는 순간 46억년 동안 당신을 기다려온 해가 당신을 맞이하기 위해, 당신의 삶에 축복을 내리기 위해 서서히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뜨거운 키스를!
특별한 기록, 충남 당진 여행 후 당진우체국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관광통신일부인을 찍어오면 어떨까.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