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적인 영양밥, 해물곱돌솥밥
얼핏 보면 여느 지방도시와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군산 시가지(월명동 일대)에 접어들면 군데군데 수탈의 역사로 기억되는 흔적을 만나게 된다. 일제강점기의 유산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는 오명을 쓴 도시, 군산. 씁쓸한 마음을 가다듬자니 군산우체국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점심때가 다 되어 도착했기에 눈인사만 나누고 군산우체국 지원과 우성숙 대리와 다른 동료들과 함께 ‘서진 해물곱돌솥밥’ 집으로 향했다.
밥을 주문하고 20여 분쯤 지났을까. 12종 안팎의 밑반찬과 함께 준비되어 나온 해물곱돌솥밥에서 풍기는 냄새가 구수하다. 해물이 주 재료라 하여 비릿한 냄새를 생각한다면 오산. 절절 끓는 곱돌솥에 곤자뼈(소의 골반뼈)와 사골뼈, 다시마, 참다랑어포 등을 육수로 해 담백함을 높였고 해물의 비린내도 말끔히 없앴다.
서해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각종 어패류(소라, 전복, 오징어, 낙지, 새우 등 10여 종)가 푸짐히 첨가돼 나오는 곱돌솥밥은 적당량의 부추와 양념장을 넣고 부추의 숨이 죽을 때까지 삭삭 비벼 먹으면 일품이다. 조용히 식사를 하던 우성숙 대리가 “마치 버터를 가미한 듯 고소해서 해산물을 싫어하는 아이들이나 노인네들을 위한 보양식으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며 이색적인 돌솥밥에 대한 평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담양지방에서 나오는 곱돌과 맥반석이 함유된 돌솥에 영양만점의 육수와 신선한 해물이 그득하니 밥 한술에 우리 땅과 바다에서 나오는 산물을 털어 넣는 셈이다.
부추와 비벼 먹는 해물곱돌솥밥과 달콤새콤한 꽃게해물범벅
꽃게의 변신, 달곰새금한 꽃게해물범벅
‘서진 해물곱돌솥밥’ 집의 또 다른 별미는 군산의 특산물 중 하나인 꽃게를 활용한 ‘꽃게해물범벅’이다. 꽃게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녹말가루로 튀겨낸 후 갑오징어, 해삼, 칵테일 새우 등의 해산물과 매콤하게 버무려 상에 올리는데 걸쭉한 소스를 듬뿍 찍어 입에 넣으면 매큼한 향에 한번, 달큼한 맛에 한번 절로 감탄사가 뿜어져 나온다. 튀김옷을 입은 꽃게 껍질은 바삭하게 부서져 씹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안주용으로 개발한 메뉴인 터라 병치회, 생굴, 회초밥 등 당일 공수해온 신선한 해산물이 주변 반찬으로 함께 제공된다. 애주가가 아니라한들 어찌 소주 한병을 시키지 않겠는가.
서진 해물곱돌솥밥의 주인장 이순환 씨는 군산 토박이로 소싯적 서울의 유명 호텔에서 요리기술을 배워 군산으로 귀향해 음식점을 열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서진생선가’라는 횟집으로 운영하다 차림표를 단출하게 구성하면서 현재의 상호로 변경했다. 해물곱돌솥밥 그리고 꽃게해물범벅 요리를 개발하게 된 연유를 물으니 “군산은 해산물이 풍부한 지방이잖아. 그런데 여름철에는 비브리오균 등 때문에 어패류를 마다하는 사람들이 많어. 그래서 대체 요리를 생각하다가 곱돌솥밥을 생각했지. 비린내 없애는 방법 찾느라 쌀 60가마는 허비 했을걸” 하며 껄껄 웃는다.
군산 하구에 모여든 새떼들
쓰라린 아픔의 역사를 지닌 군산
맛깔 난 식사 후 소화도 시킬 겸 근대 역사문화거리로 지정된 군산내항과 월명동 일대를 산책했다. 일제강점기 약자로서 당해야 했던 수탈의 역사를 증명하는 상징이자 역사적 교훈이 되고 있는 구 군산세관 본관(전라북도 기념물 제87호, 장미동 소재)은 국내 현존의 서양고전주의 양식의 3대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힌다. 발길을 돌려 지리적 특성상 고려시대부터 서해안권 물류교역의 중심지였던 군산내항에 들어섰다. 호남평야 쌀 반출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설치한 부잔교와 진포해양테마공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해망로 대로변에는 불에 그슬린 채 흉물스러운 건물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다름 아닌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위한 대표적 금융시설인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이란다. 해방 이후 한국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되다 유흥시설에 매각했다는 것. 이후 잦은 화재와 관리소홀로 유흥업소 간판을 내건 채 방치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재 복원작업을 위한 사업에 착수 중이라는 것.
마지막으로 국가등록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된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 동국사를 찾았다. 외관상으로도 확연히 전통한옥 사찰과는 대조를 이루는 동국사, 우리나라 개화기와 근현대사의 역사를 증명하는 건축물로 식민지배의 아픔을 확인하는 교육자료로 활용되는 곳이다.
맛집 탐방에 나선 군산우체국 직원들
교육자료로 활용되는 동국사
역사적 교훈이 되고 있는 구 군산세관 건물
국보급 짬뽕을 선사하는 중화요리점
포근한 날씨지만 겨울바람 맞으며 몸을 움직인 탓인지, 근대문화유산이라지만 아픔의 기억들만 관망했던 탓인지 매옴하면서 뜨끈한 국물이 생각났다. 오후 4시면 영업을 마감한다는 귀동냥이 있었기에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복성루’를 외쳤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인데도 테이블마다 손님들로 그득하다.
국보급, 지존 등으로 불리는 복성루표 짬뽕이 이내 테이블로 배달되어 왔다. 짬뽕에는 홍합, 바지락, 꼬막, 오징어, 채 썬 돼지고기 수육이 첫술을 어떻게 떠야할지 난감할 정도로 국물이 넘치기 직전까지 쌓아올려져 있다. 돼지고기 수육은 잡내 없이 담백하고, 각종 해산물은 신선하다. 보기에도 진한 짬뽕 국물은 바따라진 것이 언 몸을 녹이기에 일품이다. 건지고 건져도 계속 나오는 해산물은 양푼 하나를 금세 채우고 만다.
일제의 쓰라린 역사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근대문화유산 마을, 군산을 등지고 서울로 향하며 ‘과거는 아팠을지언정 앞날은 복되기만 한 곳’으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맛스런 집은 별다른 기교로 혀를 유혹해서가 아니라 추억을 선사하기 때문에 기억된다. 눈과 마음으로 우리 근대사를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가족·연인과 발길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군산은 지금 세계 최장의 방조제 새만금과 함께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중이다.
1 서진 해물곱돌솥밥
메뉴: 해물곱돌솥밥(8천 원), 백합죽(8천 원), 바지락죽(7천 원), 꽃게해물범벅(3만 원, 꽃게해물범벅은 사전 예약하지 않을 경우 점심식사 시간에는 불가)
예약: 063) 442-2282
휴무/좌석/주차: 연중무휴/140여 석/40대
소재: 전북 군산시 중앙로1가 9-6번지
가는 길: 군산시청-군산역 사거리 직진-영동교차로 직진(11시 방향)-중앙사거리 직진-에넥스텔레콤 뒤편, 녹십자약국 반대편
2 복성루
메뉴: 자장면(4천 원), 우동, 간자장, 짬뽕(각 5천 원), 볶음밥, 짬뽕밥(각 5천5백 원, 볶음밥 주문 가능시간 10시 20분~11시)
예약: 063) 445-8412
휴무/영업/좌석: 공휴일/오전 10시~오후 4시/30여 석
소재: 전북 군산시 미원동 332번지
가는 길: 군산시청-군산역 사거리 좌회전-미원사거리 좌회전-군산적십자사 봉사관 반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