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지 않을 자유, 하동으로 향하는 길
하동 IC를 빠져나와 하동우체국을 향하는 길은 시선을 두는 곳곳마다가 마치 대형 풍경화를 펼쳐 놓은 듯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한다. 조선 영조21년(1745년)에 방풍과 방사를 목적으로 섬진강변에 식재하였던 소나무 1천여 그루가 250여 년을 거쳐 노송 숲을 이룬 하동포구 백사청송이 슬라이드 되어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고, ‘모래가람‘, ’다사강’, ‘사천’ 등으로 불리는 섬진강의 고운 모래사장과, 남한 5대강 중 공해가 없는 최후의 청유로 꼽히는 섬진강의 푸른 자태를 보자니 어릴 적 즐겨 불렀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이라는 동요가 절로 흥얼거려 진다.
하동우체국에 들어서니 칼칼한 경상도 사투리와 함께 정겨운 미소로 객을 맞이하는 신성민 팀장의 모습이 정겹다. 향토 특산품인 하동매실차를 선보이며 산과 강이 조화로운 땅, 하동의 풍경과 특산 먹을
거리에 대한 자랑이 끊어질 줄 모른다.
섬진강이 낳아 키운 참게, 뚝배기에 담아내다
신 팀장의 안내로 우체국을 뒤로하고 10분여 섬진강변을 따라 달리자니,‘섬진강 재첩횟집’의 큼지막한 간판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섬진강이 낳아 키우고 자연을 닮은 사람들이 옛 방식을 고수하며 채취한 참게 토속요리를 잘하기로 정평이 난 곳이란다.섬진강을 대표하는 먹을거리인 참게는 제철이 무색할 정도로 이곳, 하동의 지방색에 맞게 손맛을 가미하여 지나는 객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특히 섬진강 참게는 다른 지방의 그것에 비해 특유의 담백함과 향을 지녀 먹는 맛이 탁월하다.
일반적으로는 참게장이나 참게탕, 찜 정도의 요리로 많이 알려져 있고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데, 하동에서만 특별난 참게의 참맛을 음미할 수 있는 요리가 있다. 이름만으로는 참게탕과 흡사할 듯한 ‘참게가리장국’이 그것이다. 다소 낯선 메뉴에 대해 물으니, “예로부터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하동을 비롯한 경남 서부지방에서 즐기던 향토음식으로 참게나 고동 등의 강에서 채취한 수산물과 밀가리‘( 가루’의 경상도 사투리)를 가마솥에 쪄 먹던 것이 참게가리장국의 태동”이라는 주인장 양해영 씨의 설명이다. 참게가리장국을 주문하자니 지리산자락 어딘가에서 채취 되었을 참취나물, 오이소박이 등 자연식 반찬 10여 종이 차려지고, 참게 간장게장과 생김이 올려진다. 이것만으로도 객의 입맛을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잠시 후, 커다란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어 나오는 참게가리장국의 모습은 흡사 들깨죽 같기도 하고, 토란국 같아 보였다. 호기심에 한 숟가락 접어드니 놀랍게도 민물 참게에서 배어 나오는 흙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입에 착 감기는 맛이 구수하다.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고 소화촉진에 그만인 방아(배초향)를 잘게 썰어 향신료로 사용하니 참게와 어울리는 맛이 절묘하다.
지방축적 방지 및 콜레스테롤 예방에 그만이며 다이어트에 효과적인 참게의 키틴 성분과 참깨, 콩, 들깨 등 몸에 좋은 8가지 곡물만으로 장국을 만드니 어찌 구뜰하지 않을 것이며, 감미롭지 않다 하겠는가. 참게가리장국에는 미각을 자극하는 고추, 마늘 등 일체의 조미료는 사용하지 않는다. 걸쭉한 국물을 떠먹는 맛은 마치 좋은 식약재를 넣어 내 몸에 맞는 보약을 다려만든 죽 한 사발을 들이키는 것 마냥 담백하고 뒷맛은 시원하다. 장국과 밥 한 숟가락, 그리고 밑반찬으로 함께 나온 참게 간장게장을 삭삭 비며 생김에 싸 먹는 맛은 가히 일품이라 하겠다.
햇살과 땅이 익게 할 때까지 기다리는 곳
섬진강의 대표 먹을거리인 재첩과 은어도 지금이 한창때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재첩은 모양새는 다른 조개에 비해 작다지만 어떤 바다 조개와도 비할 바 없는 시원한 국물 맛을 선사한다. 경상도 사투리로 ‘갱조개’라 불리는 재첩은 열량이 낮아 비만에 좋으며, 필수 아미노산의 일종인 메티오닌을 함유하고 있어 간장의 활동을 도와주고 타우린 성분이 담즙의 분비를 촉진시켜 해독작용을 활발히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동지방에서는 재첩회덮밥, 재첩국, 부침개, 회 등의 음식으로 손님을 유혹한다.
또한, 일본의 강태공이 제철 물고기를 만나기 위해 섬진강 유역에 찾아올 정도로 인기 높은 제철요리가 있다. 다름 아닌 도루묵이라 불리는 은어다. 바다빙어과에 속하는 은어는 깊은 바다에 살다가 산란기에 강가로 올라오는 습성을 지닌 물고기로 1급수의 깨끗한 물에서만 산다. 물고기지만 먹을 때 수박향이 난다는 속설이 유명하며 회나 구이로 섭취하는데 단백질과 칼슘, 철분이 풍부하여 떨어진 기력회복에 도움을 준다.섬진강 물색을 닮아가는 듯 지리산 산색도 무르익어 가는 지금, 하동 악양의 대봉감과 함께 대표 농특산물로 꼽히는 초여름 자연이 주는 선물인 하동매실이 출하되기 시작했다. 하동에서 재배되는 매실의 50% 이상이 친환경인증을 받아 주요 매출수입의 효자상품이 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좋은 매실은 탱글탱글하고 솜털이 적으며 표면에 윤기가 나는 것을 최상으로 친다. 새콤달콤한 매실은 피로회복의 절대강자로 불릴 정도이며, 식이섬유가 많고 저열량·저지방으로 다이어트에도 탁월하다.
슬로시티에서 ‘느림의 미학’을 몸으로 느끼다
도심의 각박하고 날카로운 ‘빠름’ 속에 길들여진 우리네 몸도 가끔은 자연의 정취가 풍만한 정신적 휴식 또는 여유를 갈구하고 있지는 않을까?
서울로 향하는 길, 2009년 2월 녹차 지배지 중 세계최초로 ‘국제 슬로시티’ 인증을 받은 악양면에 들러 잰 걸음을 잠시 멈추고 강바람이, 그리고 우리네 땅이 이야기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슬며시 눈을 감아 본다. 악양면에는 고(故)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였던 평사리 벌판과 가상의 공간으로 꾸민 최참판 댁이 있다. 비닐하우스가 없는 유일한 마을이다. 자연이 주는 물과 바람, 그리고 햇살을 풍미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닮아가는 사람들이 지키고 있어서 일 것이다. 최참판 댁의 별당을 기웃거리자니 금방이라도 서희 아씨가 “찢어 죽이고 말려 죽일 게야”라고 앙칼지게 쏘아 붙이는 말이 들릴 듯 하다.
우리나라 3대 명산으로 불리는 지리산의 명찰(名刹)인 쌍계사로 오르는 길에는 우리나라 차의 시배지(始培地)가 있다. 신라 흥덕왕 3년 대렴공이 당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당 문종왕으로부터 받아온 차를 이곳에 심었다는 것. 이후 하동에서 재배되는 차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조정에 진상되는 왕의 차, 최고의 차로 명성을 떨쳐 왔다. 이렇듯 산과 들 그리고 강이 선사한 선물로 하동은 끊이지 않는 문화축제를 진행한다. 돌아오는 하반기에도 7월 찻사발과 연꽃 만남의 축제, 8월 진교술상전어축제, 9월 코스모스·메밀축제, 10월 토지문학제, 악양대봉감축제, 11월 하동녹차 참숭어축제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세상 시름은 잠시 잊고, 가는 곳마다 그림이 되는 고장, 하동으로의 ‘슬로여행’을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필자는 말하고 싶다. 이왕 하동에 가실 거라면, 무작정 떠나 보시라~고.별다른 계획 없이 무작정 떠나는 하동 여행길을 통해 느림에서 느끼는 여유와 행복을 가득 담아 보시길 고대해 본다. 차창 밖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보리밭이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살랑이며 인사를 한다.
Tip 섬진강 재첩 횟집
메뉴 참게가리장국/참게탕(각 3~4만 원)
참게장정식(1만 원)
재첩회덮밥(1만 원)
재첩회/재첩수제비탕(각 2~3만 원)
은어회/은어튀김(각 2~3만원)메기탕(2만5천 원)
예약 055) 883-5527, 011-886-5526
휴무 연중무휴
좌석 80여 석
주차 버스 10대, 승용차 20대
소재 경남 하동군 하동읍 화심리 951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