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파란 하늘에 드문드문 스며든 안개와 뭉게구름이 두둥실 흐르는 광경.
과연 여기가 지상 세계가 맞나 싶을 정도로 몽환적이면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어느덧 해발 3,360m 고지에 위치한 쿠스코공항에 도착한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붉은 황토색 기와지붕을 한 집들이 연이어 보이고 좁은 거리엔 티코 승용차가 줄지어 다닌다. 쿠스코는 원주민 언어인 케추아어로 ‘세상의 중심’이란 뜻이다. 제9대 잉카(왕)인 파차쿠텍이 제국의 기틀을 마련하면서 쿠스코를 재정비했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의 도시이자 요새였던 쿠스코는 당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쿠스코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아르마스 광장을 지나 과거의 화려한 영광을 간직했던 태양신전인 ‘코리칸차’로 향한다. 지금은 산토도밍고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정복자들이 황금으로 가득 찬 신전을 약탈한 후 그 토대 위에 지금의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이후 지진이 일어났을 때 교회는 허물어졌지만 정교하게 돌을 다듬어 세운 석벽은 그대로 남아있다. 지진에 대비한 잉카인들의 뛰어난 건축술을 보는 듯하다.
마추피추 동쪽 풍경
마추픽추 전경
탐보마차이
잉카의 목욕탕, 탐보마차이 등 신비로운 유적이 가득
미니버스로 시내에서 북쪽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언덕 요새인 ‘삭사이와망’으로 향한다. 삭사이와망에 올라서니 붉은 빛깔의 쿠스코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350t이 넘는다는 거석들이 거대한 성벽을 이루는 곳곳에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있다. 언덕 한편에는 진회색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예수상이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울퉁불퉁하게 파인 석회암을 이용하여 만든 제단의 일종인 ‘켄코유적’이 있다. 가장 높은 바위에는 마치 뇌를 닮은 홈이 파여 있다. 여기에 ‘치차(옥수수를 발효시켜 만든 술)’를 부어 흘러가는 방향으로 길흉을 점쳤단다.
해가 저물자 라마와 알파카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쿠스코에서 ‘우르밤바계곡’으로 가는 길에 있는 ‘탐보마차이’에 들린다. 잉카의 목욕탕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정밀하게 쌓아올린 석벽 사이로 시원한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이곳에서 과거 제사의식에 앞서 몸을 정결하게 씻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남자들은 ‘추요’라는 모자를 쓰고 화려한 색깔의 ‘폰초’와 바지를 입고 있다. 여자들은 ‘몬테라’라고 불리는 모자를 쓰고 넓게 짠 ‘만타’라는 천을 두르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포예라’를 입고 있다.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
남미하면 바로 떠오르는 단어가 마추픽추가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곳. 그래서 잃어버린 잉카제국의 역사에 대한 그리움으로 신비로움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마추픽추로 가는 길은 쿠스코에서부터 시작된다. 쿠스코에서 기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약 112km떨어진 ‘아구아스칼리엔테스’라는 마을에 내린다. 다시 산을 오르는 버스로 갈아타면 마추픽추 입구에 도달한다. 해발 2,400m 고지의 능선에 자리 잡은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길은 구절양장이다. 버스는 아슬아슬하게 일곱 구비를 오른다. 조금 가파른 왼쪽 길을 오르자 잃어버린 공중 도시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이 탄성을 자아낸다.
1911년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 1875~1956)이 이 유적지를 발견했을 당시 기분이 어떠했을까. 경이와 감탄에 찬 얼굴이 상상된다. 조망이 가장 좋다는 남쪽 산 중턱에는 장례의식에 쓰인 너른 바위가 있고 그 뒤로 150구의 여자유골과 23구의 남자 유골이 발견된 묘지 터가 있다.
마추픽추는 가파른 능선위에 돌을 쌓아 만든 많은 건축물과 계단식으로 쌓아올린 경작지가 잘 구획되어 있는 모습이다. 이곳을 크게 나누어 보면 중앙부의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태양신의 제단과 ‘인티와타나’, ‘콘도르신전’, 잉카의 집과 목욕탕 등이 있다. 인티와타나는 ‘태양을 묶는 기둥’이란다. 즉 보이지 않는 밧줄이 이 기둥과 태양을 묶어두고 있다고 믿었단다. 고개를 들어 북쪽을 보면 ‘우아나픽추’가 우뚝 서있고 그 아래로 우루밤바 강이 휘돌아 흐르고 있다. 그 뒤로는 구름에 싸인 연봉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마추픽추의 중앙광장
천(만타)을 짜는 원주민
자연을 닮은 순박한 현지인에게 느끼는 훈훈한 정감
마추픽추를 둘러보고 쿠스코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마을을 둘러본다. 마을은 작지만 성당을 비롯해 시장과 인터넷카페와 안데스풍의 멋진 음식점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이 곳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치차를 파는 주막에 들렀다. 치차를 파는 집은 긴 장대에 붉은색 봉지를 씌워 놓아 금방 알 수 있다.
저 멀리 붉은색 봉지를 매단 장대가 있는 집에 들려 치차가 있는지 물어 본다. 집을 지키고 있던 소녀는 “요즘 손님이 별로 없어 치차를 담그지 못했다”며 미안해한다. 대신 양 손 가득 복숭아를 건네준다. 그 마음이 고마워 받아든다. 나도 가지고 있는 초콜릿을 주었다. 멋진 자연풍경과 함께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삶의 멋과 향기를 느낀다. 사람의 훈기가 도는 이곳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