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의 옛 가옥을 한 눈에… 아라리촌을 가다
연인들의 드라이브 코스로도 정평이 나 있다는 59번 국도변엔 백석폭포, 이끼계곡, 별천지박물관, 인형의 집 등 즐비한 자연경관과 문화여행지가 여행자의 시선을 뺏는다. 촉박한 원고마감이 부담스러워 이내 정선우체국 이정표만을 뒤 쫓는 모습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약속시간을 꽉 채워서야 다다른 정선우체국은 평온하고 깨끗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수줍은 듯 잔잔한 미소로 맞이하는 전경애 경영지도실장과 홍아영 대리의 모습에서 아우라지 계곡의 애달픈 처녀상을 보는 듯 정겹다.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고는 조양강변을 따라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아라리촌(정선읍 애산리 일원)으로 향한다. 아라리촌은 정선의 옛 가옥 및 주거문화를 재현한 작은 민속촌이다. 18세기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 선생의 생생한 시대풍자가 담긴 소설 ‘양반전’을 토대로 가상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기와집을 비롯한 초가집, 너와집, 귀틀집 등 6동의 전통가옥과 주막, 토속매점과 물레방아, 연자방아 등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저릅집, 귀틀집 등에서는 민박체험까지 가능하다. 서낭당과 귀틀집을 지나치니, 정선의 자연식을 선사할 ‘아라리촌 주막’이 이내 눈에 들어온다.
두메산골 정선의 자연이 밥상 위에 오르다
저잣거리 주막에서 내오는 음식은 어떤 맛일까? 색다른 경험에 호기심이 발동한다. 너렁청한 대청마루에 자리를 잡고 ‘곤드레 정식’을 주문하니 가짓수를 헤아리기 벅찰 만큼 다양한 정선의 나물이 한 상 그득 차려진다. 곤드레 밥을 마지막으로 들고 나온 주인장 김재숙 씨는 “모든 음식과 양념재료는 정선 땅에서 나고 키운 먹을거리”라며 반주로 옥수수 막걸리를 권한다.
밥상 위에 차려진 나물을 보자니 영락없이 우리네 산과 들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풀들은 다 꺾어와 삶아 낸 모양이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멍우, 개미취, 미역취, 꽃나물을 비롯해 곤드레, 곰취, 민들레, 취나물, 오가피, 고사리 등 매일같이 15종의 나물과 소고기 한 사발, 그리고 정선 토속음식인 감자붕생이(강원도 사투리로 감자뭉생이를 일컬음)떡, 산초기름에 노릇하게 구워낸 두부 지짐과 매콤하게 묻혀 낸 더덕무침, 시원한 도토리 묵사발, 그리고 들기름을 살짝 두른 곤드레 밥까지. 밥 한 술에 반찬 한 가지씩만 얹어 먹어도 한 그릇은 뚝딱 비워낼 수 있을 만큼 반찬인심이 후하다.
주인장에게 집에서도 곤드레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느냐 물으니 “마른 곤드레를 물에 한참 담갔다가 그 물 그대로 밥을 안치고, 곤드레는 줄기가 물컹해 질 때까지 삶고 밥에 얹어서 들기름, 마늘, 소금으로 버무려 쌀 위에 얹어 밥을 지으면 돈 내고 먹는 것보다 맛나지”한다.
신토불이라 하지 않았던가. 우리네 땅에서 자란 나물들은 제각기 다른 맛을 선사하면서도 달곰쌉쌀한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더불어 들이키는 옥수수 막걸리는 탁하지 않고 달달하게 넘어간다. 대청마루를 살포시 휘감고 돌아가는 강바람과 아리랑 자락을 듣고 있자니 세상사 잠시 잊고 드러누워 낮잠을 청하고픈 유혹에 빠져 든다.
얼른와요! 여가 장터래요. 정선 5일장
정선에는 두 가지가 서 있기로 유명한데, 그 하나는 산이요, 다른 하나는 장이라 한다. 때마침 정선은 5일장이 들어서 있었다. 정선 5일장은 1966년 2월 17일부터 매달 2일, 7일에 열린다. 장이 서는 날이면 정선의 산비탈, 골짜기 그리고 들판 어딘가에서 애써 키우고 뜯었을 정선의 토산품들이 장터거리를 그득 메운다. 단연 대표적인 것은 나물류로 곤드레 나물이며, 황기, 산양산삼 등이 장거리에 넘쳐난다. 물건을 팔고 있는 우리네 어머니들은 하나같이 노란색 목걸이를 패용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토불이증’이다. 정선의 지리적 표시제 일환으로 정선 토박이 상인임을 인증하는 것이다.
간간이 보이는 농기구며 짚신, 장식구 등 노점 좌판들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곳곳에서 족발을, 옥수수를 삶느라 연신 연기가 솟고 흥겨운 각설이 장단에 맞춰 가위질을 하기에 정신이 없던 엿장수 백호아저씨는 카메라 렌즈를 보며 윙크를 한다.
시장 통 스피커를 통해 난타리듬 같기도 하고, 장구 가락 같기도 한 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소리를 좇으니 떨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줄타기 공연이 한창 진행 중이다. 하얗게 바랜 머리를 말아 올린 할머니들이 연신 안도의 한숨과 함께 박수갈채를 보낸다.
정선의 별미이자 특산품인 수리취떡을 사들며 장난기가 발동하여 가격흥정을 해 본다. 결국 낱개 포장된 떡을 덤으로 얻어 장터를 나선다. 수리취는 카로틴과 칼슘, 비타민이 함유된 국화과의 식물로 간 해독, 혈액순환 촉진 및 변비가 심한 사람에게 좋은 것으로 알려진다. 단오 절기의 특산품으로 정선우체국에서 각별히 추천하는 정선의 토산품이기도 하다.
천 년을 이어 온 삶의 소리, 강원도 무형문화재 1호 정선아리랑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 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 주게
강릉으로 그리고 동해로의 여행길이 조급해 사람들의 눈길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백두대간에 첩첩이 둘러싸인 고립무원의 땅이었던 정선이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문화, 관광의 고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칙칙폭폭 기차가 더 이상 지나지 않는 폐 철길을 활용해 ‘레일 바이크’라는 여행상품을 처음으로 선 보인 곳도 정선이다. 정선 레일 바이크는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이어지는 7.2Km 구간으로 철길을 따라 펼쳐지는 노추산과 오장폭포, 송천계곡 등의 비경을 눈에 담고 정선의 시원한 바람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뿐인가. 하릴없이 걸어도 지루하지 않은 트레킹 코스가 있고, 한 여름에도 발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계곡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야생에서의 체험공간인 야영촌이 있으며, 정선을 휘감고 흐르는 동강의 래프팅도 빼 놓을 수 없다. 정선의 물길은 산을 휘둘러 구불거리며 흐르고, 정선의 산들은 물길을 만나면 우뚝 하늘로 치솟아 뼝대(강원도 사투리로 바위절벽을 말함)가 된다. 정선의 산과 물을 모두 담은 곳, 정선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덕우리 트레킹 코스를 도보 여행자에게 추천해 본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여량면에 위치한 아우라지에 들러 애달픈 사랑노래를 가슴에 새겨본다. 아우라지는 강원도 정선군의 지명으로, 골지천과 송천이 합쳐져서 한강의 본류인 조양강을 이루는 곳이다. ‘아우라지’는 어우러진다는 뜻으로 두 물줄기가 어우러져 한강을 이루는 데에서 이 이름이 유래했다. 지형적인 유래 외에도 아우라지는 정선아리랑 유적지로도 유명하다.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사랑을 나누던 처녀 총각이 싸리골로 동백을 따러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간밤에 폭우로 인해 불어난 물줄기 때문에 서로 만나지 못하자 그립고 안타까운 심정을 노래한 것이 바로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인 정선아리랑이다.
척박하고 외롭기만 했던 정선은 더 이상 옛날의 정선이 아니라 휴식과 즐길 거리, 자연을 담은 먹을거리가 풍성한 고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Tip 아라리촌 주막
메뉴 곤드레 정식(1만5천 원), 산채정식(1만 원), 곤드레 나물밥/산채비빔밥(각 6천 원), 옥수수 막걸리(5천 원, 반주용으로만 판매)
예약 033) 563-0050, 010-8419-1131
휴무 매월 1 · 15일 정기휴무
좌석 60여 석
주차 아라리촌 주차장 이용
소재 강원 정선군 정선읍 애산리 560, 아라리촌 내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