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춘에서 이도백하 수수밭을 지나며
중국 장춘공항에 도착했다. 백두산을 등정한다는 설레임과 중국을 체험한다는 호기심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공항과 달리 화장실 문화에 충격을 받았다. 과거 우리나라 30년 전이 떠올랐다. 식당 안에 들어서니 음식이 풍성하게 담긴 큰 접시가 원형 테이블에 올려져 있다. 그리 맛있지는 않았지만 배가 고파 그런지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버스에 올라 이도백하로 향한다. 비가 온다. 내일 날씨가 걱정이 된다.
“아! 무지개다.”
멀리 넓게 펼쳐진 밭 너머로 언뜻언뜻 보이는 구름 사이에서 무지개가 보인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네 번이나 길손들을 맞이해 준 무지개와 드넓은 옥수수 밭. 밭은 넓고 끝이 보이지 않은 듯 했는데 근처에 마을이 별로 없다. 이 많은 농사를 누가 어떻게 짓는 걸까?
드문드문 보이는 마을의 집들은 빨간 지붕을 얹었다. 멀리서 보면 초록빛 초원 위에 빨간 지붕이 솟아 유럽풍의 느낌이 난다. 이 드넓고 비옥한 땅을 갖고 있으면서 왜 조그만 한반도를 그토록 침략하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백두산 천지에서 일행들과 인증샷
산안개와 무지개 너머 천지가 천지다
아침을 먹고 서둘러 등산장비를 챙겨 백두산을 향한다. 이도백하에서 백두산 입구까지도 2시간 정도 걸린다. 큰 간판에 백두산이 아닌 ‘장백산’이라고 쓰여 있다. 억울하지만 어쩌랴. 여기는 중국땅인 걸. 셔틀버스를 갈아타고 산 정상을 향한다. 보이는 모든 것이 장관이다. 천지가 보이자 가슴이 벅차오른다. 크기가 제각각인 돌길을 돌아 잠깐 걸으니 야생화가 만발한 초원이 보인다. 백두산에는 나무가 없다. 보이는 것은 현무암질의 돌과 풀과 야생화다. 아직 녹지 않은 눈도 있다. 봉우리 하나를 타고 내려오니 계곡물이 흐른다. 이 물이 천지물이던가. 손을 담그니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발을 담그니 10초 이상 있을 수 없었다. 한 모금 마시니 천지가 온 몸을 타고 흐르는 것 같다. 천지는 안개를 걷고 건너편 장군봉 모습까지 드러낸 채 기다리고 있다. 제비봉, 해발봉, 장군봉, 비류봉….
건너편 북한 땅에 흐릿한 구름에 걸린 늠름한 장군봉의 자태는 장엄하다. 천지의 푸른 물은 북한 땅의 외륜봉을 그대로 품고 있다. 심호흡을 하고 천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을 연다. 마음을 그대로 천지에 비춰본다. 천지는 그대로 받아주어 하늘도 사람도 산도 하나가 된 듯하다. 천지는 보는 각도에 따라 제각기 다른 모양을 보여준다. 새끼를 품은 암소 모습도 보인다. 조금 더 가자 비룡폭포라고 불리는 장백폭포가 나타났다. 68m의 장대한 폭포를 이루며 암벽을 때리며 수직으로 떨어진다. 200m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우레와 같은 폭포의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사진 한 자락 켜켜이 삶의 갈피에 꽂고
다음 날, 일송정과 해란강 관람을 마치고 두만강에서 보트를 타는 것으로 3박 4일의 일정을 마쳤다. 비행기에 올라 한순간 한순간을 되짚어 본다. 드디어 인천공항. 도착장에는 세계 각국에서 방금 입국한 사람들로 붐볐다. 나도 그 중 한 사람. 백두산의 추억을 안은 채 일상으로 돌아와 내일은 출근을 해야 한다. 길을 지나다가도 우연히 백두산 천지 사진을 볼 때면 함께 산에 오른 사람들이 같이 생각날 것이리라. 가슴 벅찬 천지와의 교감으로 마음을 열면 언제든 그곳에 우뚝 서있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리라. 민족의 성지인 백두산의 정기를 받았으니 뭐든지 다 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