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가 잘 되는 비옥한 땅덕에 식량이 남아 돌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여량. 최근 몇 년 새 그 여량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퇴역한 기차를 활용해 어름치 모양을 낸 카페가 들어섰고, 공원 개발과정에서 청동기시대 집터와 토기 등의 유물이 발굴돼 어유 적발 굴 작업 도진 행 중이다. 많은 부분이 깔끔하게 정비가 되었지만 옛 모습 그대로인 것도 있다. 가금 마을과 여량을 잇는 줄배다.
“흔히‘떼돈’ 벌었다고 하는데 그 떼돈의 유래가 된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연 뱃사공의 표정에서 은근히 밀려오는 신명을 읽을 수 있다.
“이곳 아우라지에서 사방 100리는 궁궐 목이 많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좋은 나무를 선별하여 임금님이 계신 궁궐에 쓰기 위해 벌목합니다. 벌목된 나무들은 뗏목으로 만들어져 수영 잘하고 힘세며 물의 흐름을 잘 알고 있는 마을 뗏사공들에 의해한 양까지 수송됩니다. 보통 장마 뒤 물이 많이 불면 수송이 시작되는데 한양까지는 여기서부터 천리 길로 빨리 가면 15일 만에도 도착합니다. 그렇게 한 번 수송하고 나면 두둑한 목돈을 만지게 되었지요.”
고전적인 어투로 제법 능숙하게 옛이야기를 전해주는 뱃사공, 그는 급 할 게 없다. 강폭이 70m로 건너는데 5분도 채 안 걸린다. 아우라지 이야기를 꺼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니 뱃사공은 느릿느릿 줄을 잡아당긴다. 손님을 태우고 나루를 오가는 일이 노동이라 생각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여량에서 출발한 줄 배가 절반을 지나 가금 마을에 다가갈 무렵 서울서 온 듯한 멋쟁이 아가씨 두명이 허겁지겁 승용차에서 뛰어나와 나루로 달려오며 소리친다.
“아저씨, 얼마예요?”
뱃사공은 그 소리를 못 들었지만 짓궂어 보이는 중년의 한 사내가 그 소리를 듣고 손가락 5개를 펴 보인다.
“5천원이요?”
아가씨의 대답에 중년의 사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승선한 손님들은 호기심에 이들을 지켜보기 시작한다. 이내 줄배가 도착하고 건너갈 손님들이 다시 타면서 배에 올라탄 두 명의 아가씨는 비싸다는 소리 한 마디 안하고 만원짜리를 꺼낸다. 동석한 손님들은 한바탕 웃으면서 배에서 내리고 중년의 사내도, 뱃사공도 허허 웃고만 만다.
오백원. 승선료는 500원이다. 딱히 기름 값이 드는 건 아니지만 한 사람이 하루 종일 달라붙어야 하는 일이기에 싸다고 할 수밖에 없는 요금이다. 천원 정도로 올려 받아도 되지 않느냐는 관광객들의 말에 뱃사공은 빙그레 웃어넘긴다. 2004년에 배를 인수해서 뱃사공 노릇을 하고 있는 현재의 도선장(71세)은 정선군 공무원 출신이다. 정년퇴임을 하고 지역의 홍보대사 노릇을 자처하고 있는 그에게 500원과 1,000원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연세에 비해 무척 정정하고 젊어 보인다고 하자 큰 고생 않고 편하게 인생을 살아와서 그런 것 같다고 고운 웃음을 지어 보인다.
아우라지에는 줄배 외에 처녀상이 있어 랜드마크 노릇을 하고있다. 처녀상 앞에 흐르는 두 갈래 물이 한데 합해지는 것에서 알수 있듯이‘아우라지’라는 이름에는 한데 어울린다는 뜻이 담겨있다. 북쪽에서 흘러온 송천과 동쪽에서 흘러온 골지천이 여량에서 합류하는 것이다. 송천은 조용하지 못하면서 짓궂고 요란스럽게 달려온 남자물(陽水)이고 골지천은 조용하고 차분한 여자물(陰水)이라고 뱃사공은 나지막한 강원도 억양으로 강조한다. 그렇게 아우라지에서 합방한 물은 조양강이라는 이름으로, 동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남한강이라는 이름으로 달려온 지역에 따라 차례로 불리는 이름도 바뀌면서 마침내 서울에 도달하게 된다.
옥산장, 소리와 돌 이야기
옥산장의 여주인장인 전옥매 여사는 이미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사람이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옥산장 주인장을 언급한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되었지만 그 전에도 이미 지역사회에서는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가난한 살림을 이끌면서 거동 못하는 시어머니를 극진하게 모셔 효행상만 두번이나 탄 효부다.
그녀의 응어리진 삶은 그 자체가 아라리이다. 그녀의 이야기가 최근 책으로 나왔다. 요즘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하룻밤 묵고 식사를 하면서 그녀에게 정선 아라리를 청한다. 소리 하는 것을 즐기는지라 관광객들의 청을 거절 못하고 언제나 밝은 웃음으로 불러 준다. 그녀가 관광객들에게 내보이고 싶은 건 소리뿐만 아니다. 틈틈이 모은 수석은 아는 사람은 다 알정도의 규모이다. 옥산장을 중심으로 사방 이십 리 안에서만 모았다는 그 돌들은 1, 2, 3, 4… 숫자에서부터 십이지상, 종교 문양, 글자 문양 등을 다양하게 품고 있다. 마치 붓으로 쓴 듯하지만 모두가 자연석, 자연이 만든 무늬란다. 그 중에는 옥산장 이름을 뜻하는‘옥(玉)’과‘산(山)’이 표현된 돌도 보인다. 이 세상의 모든 만상을 품은 듯한 아우라지
돌들을 들여다보면 아우라지 아낙들 삶의 응어리가 아라리 사설이 되어서 그대로 배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옥산장의 전 여사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특별한 마니아들이 아니다. 우리 문화유산을 좋아하는 일반인들 외에도 공부하는 학생, 지식인들, 친목회 회원들과 외국인까지도 찾아든다.
이들을 위한 즉석 공연은 수석 전시실에서도 펼쳐지고 식당에서도 펼쳐진다. 우리네 아리랑이 그렇듯이 따로 격을 고집하지 않는다. 부르다 흥이 나면 장구도 둘러메보고 어깨춤도 함께 춘다. 확실히 옥산장 전 여사는 아라리 홍보대사, 정선의 홍보대사가 틀림없다.
전 여사가 바쁠 때는 딸이 손님 접대를 한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얼굴이다 했더니만 아우라지에 세워진 여량 처녀상의 모델이란다. 가장 정선다운 어머니의 모습과 정선다운 딸의 모습이 한 집에 있었던 것이다.
정선 사람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 정선 5일장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가 없는 정선에서 5일장은 큰 역할을 한다. 정선의 주특산물인 더덕·황기·곤드레나물처럼 여러 가지 약초와 나물들 그리고 농기구, 생활용품 등이 모두 한 자리에 나온다. 이런 장날의 풍경은 쇼핑을 목적으로 한 정선 사람들보다 구경 나온 도시 사람들에게 더 반갑게 다가온다. 이것저것 식탁에 올릴만한 무공해 나물도 사고 짚풀 공예품, 농촌 생활용품과 같이 딱히 필요하지 않아도 기념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역시 손이 간다. 손만 바쁜 게 아니다. 메밀부침, 감자부침, 감자떡, 콧등치기
메밀국수 같은 먹을거리가 군데군데에서 유혹해 입도 바쁘다.
정선 읍내에는 정선문화예술회관이 있는데 장날마다 정선 아리랑 창극 공연이 열린다. 40분간 계속되는 공연은 시대의 변화를 가슴에 품고 살아온 정선 사람들의 한을 담고 있다. 짧은 시간이 지만 정선 아라리의 구성진 가락과 우리 장단의 흥겨움에 취한 관광객들은 공연이 끝나도 쉬이 일어설 줄을 모른다. 관광객이 많이 찾아들자 정선군이 발 벗고 나섰다. 노점을 하는 주민들에게 상행위를 허가하는 신분증을 발급해 주고 예쁜 단체복도 맞춰 주었다. 5일마다 열리는 장날이 평일에 몰리자 휴일 관광객들을 끌어 볼 생각으로, 장날이 아니어도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장이 서도록 했다. 배려가 지나치면 불편하다고 오히려 정선 5일장 고유의 풍미가 사라질까 걱정이 된다.
정선 5일장에서 정선 사람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팔도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의 여행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도 있다. 바로 구절리의 레일바이크이다. 레일바이크는 폐철로에 운행되는 네발 자전거를 말하는데, 이미 정선 여행의 필수코스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레일바이크 때문에 속상해 하는 가족도 많다. 예약하지 않고 무턱대고 찾아온 가족들인데 많이 기다리거나 휴일 같은 경우엔 아예 타지 못하는 수가 자주 생기기 때문이다. 남들 타는 거 구경만 하고 발길을 돌리는 가족, 그 집 어린이의 마음은 얼마나 아쉬울까. 아쉬움은 여치 카페나 인근 계곡에서 즐기는 가벼운 탁족의 청량감으로 어느 정도는 만회할 수 있을것이다.
“레일바이크 못 타서 많이 서운하지? 다음에는 미리 예약하고 와서 꼭 타보자.”
“괜찮아요, 아빠. 그래도 신기한 여치 카페 가 봤잖아요.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예요.”
여행쪽지
* 3대 가족여행 일정
▲첫날 08:00 서울 출발 - 11:30 점심식사, 숙암계곡과 철쭉, 백석폭포 - 13:30 화암동굴 - 15:30 정선 5일장 - 16:30 정선아리랑 창극 공연 - 18:00 옥산장 - 18:30 저녁식사
▲다음날 08:00 아침식사 - 09:00 여량 산책, 아우라지 - 11:00 레일바이크 - 12:30 점심식사, 오장폭포 - 14:00 정선 출발 - 18:00 서울 도착
* 추천 업소(지역번호 033 공통)
-옥산장(북면 / 562-0739) 아우라지에 위치. 숙박과 식사 가능. 전 여사의 아라리 한 대목과 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청원식당(북면 / 562-4262) 정선의 명물인 콧등치기 메밀국수가 유명하다. 여량역 앞에 위치.
-동트는 농가(정선읍 / 563-3340) 평창에서 정선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 쥐눈이콩 전문 재배영농조합법인으로 식사와 쇼핑, 숙박이가능.‘ 쥐눈이콩 삼년묵은 된장찌개’6,000원
-약초산방(북평 / 562-2287) 객실은 통나무와 황토로 지어졌으며 여러 가지 약초 체험을 할 수 있다.
-여름치 카페와 여치 카페 : 여름치 카페는 여랑역에, 여치 카페는 구절리역에 있으며 (주)KTX관광레저에서 운영한다. 563-8787
-메주와 첼리스트(임계 / 562-2710) 도완녀 여사의 여러 가지 장류 제품과 화장품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레일바이크 예약 www.ktx21.com(2인승 18,000원 / 4인승 26,000원)
-화암동굴 560-25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