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과 한려해상국립공원
우정사업본부에서 전국의 집배원과 함께 만든 책 <집배원이 추천하는 가을, 그리고 여행이야기>에서 찾은 이달의 여행지는 경상남도 통영 그리고 비진도다.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오고 가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다 빛은 맑고 푸르다’ 통영이 고향인 작가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은 이렇게 시작한다.
유독 예술가들이 많이 태어나고 자란 통영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을 품고 있다. 1968년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이자 최초의 해상국립공원이 되었다. 경남 거제시 지심도에서 전남 여수시 오동도까지 삼백 리 뱃길을 따라 크고 작은 섬들과 천혜의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룬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바닷길로 이름난 ‘한려수도’는 통영시 한산도와 여수시의 앞 글자를 따서 지어졌다. 70여 개의 무인도와 30여 개의 유인도. 섬 밖에서 섬을 바라볼 때의 멋. 통영에선 그것을 잘 느껴볼 수 있다.
통영의 섬 그리고 바다백리길
진정한 통영을 만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주변의 섬도 둘러본다.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매물도와 소매물도, 비진도 등으로 가는 배가 하루 3~4번 있다. 비진도에는 외항과 내항이 있고 이는 곧 마을의 이름이 되었다. 매물도와 소매물도에 가는 이들과 같은 배를 타고 통영항에서 약 40분이면 비진도에 닿는다.
이 배를 탄 사람들 손엔 대부분 새우 과자가 들려있다. 과자를던지면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르는 갈매기가 재빠르게 와서 과자를 받아먹는 모습에 어른도 아이도 즐겁다. 배를 타고 섬으로 떠나는 여행은 이렇게 여행 속에 여행을 만든다.
통영에는 ‘바다백리길’이라는 이름의 길이 있다, 이는 새로이 인공적으로 조성한 길이 아니라, 섬 주민들이 산에 나무를 하러 지게를 지고 다니던 길이나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용하던 길을 활용해 조성했다. 천천히 걸으며,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이 길을 직접 걸어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바다백리길은 미륵도 달아길, 한산도 역사길, 비진도 산호길, 연대도 지게길, 매물도 해품길, 소매물도 등대길로 총 6구간이 있다. 이 길에 반한 시인과 사진가가 함께 만든 책 《섬에서 섬으로 바다백리길을 걷다(남해의 봄날)》에도 길에 대한 정보와 정서가 잘 담겨있다.
비진도
비진도에서의 하루
비진도는 두 개의 섬이 붙어 있는 듯한 그 모습이 모래시계처럼 보이기에 ‘모래시계섬’이라고도 불린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외항마을에서 내려 푯말을 따라 비진도 산호길로 걸어간다. 이 길은 초입부터 전망대까지, 오르막이 심해 평소 자주 걷지 않았던 사람들에겐 좀 힘든 코스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땀을 흘리며 삼십여 분 올라 미인전망대에 서면 그 피곤함과 힘듦이 전부 사라진다. 멋진 풍경에는 분명 초월적인 힘이 있다. 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주변의 섬들도 아름답다. 나지막이 서 있어 이름도 잘 모르는 그 섬들이 진정한 비진도의 풍경이 된다.
비진도에 갈 때는 여객터미널 앞에 나란히 늘어선 충무김밥집에서 식사할 것을 챙겨가자. 시간이 허락된다면, 이런 섬에서의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통영보다 더 깊은 통영을 만나는 방법 - 섬으로 떠나 그곳에서 하루를 머물며 아침저녁 공기를 느끼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박경리 기념관과 묘소
박경리 기념관
박경리 생가터의 현판
박경리 선생의 묘소
이순신 공원 Ⓒ 통영시청
통영에서 태어난 작가 박경리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박경리 기념관. 통영의 주산인 미륵산을 끼고 있는 이곳은 작가가 2008년 세상을 떠나고 통영시에서 건립해 2010년 개관했다. 기념관 가까이에 선생의 묘소가 있기에 작가 박경리를 사랑하는 이들은 반드시 찾아가는 곳이다. 기념관에서 나와 마당의 기념상, 시비 등을 살펴보며 걷기를 15분 남짓, 묘소에서 내려다보이는 통영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고향 통영 바다가 보이는 양지바른 곳에서 영면의 세계로 떠난 문학의 거장. 올해 그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잊지 않고 이곳을 찾아온 독자들의 꽃다발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다양한 삶 속에서 마주하는 삶의 끝. 어느 작가가 이렇게 자신의 고향에서 바다를 보며 영원히 잠들 수 있을까. 온 힘 다해 남김없이 살다가 간 거장은 정작 이 세상에 참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났다. 통영은 그가 남겨둔 것을 보존하고 공유하는 모습을 그 어떤 도시에서보다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충렬사
통영중앙동우체국
중앙동우체국과 유치환 시인
통영의 중앙동우체국에는 조금 특별한 시비(詩碑)가 있다. 정문 계단 옆, 빨간 우체통과 나란히 놓인 청마 유치환의 ‘행복’ 시비가 그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여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유치환의 시 <행복> 중). 유 시인이 생전에 여인으로서 사랑했던 시인 이영도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무려 5천여 통이 넘는 편지를 보낸 곳이 바로 이곳 중앙동우체국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시비를 보며, 비록 시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시 한 구절을 음미한다. 왠지 이 우체국 안에서 편지 한 통을 쓰고 싶어진다.
봄날의책방
거점이 되는 지역의 서점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 지역 곳곳엔 작은 서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중 통영을 지키는 서점으로 ‘봄날의책방(통영시 봉수1길 6-1)’이 있다. 출판사 <남해의 봄날>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그야말로 통영과 더욱 가까이 지내고 싶은 사람들을 반긴다. 주택을 개조한 서점은 그 구조도 재밌는데 방마다 다양한 책과 볼거리, 노란색 벽면에 더해진 그림과 책으로 가득한 유리창 너머의 풍경이 밖에서 들여다보기만 해도 그 안이 궁금해진다.이곳에선 매년 봄 <봉수골 꽃편지>라는 지역신문을 만든다. 서점은 결국 책과 사람을,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를 연결하고 이어준다. 지역의 거점 역할을 하면서 그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모은다. 또한 <통영 예술가의 길>이라는 지도도 볼 수 있는데, 이문학 지도를 펼치면 통영을 사랑하고, 통영에 머물렀던 이들이 살아난다.
해 질 녘의 달아공원
달아공원 Ⓒ 통영시청
달아공원 Ⓒ 통영시청
통영에서 멋진 일몰을 감상하기 위한 명소를 물으면 통영시민 열에 아홉은 달아공원을 말한다. 통영시 남쪽, 미륵도 해안을 지나는 해안도로 중간에 위치해 대중교통으론 닿기 힘들지만, 통영에서 해가 질 땐 이곳에 머무는 것이 좋다. 가끔 여행지에서 바라본 근사한 일몰은, 일상에서도 매일 뜨고 지는 해를 낯설게 한다. 달아공원에서 산양초등학교 풍화분교장까지의 길은 통영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길로 꼽힌다. 이 길을 통해 바라보는 다도해(多島海). ‘섬이 많은 해역’이란 뜻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겨울의 통영이 좋은 이유
통영은 겨울에도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다. 11월, 통영을 찾았을 때도 서울과는 확연히 달라 두꺼운 겉옷이 필요하지 않았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는 언제나 우릴 움츠리게 하니, 더욱 따뜻한 곳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겨울이지만 흔히 생각하는 그런 겨울이아닌 곳.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올 한 해 고생했다고 스스로를토닥이고, 또 쉼을 청해보면 어떨까. 앞만 보며 열심히 살아온 우리를 돌아보기 좋은 통영. 수많은 섬이 그림처럼 떠 있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을 품은 곳. 하염없이 이곳을 바라보며, 망중한이 필요한 당신에게 12월의 통영을 추천한다.
여행 Note
몇 년 사이 젊은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통영. 최근 문을 연 카페, 이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 통영 출신의 예술가가 중심이 되어 새로이 만들어진 공원, 이 안에서 단지 자연을 보고 즐기는 기행 그 이상으로 직접 걷고 뛰면서 만날 수 있는 통영과 마주해보자.
포지티브즈 통영
통영의 동피랑 마을에서 숙소와 카페를 운영하는 포지티브즈 통영.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지만 좁은 골목에 들어서고, 계단을 올라야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조용히 숨어 있다. 커피를 비롯해 디저트 종류가 맛있다.
통영시 중앙시장4길 6-33 / 010-4182-3715
통영 우짜·죽
장이 서던 날 우동도 먹고 싶고, 짜장면도 먹고 싶어 하던 옛사람들에게 우동에 짜장 한 국자 얹어주던 것이 계기가 되어 통영에서 유명해진 우짜. 이곳에선 고구마 빼떼기죽, 삼겹살 김밥 등도 판매한다. 강구안 가까이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
통영시 통영해안로 321-1 / 055-645-7909
전혁림 미술관
1915년 통영에서 태어나 200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통영을 품은 전혁림 화백. 독특한 색채와 풍경을 이루는 작품으로 ‘색채의 마술사’ 또는 ‘바다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전 화백이 생활하던 집을 헐고 새로운 창조의 공간으로 신축, 2003년 개관했다. 월, 화 휴관.
통영시 봉수1길 10 / 055-645-7349
통영의 시장 두 곳
통영에는 강구안, 동피랑 마을 근처의 중앙시장과 통영항 여객선 터미널 근처의 서호시장이 있다. 중앙시장엔 2, 7일에 오일장이 서기에 주변이 분주하다. 먹을거리가 더욱 풍부한 곳은 서호시장. 원조 시락국, 풍화 충무김밥 등을 맛보자.
중앙시장 : 경남 통영시 중앙시장1길 14-16 / 055-649-5225
서호시장 : 경남 통영시 새터길 42-7 / 055-645-3024
여행연구소 73걸음
통영 강구안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1분 동안 직접 걸어 세어본 평균 걸음 수를 연구소 이름으로 내세우는 곳. 매장은 두 곳인데 강구안점은 셀프 흑백사진 스튜디오로, 서피랑점은 카페로 운영되며 기념품도 살 수 있다. 통영과 거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가이드 투어도 활용할 수 있으니 미리 확인할 것.
강구안점 : 통영시 강구안길 9
서피랑점 : 통영시 뚝지먼당길 4(99계단 입구) www.73step.modoo.at / 010-5125-0073
윤이상기념공원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고향인 통영에는 그의 생가 일대에 윤이상기념공원이 있다.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 등 통영을 음악의 도시로, 또 세계 곳곳의 클래식 연주자들이 방문하는 곳으로 만든 주인공이 바로 윤이상임을 기억하며 들러보자.
경남 통영시 중앙로 27 / 055-644-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