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지나무골, 사목, 방주골, 어은돌, 두여, 샛별, 윤여, 바람아래... 태안 1,300리 바닷가에는 30여 개의 모래해변이 소담스럽게 담겨 있다. 꽃지, 몽산포, 만리포 등 제법 유명한 해변 외에도 한적한 포구와 영화, 드라마의 배경이 된 바닷가도 있다. 지도를 펼쳐놓고 동그란 점을 찍어보면 푸른 바다에 실한 포도송이가 완성된다.
포도송이처럼 이어진 청아한 해변과 포구
바다 가는 길목의 우체국
태안의 우체국들은 바다 향기와 함께 한다. 안면, 고남, 원북, 이원 등, 태안의 우체국을 지나쳐 길에 몸을 맡기면 정겨운 바다가 불현듯 모습을 드러낸다. 밀국낙지, 굴 등 푸짐한 해산물도 우체국 어귀의 소박한 식당에서 만날 수 있다.
남쪽 끝 안면도의 북적임과 달리 북쪽 포구와 해안은 한갓진 겨울 바다의 모습을 담아낸다. 만대항은 태안반도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포구다. 만대마을 사람들이 회고하는 포구의 과거는 아련한 추억을 만들어낸다. 만대까지 버스도 다니지 않았던 시절, 포구는 겨울이면 눈밭 길을 서너 시간 걸어서 닿아야 했던 외딴 곳이었다. 대신 인천까지 오가던 배가 있었고, 급한 용무는 가로림만 건너 서산으로 고깃배를 띄웠다. 요즘도 서산 인부들이 점심으로 매운탕 한 그릇을 먹고 가는 일이 다반사라고 마을 주인은 전한다.
독특한 해안지형인 신두리 사구는 천연기념물로 등재돼 있다.
태안반도 북쪽 끝 만대포구
만대포구의 겨울은 굴이 푸짐하게 쏟아질 때다. 물이 빠지면 종패를 매단 굴 밭이 포구 앞으로 드넓게 도열한다. 올해는 작황이 예전 같지 않지만 푸짐한 인심만은 그대로다. 만대항을 품은 가로림만 일대는 태안 인근 바다 중에서도 어족이 풍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럭, 노래미, 농어 등이 쏠쏠하게 나온다.
만대포구를 기점으로 태안반도의 끝자락에는 상념을 부추기는 조연들이 길목마다 모습을 드러낸다. 삼형제바위, 새막금쉼터, 당봉전망대 등은 만대마을을 에워싸고 사연 있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만대포구의 모습은 태안 솔향기길이 생기면서 제법 바뀌었다. 유명 편의점과 커피 전문점이 들어섰고, 주말 낮이면 걷기 여행자들이 단체로 몰려오기도 한다. 순간의 들썩임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다시 예전 고요했던 포구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정적만 남은 해 질 무렵의 만대포구는 한갓지고 여유롭다. 포구 옆에는 겨울 휴지기에 들어간 만대염전이 어깨를 낮게 들썩이며 늘어서 있다.
태안에서는 겨울 별미인 자연산 굴을 맛볼 수 있다
이원면의 별미인 밀국낙지탕
해변 따라 사색의 솔향기길
솔향기길은 태안반도의 세월과 절경을 간직한 채 유유히 이어진다. 바닷가 비탈 위로 연결된 태안반도의 끝 길을 걷는 체험은 색다르다. 반도 서쪽으로 내려서는 솔향기길 1코스의 저녁노을 트레킹은 ‘명품’ 의 반열에 올라 있다. 이 길은 위안의 길이고, 사색의 길이다. 만대포구에서 시작된 솔향기길 1코스는 남쪽 꾸지나무골 해변까지 약 10㎞ 가량 이어진다. 오르막길을 거스르고 굴바위를 지나며 자갈 해변을 걷는 3시간 30분의 여정이다. 길 곳곳은 마을, 바닷가, 펜션 등으로 연결되며 아기자기한 재미를 더한다. 썰물 때 몸을 드러낸 바위에는 자연산 굴이 다닥다닥 치열하게 붙어있다. 굴 한 줌이면 저녁 밥상은 훌륭하게 채워진다.
태안반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해수욕장은 꾸지나무골 해변이다. 뽕잎의 대용인 꾸지나무잎으로 누에를 치던 곳이 지금은 꾸지나무를 병풍삼은 해변이 됐다. 603번 지방도를 되돌아 내려오면 길은 원북을 거쳐 신두리 사구로 연결된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바닷가 모래 언덕으로, 태안 8경 중 하나이자 천연기념물이다. 모래 언덕에는 봄, 여름이면 해당화, 갯멧꽃, 등 각종 갯벌식물들이 자라고 가을, 겨울이면 억새 숲이 병풍처럼 드리워진다. 최근에는 사구 보존을 위해 나무데크길이 조성됐다. 신두리해안사구 남쪽 가까이에는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두웅습지가 있다.
안면도 휴양림은 겨울이면 더욱 운치를 자아낸다.
겨울 산책 운치 있는 안면도
지독히도 많은 눈이 내린 뒤에는 안면도로 간다. 태안의 남쪽 안면도의 푸른 겨울 바다는 회색빛이 덧칠해지면 색깔과 모습을 바꾼다. 안면도 휴양림은 따뜻한 계절과는 색다른 정취를 자아낸다. 궁의 창건 때 이용됐다는 늘씬하게 쭉 뻗은 각선미의 안면송과 그 위를 살포시 덮은 ‘솜이불’ 눈의 앙상블은 매혹적이다. 겨울이면 관광객들의 북적임도 적고 솔향과 갯내음만 그윽하게 깃든다. 한옥이 어우러진 숲속의 통나무집은 바다향이 덧씌워져 운치를 더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산책로로 치면 삼봉 해변 소나무 오솔길도 빼놓을 수 없다. 사구로 된 해변길을 따라 기지포 해변까지 걸어본 뒤 돌아올 때는 파도 소리와 나란히 뻗은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걸을 수 있다. 이 오솔길과 드넓은 해변에서 각종 뮤직 비디오와 CF가 촬영됐다. 삼봉~기지포 구간의 사구는 전국 우수 생태 복원지로, 안면도의 바다와 숲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샛별, 두여해변을 서성거리다 가슴이 울컥거리면 바람아래 해변에 몸을 의지해본다. 시인 박성우는 수필 ‘남자, 여행길에 바람나다’에서 ‘안면도의 바람 아래 해변, 지독하게 보고 싶은 당신’을 추억해 냈다. 이곳 해변에 서서 얼굴이 발개지도록 갯바람을 맞아도 좋다.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아낙네들
영목항은 안면도 남쪽 끝자락에 매달려 있다.
볕에 말리는 생선이 정겨운 백사장 포구
최남단 영목항에서 맞는 일몰 일출
태안의 해변에서 맞는 일몰, 일출은 뜻깊은 추억거리다.
꽃지해변의 할미 할아비 바위에서 지난 해를 배웅했다면 일출은 안면도 최남단의 영목항에서 맞는다. 영목항은 인근 원산도나 대천으로 향하는 배가 드나드는 곳이다. 영목항 건너편의 작은 섬들에는 옹기종기 펜션들도 들어섰다. 새해 1월 1일에는 영목항에서 오붓한 해맞이 행사도 열렸다. 영목항 인근의 가경주마을은 새 둥지처럼 아름다운 마을로, 현지인들이 안면도 중 일몰이 가장 멋진 마을로 손꼽는 곳이다. 국내 제1의 펜션 밀집지인 안면도에는 황도, 대야도 등 바다와 맞닿은 전망 좋은 숙소들이 많다. 연륙도가 된 황도는 썰물 때 드러나는 조개껍데기 길이 인상적이며, 음력 정월 초이튿날 붕기풍어제가 열리는 당집도 둘러볼 수 있다.
태안 등 가볼 만한 겨울여행지들은 우정사업본부에서 발간한 ‘집배원이 전해 드리는 겨울여행’ 책자 속에 담겨 있다. 책자는 집배원들이 추천하는 겨울철 여행지로 전국 곳곳의 명소와 맛집 등을 소개하고 있다. 겨울여행 책자는 가까운 우체국을 방문하면 무료로 받을 수 있으며 ‘우체국과 여행’ 홈페이지(www.posttravel.kr)에서도 그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TIP ‘집배원이 전해 드리는 겨울여행’ 둘러볼 곳
신진도
안흥항 연륙교 건너 신진도는 탐스러운 서해 풍경을 간직한 곳이다. 신진도 앞바다에는 옹도, 난도 등 아름다운 섬들이 가지런하게 늘어서 있다. 인근에 신진항이 인접해 있어 다양한 바다 먹거리도 맛볼 수 있다. 신진도의 방파제 낚시는 가족나들이객들에게도 인기 높다. 신진도 너머 하얀 등대가 있는 마도는 1년 내내 물고기가 많이 잡혀 갯바위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다. 신진도에서는 유람선을 타고 인근 앞바다를 둘러보는 체험도 흥미롭다.
천리포수목원
만리포 해수욕장 인근의 천리포 수목원은 1만3,000여 종의 다양한 식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호랑가시나무 370여 종, 목련 400여 종, 동백나무 380여 종 등이 집중적으로 식재돼 해외에서도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식물원은 인위적인 관리를 최소화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해 식물 원형의 모습을 보여준다. 식물원의 밀러 가든은 그중 아름다운 정원으로 알려져 있다.
꽃지 해변
꽃지 해변은 서해 최고의 낙조 포인트다. 꽃지 해수욕장은 길이 3.2㎞에 해변의 경사가 완만하고 물빛이 깨끗한 것으로 명성 높다. 물이 빠져 갯벌이 드러나는 낮에는 조개를 캐거나 갯바위에서 게를 잡으러 오는 사람들로 붐비며, 해질녘이면 아름다운 낙조 풍경을 구경하러 오는 이들로 북적거린다.
태안의 맛
태안은 눈뿐만 아니라 입도 즐거운 고장이다. 신진도 포구에서는 우럭젓국, 우럭찜, 우럭탕수육 등이 별미다. 우럭젓국은 예전 이 일대 제사상에도 올려졌던 귀한 음식이다. 신진항의 ‘서해활어’ 식당은 우럭탕수육과 싱싱한 활어회를 내놓는다. 안면읍의 ‘방포수산'은 해산물 한상차림이 푸짐하다. 이원면 일대는 밀국낙지탕이 유명하다. 인근 해안에서 잡히는 이곳 낙지는 한입에 들어갈 정도로 크기가 적당한 게 특징. 낙지와 함께 밀국(칼국수)을 넣고 끓이면 면발에 시원한 국물이 배어들어 쫄깃쫄깃한 맛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