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향기는 남해 깊숙이 들어설수록 완연하다. 바다를 가로지른 다리 위로 기분 좋은 바람이 스친다. 소담스러운 어촌마을과 점점이 떠 있는 섬들. 그리고 싱그러운 바다 내음. 그리움으로 내달린 길 끝, ‘보물섬’ 남해의 풍경들은 푸른 기운과 함께 다가선다.
해안환경공단이 선정한 청정해변인 설리해변
봄이오는 길목의 남해 해변길을 걷고있는 여행자들
남해 풍경과 함께하는 우체국
남해의 우체국들은 바닷가 마을과 수려한 풍경이 어우러진 공간에 들어서 있다. 창선, 미조, 상주, 고현우체국 등은 남해의 명소와 함께하는 우체국들이다. 창선우체국은 멸치잡이 죽방렴과 지척이고, 미조우체국은 남해의 아름다운 포구인 미조항 골목에 자리 잡았다. 상주우체국에는 상주은모래비치의 보드라운 바람이 분다. 고현우체국은 이순신 장군의 흔적이 서린 이충무공전몰유허지가 가깝다. 남해의 여행지로 내달리는 길목 어디서든 붉은 외관의 우체국이 먼저 따뜻하게 길손을 반긴다.
삼천포대교가 뚫리면서 남해의 풍경은 바뀌었다. 남해대교를 거쳐 섬을 한 바퀴 두루두루 돌아야 닿았던 동북쪽 창선마을은 아득함을 털어냈다. 서울에서 남해까지 천릿길. 또 한참동안 해안도로를 일주해야 도착했던 창선은 이제 뭍에서 가까운 친숙한 곳이 됐다. 창선마을에서 엿보는 가장 기이한 풍습은 멸치잡이 원시 죽방렴 조업이다. 창선교 아래 지족해협은 밀물과 썰물 때 수심의 차이가 크고 조류가 거세 예전부터 전통 멸치잡이가 성한 곳이었다. 물살이 흘러들어오는 쪽을 향해 ‘살’이라 불리는 참나무 기둥을 ‘V’자형으로 촘촘히 박아 놓고 조류의 힘으로 멸치를 잡아내는데, 둥근 통 안에 잡히는 고기를 후릿그물이나 뜰채로 떠 올리기만 하면 된다. 이런 죽방렴은 전국에서 자취를 감추고 이제는 남해 창선 일대에만 남아있다.
봄꽃이 화사하게 피어난 가천 다랭이마을의 해변 산책로
물미해안도로 독일인 마을
이국적인 자취를 담아낸 독일인 마을
창선교를 지나 물건리에서 미조항까지 이어지는 물미 해안도로는 그림 같은 풍경의 드라이브 코스다. 바닷가를 따라 1,500m의 숲이 늘어서 있는 물건리는 방조, 방풍림이 해안가를 따라 도열한 모습이 매우 이색적이다. 아름다운 어촌 100선에도 꼽혔던 곳으로, 300년 이상 된 아름드리나무들이 거센 파도와 바람으로부터 마을을 지켜냈다. 그래서 일까. 물건리는 이팝나무에 흰 꽃이 필 때가 가장 예쁘다. 물건리의 포구 풍경은 건너편 언덕에 자리 잡은 독일인 마을에서 내려다보면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주황색 기와를 얹은 독일식 가옥들이 늘어선 독일인 마을은 독일 교포들의 집단귀향촌으로 20여 채의 아기자기한 집들이 포구와 조화를 이루고 서 있다.
독일에서 직접 공수해온 자재를 이용해 지은 집들은 앙증맞은 나무 창문에 뾰족 지붕과 담장이 소박하게 어우러져 있다. 세모 지붕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유럽의 한 어촌마을을 연상시킨다. 독일인 마을의 아침은 그물코를 다듬고 밥 짓는 연기가 솟는 남해의 다른 어촌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인 아내를 둔 머리 희끗희끗한 독일인 남편이 아내와 함께 정원을 가꾸며 여가를 즐기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독일인 마을 언덕 위에는 세계 각국의 정원을 모아놓은 원예 예술촌이 문을 열었다. 독일인 마을 인근 해오름 예술촌은 물건리의 폐교를 예술촌으로 꾸민 곳이다. 바다가 보이는 넓은 공간에서는 소소한 예술작품과 독일 벼룩시장에서 건너온 생활용품과 액세서리 등을 만날 수 있다.
물미해안도로의 고즈넉한 마을과 포구 전경
멸치잡이 배 드나드는 미조항
국토를 종으로 가르는 3번 국도의 시발점은 초전마을에서 만날 수 있다. 초전마을을 지나면 남해에서 가장 예쁜 포구인 미조항에 닿는다. 미조항은 남해 끝자락에 매달린 포구로 ‘미륵이 돕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을 정도로 어장이 기름진 멸치잡이 배의 집어항이다.
이곳 미조항은 멸치회, 갈치회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모여 있어 한결 인기가 높다. 새벽이면 횟감을 내놓는 위판장도 들어선다. 봄이 무르익으면 남해에서는 이곳저곳 시큼한 멸치 잔치가 벌어진다. 마을마다 멸치액젓을 담가놓은 커다란 통들이 골목에 도열하고 식당들은 멸치조림, 멸치회 등을 내놓고 손님을 유혹하기에 바쁘다.
미조항 바다 건너로는 쌀섬, 팥섬 등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떠 있다. 미조항에서 설리까지 이어진 해안도로에서 포구와 바다를 내려다보면 남해의 어촌마을들은 탄성으로 다가온다. 설리 해변은 마을과 모래 해변이 아담하게 언덕아래 숨은 곳으로 남해 주민들이 찾는 청정 휴식처다. 해변은 해양환경공단이 선정한 대한민국 청정 해수욕장 2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계단식 논 펼쳐진 다랭이 마을
가천 다랭이마을은 바다로 이어지는 100여개의 계단식밭이 인상적이다.
남해의 기운은 가천 다랭이 마을에서 가장 푸르고 활기차다. 남해도는 사면이 바다인 섬인데도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해안가 주민들 대부분이 바다로 이어지는 비탈에 계단식 밭을 일구며 살아간다. 섬 끝자락 가천마을은 절벽 위로 해안도로가 아슬아슬하게 달리고, 도로 밑에는 밭이 있으며, 그 마을 아래 바다가 놓인 재미있는 형상이다.
응봉산 자락 아래 가천 마을은 108개의 계단식 밭 외에도 다양한 사연 때문에 더욱 정겹다. 구수한 돌담길이 이어지는 마을에 들어서면 할머니들이 막걸리를 평상에 내어놓고 판다. 가천마을이 생태 마을로 지정된 뒤에 막걸리 집들이 하나둘 들어섰는데 등산객들이나 이곳을 찾은 외지인에게 손두부와 어우러진 가천 할머니 막걸리는 별미로 통한다. 척박한 터전의 가천마을 주민에게 토속신앙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다. 밭을 가로질러 마을 아래로 내려서면 암수 미륵바위가 있고 ‘밥무덤’이라는 서낭당도 마을 중앙에 들어서 있다. 그 살가운 풍경 위에 봄바람이 따사롭게 내려앉는다.
남해 외에도 싱그러운 봄 여행 코스들은 ‘우체국과 여행’ 홈페이지(www.posttravel.kr)와 ‘집배원이 전해 드리는 여행’ 책자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여행책자는 전국 우체국 3,500여 곳에서 무료 배포 중이며, ‘우체국과 여행’ 앱을 통해서도 봄의 별미, 봄축제 등 전국의 탐스러운 곳들을 찾아볼 수 있다.
TIP ‘집배원이 전해 드리는 여행’ 둘러볼 곳
두모마을
두모마을은 남해가 간직한 아름다운 체험 마을이다. 남해읍에서 상주은모래비치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했으며 마을 뒤편으로는 금산 봉우리가 드리워져 있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인 포구 건너편은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가 가깝게 자리했다. 마을의 인기 높은 체험은 초보자들도 도전 가능한 바다 카약이다. 통발 체험, 낚싯배 체험이 가능하며 해변에는 캠핑장도 마련돼 있다.
보리암
보리암은 금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이다. 남해에서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보리암에서 내려다보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광경은 압권이다. 보리암을 거쳐 금산의 38경을 두루두루 둘러보려면 송정해수욕장의 등산로를 택하는 게 좋다. 보리암 뒤쪽으로 대장봉을 비롯해 쌍홍문, 상사바위, 돼지바위 등 독특한 형상을 지닌 기암괴석들이 즐비하다.
바람흔적미술관
바람흔적미술관은 남해편백자연휴양림 가는 길에 위치한 바람을 테마로 한 이색미술관이다. 설치예술가 최영호 씨가 문을 연 곳으로 미술관 앞 조형물인 대형 풍차들이 인상적이다. 미술관은 내산저수지를 끼고 자리했으며 매달 다른 테마의 작품들을 무료 전시한다. 저수지를 조망할 수 있는 테라스가 마련돼 있으며 조각공원도 갖추고 있다.
남해의 맛
봄이면 남해에는 신선한 멸치들이 한가득 올라올 때다. 남해의 대표 메뉴는 멸치 쌈밥으로 멸치 쌈밥은 상추쌈에 뼈째 조린 멸치를 국물과 함께 넣어 먹어야 제맛이다. 창선교와 미조항 일대에서는 멸치 쌈밥 외에 멸치회와 막걸리 식초로 숙성시킨 갈치회를 맛볼 수 있다. 남면 ‘복만식당’은 전복갈치조림이 유명하며 향긋한 멍게비빔밥이 맛 좋다. ‘양아깐’이라는 남해에서만 나는 야생초 반찬도 상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