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은 봄 길과 물길이 한데 어우러진 고장이다. 금강 따라 수려한 벚꽃 산책로가 이어지며, 시인 정지용의 따사로운 시구가 길목마다 녹아든다. 봄 길 여행은 ‘향수’를 쓴 시인 정지용의 생가가 있는 옥천 구읍에서 시작한다. 구읍 곳곳은 빛바랜 담장, 상점 간판들조차 정지용의 시로 단장돼 있다. 골목길만 서성거려도 시향이 물씬 풍겨난다.
4월이 찾아들면 옥천 금강변과 장계관광지 일대는 시향과 봄바람에 일렁인다.
정지용이 어린 시절을 보낸 옥천 구읍의 생가
구읍 생가터에 들어선 시인 정지용 동상
정지용의 편지가 오갔을 옥천우체국
구읍사거리에서 다리 하나 건너면 정지용 생가다. 약국집 아들로 태어난 정지용은 이곳 구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정지용의 시에는 유독 그리움의 사연들이 잔잔하게 담겨 있다.
정지용이 태어난 해가 1902년. 옥천우체국이 읍내에 옥천우편개편소로 문을 연 것이 1906년의 일이다. 정지용은 1910년 옥천공립보통학교(지금의 죽향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12세인 1913년 결혼했다. 1918년 서울, 일본 교토 등으로 유학을 떠났으니 그가 고향에 있는 가족들과 편지를 주고받을 당시는 옥천우체국 직원들의 손길을 거칠 시기다. ‘향수’, ‘오월소식’ 등에서 엿볼 수 있는 시인의 수려한 문장은 금강줄기 지나, 집배원의 손에 건네진 뒤 이곳 구읍까지 전해졌음을 가늠케 한다. 생가 마당에는 ‘엽서에 쓴 글’이라는 시 작품도 담겨 있다.
‘나비가 한 마리 날러 들어온 양 하고/ 이 종잇장에 불빛을 돌려대 보시압./(중략)/ 누나, 검은 이 밤이 다 회도록/ 참한 뮤-쓰처럼 쥬무시압./ 해발 이천 피이트 산봉우리 우에서/ 이제 바람이 나려 옵니다.’
옥천의 우체국과 빨간 우체통 앞을 지나친다면 옛 시인의 온기와 문장들이 가슴에 따사롭게 내려앉을 일이다.
구읍 골목은 정지용의 시로 담장이 단장돼 있다.
시인의 작품이 전시중인 정지용 문학관
봄을 맞은 장계관광지는 벚꽃과 시구들이 어우러져 분위기를 더한다.
시와 예술이 담긴 구읍, 장계관광지
정지용의 생가 안팎으로는 그의 시작품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어 숨결을 더디게 만든다. 생가를 재현한 초가집 앞으로는 ‘향수’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실개천이 실제로 지줄대고 흐른다. 생가 옆에는 물레방아를 낀 공원과 정지용 문학관이 들어서 있다. 그의 생전 작품들을 찬찬히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다. 시인의 생애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상영되며 직접 시를 낭송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구읍은 ‘향수 100리길’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구읍에서 장계관광지로 이어지는 길은 봄날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대청호반에 위치한 장계관광지는 시와 예술, 호반, 호젓한 산책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정지용의 시작품과 금강을 주제로 건축가, 디자이너, 아티스트, 문학인 등이 참여해 운치 있는 공간이 조성됐다. 오붓한 산책로 곳곳에는 놀이를 겸비한 예술작품들이 들어서 있고 호수를 바라보며 사색할 수 있는 쉼터도 마련돼 있다.
장계관광지는 정지용 시인의 시문학 세계를 재현한 프로젝트인 ‘멋진 신세계’의 종착점 역할을 한다. 시인의 원고지가 상상되는 모단광장, 대청호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시를 감상할 수 있는 일곱 걸음 산책로 외에 재밌고 독특한 조형물들이 관광지의 한편을 단장한다.
장계관광지는 호젓한 산책로가 금강변따라 이어진다.
둔주봉에서 조망한 한반도 지형
대청호와 이어지는 금강의 물줄기는 깊이 들어설수록 호젓하고 은은하다. 가덕리 청마리, 합금리로 연결되는 길은 ‘향수 100리’의 가장 한적한 코스 중 하나다. 언덕 위에 혹은 강변에 둥지를 튼 마을들은 물소리, 새소리만 들릴 뿐 일반 차량들은 거의 다니지 않는다. 마치 정지용의 ‘향수’ 속 얼룩백이 황소 한 마리가 터벅터벅 걸어 나올 듯한 정취를 풍겨낸다. 이 코스는 자전거 마니아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금강변 하이킹을 즐기려는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됐다. 안남면의 둔주봉은 금강 물줄기가 굽이굽이 흐르며 빚어낸 한반도 지형과 만나는 곳이다. 영월 서강의 한반도 지형이 유명하지만 옥천 금강에서도 또 다른 한반도 모습과 조우할 수 있다.
둔주봉의 두 봉우리 중 전망대가 마련된 작은 봉우리(275m)에 오르면 녹음의 산세와 맑은 금강이 어우러진 풍경과 맞닥뜨리게 된다. 둔주봉에 오르는 길은 산세가 험하지 않고 소나무 숲이 이어져 삼림욕에도 좋다.
금강 올갱이국의 달달한 봄내음
옥천은 봄길과 물길이 함께 하는 고즈넉한 고장이다.
향수 100리 길의 종착점은 금강유원지다. 금강유원지를 품은 금강휴게소는 상, 하행을 지나는 모든 차량이 한 장소에서 쉬어 갈 수 있는 단일 휴게소로 강변 벤치에 앉아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여유로운 휴식처 역할도 함께 한다.
봄날 금강변 나들이에 놓칠 수 없는 옥천의 별미가 올갱이(다슬기)다. 담백한 올갱이국 한 그릇이면 여독이 훌훌 날아간다. 금강변에는 유독 올갱이국 집들이 많은 데 이곳 식당들은 금강에서 직접 채취한 올갱이를 식탁 위에 올린다. 금강 올갱이는 다른 지역 올갱이와 비교해 크기는 작지만, 쓴맛이 덜한 게 특징이다. 사계절 올갱이 요리를 맛볼 수 있지만, 겨울을 넘기고 봄에 맛보는 올갱이의 맛이 부드럽고 달달하다.
‘집배원이 전해 드리는 봄, 나들이’ 책자에는 가족과 함께 봄나들이를 떠날 만한 여행지 100곳이 담겨 있다. 전국의 집배원들이 봄철 여행지로 추천한 잘 알려지지 않은 벚꽃길, 유채 마을, 바다낚시 명소, 돼지 관련 여행지를 소개하고 있다. 여행지와 함께 맛집, 축제, 특산물 등도 수록돼 있다. 봄 여행지는 ‘우체국과 여행’ 앱을 통해서도 무료로 살펴볼 수 있다.
TIP ‘집배원이 전해 드리는 여행’ 둘러볼 곳
소정리 벚꽃길
옥천 구읍에서 군북면 소정리 사이의 벚꽃길(옛 37번 국도)은 최적의 봄 산책 코스다. 교동리, 국원리를 거친 길은 소정리에 이르러 벚꽃과 대청호의 금강 줄기가 어우러진 완연한 봄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중간중간 예쁜 찻집들도 들어서 있어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다. 소정리 벚꽃은 4월 10일 전후로 만개한다. 벚꽃길은 장계리까지 연결되며 흰 꽃 세상을 빚어낸다.
고리산
고리산은 군북면에 위치한 산으로 ‘환산’으로도 불린다. 고리산으로 오르는 길은 인근 절경인 부소담악을 조망할 수 있어 산행객들에게 인기 높다. 부소담악은 마을 앞 호반에 암봉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황골에서 오르는 360봉 역시 고리산의 수려한 경치를 품고 있다. 정상 봉수대에 오르면 대청호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장령산 자연휴양림
장령산은 소백산맥의 정기가 이어지는 곳으로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숲과 금천계곡이 어우러진 곳이다. 장령산 자연휴양림은 옥천의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손꼽히는 금천계곡을 끼고 자리했다. 금천계곡에는 때 묻지 않은 생태환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휴양림은 숙박 시설을 갖추고 있어 숲과 계곡을 음미하며 봄날 힐링 여행을 즐기는데 안성맞춤이다.
옥천의 맛
옥천읍 ‘신짬뽕’은 갈비 짬뽕, 차돌박이 짬뽕 등 다양한 고기 짬뽕이 별미다. 옥천읍 ‘홍어한마리칼국수’는 홍어찜, 아구찜과 곁들여지는 누룽지 볶음밥이 맛있다. 구읍 ‘마당넓은집’은 한옥으로 둘러싸인 넓은 마당에 놋그릇에 산채, 새싹으로 신선한 맛을 낸 비빔밥이 명성 높다. 이원면의 ‘내고향 올갱이’ 는 된장을 풀어 맑게 끓인 올갱이국의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소정리에 들어선 ‘홍차가게 소정’은 영화 ‘회사원’에 대청호가 보이는 홍차 가게로 나와 유명해진 곳으로 홍차 맛이 좋다. 37국도변 ‘카페 호반풍경’ 역시 개방형 옥상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커피 한잔을 즐길 수 있는 명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