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란 이름의 무대, 영화 속 그 장소
1 추억의 미로로 얽힌 골목길 부산 감천마을
부산의 ‘마추픽추’, ‘산토리니’라 불리는 감천마을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의 터전이었던 달동네가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곳이다. 산자락을 따라 늘어선 계단식 집단 주거형태는 부산 달동네의 전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지만, 사람 한 명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미로처럼 얽혀있는 미로 같은 골목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감천마을만의 독특한 풍경이다. 영화 <김종욱 찾기> <슈퍼스타 감사용> 촬영지였던 이곳의 빈집은 테마별 예술 공간으로 거듭났고, 주민이 거주하던 집과 공중목욕탕은 원형 그대로 보존해 전시관, 주민센터로 활용하고 있다. 화살표를 따라 미로 같은 골목을 걷다 보면 어느새 당도하는 전망대에서는 감천동과 감천항, 북항 등 부산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문의 051-293-3443
www.gamcheon.or.kr
주소 부산광역시 사하구 감내1로 200(감천동) 감내어울터
2 산속의 동화마을 영월 모운동
예능프로그램 <짝>의 촬영지이자 드라마 <버디버디>의 배경이 됐던 영월 모운동은 구불구불한 산 깊은 곳에 있다. 1980년대 말 폐광되고 사람이 떠나면서 마을은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그러나 주민들이 투박한 솜씨로 전래 동화를 벽화로 그리면서 모운동은 또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예술가의 솜씨는 아니지만 산속에 숨은 산골마을의 골목을 정겨움과 동화 속 장면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한편 옛 탄광길을 개발한 ‘광부의 길’은 노천광산과 광부의 샘, 철분이 많아 황금색 물이 쏟아지는 황금폭포, 탄광목욕탕 등이 3km에 이르러 마을의 자랑거리다. 광부의 길은 3시간 30분이면 모든 코스를 돌아볼 수 있다.
문의 영월군청 문화관광과
033-370-2838
Tip 하룻밤 묵을 예정이라면 모운동의 유일한 펜션으로 폐교를 개조한 펜션 ‘하늘아래펜션’(마을 이장 033-375-3300)이나 민박을 이용해야 한다.
3 바닷가 마을 이야기 묵호 논골담길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촬영지로 2013년 말, 드라마 <상속자들>의 여자 주인공 은상이의 집으로 등장하며 다시 주목을 받았다. 과거 묵호항에서 뱃일과 덕장일을 하던 이들이 모여 살던 산동네지만 삼척과 태백의 석탄, 동해의 시멘트를 실어 나르며 전성기를 맞았다. 논골담길 골목의 그림은 굽이진 산동네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다. 이를테면 벽화 중 오징어와 명태가 가득 담긴 지게 그림은 마을 언덕 꼭대기 덕장으로 오르는 길을 추억한다. 논골담길은 크게 네 개의 대표적인 골목길이 있는데 골목마다 묵호의 과거, 현재, 희망과 미래, 시간의 혼재를 담고 있다.
문의 033-531-3298, www.mukho.org
Tip 묵호등대공원 주차장 옆 골목길로 내려가면 수변공원과 묵호항으로 이어진다. 묵호항의 대표 먹거리는 오징어로, 갓 잡은 싱싱한 오징어로 만든 물회가 저렴하다.
예술과 골목길의 이중주
1 쇳소리에 스며든 예술 문래예술창작촌
문래동은 본래 공장에 부품을 납품하던 철재 상가들이 밀집했던 곳이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대학로, 홍대 등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높아지는 임대료에 쫓겨 새로운 작업실을 찾아 이곳으로 이주해 오면서 철강거리는 강퍅한 삶과 예술이 공존하는 ‘예술창작촌’이 됐다. 현재 문래예술창작촌에는 회화, 조각, 영상, 패션, 애니메이션, 일러스트 등의 시각예술 장르를 비롯해 춤, 연극, 마임, 거리 퍼포먼스 등의 공연예술과 비평, 시나리오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2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덕분에 골목길에는 벽화와 조형물들이 즐비하며, 벤치, 카페의 문 손잡이 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규칙 없이 뻗어있는 골목을 걷다 보면 갔던 길을 돌아 나오거나 방향을 잃기 십상이지만 이마저도 골목길 산책의 즐거움일 것이다.
위치 서울 지하철 2호선 문래역 7번 출구로 나와 200m 직진
Tip 철공소와 철강 상가가 문을 닫는 주말과 공휴일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2 바다가 마중하는 갤러리
제주 ‘작가의 산책길’ 샛기정공원에서 시작해 칠십리시공원, 소암로, 부두로, 이중섭거리를 거쳐 다시 샛기정공원으로 돌아오는 ‘작가의 산책길’에는 골목의 다정함이, 바다의 시원함, 예술가의 영혼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에 맞게 숲, 집, 바다, 길 등의 주제로 조성된 산책길에는 돌담 조형물, 고사한 나무와 돌 등을 활용한 조형물, 화가 이중섭을 재현한 브론즈 등 43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해안 절벽은 산책길의 또 다른 선물이다. 주말이면 이중섭미술관 주변으로 지역 예술가들이 참가하는 아트마켓도 놓치지 말자.
문의 서귀포시 문화예술과
064-760-2481
Tip 해설사와 함께하는 작가의 산책길 탐방(매주 토·일요일 오후 1시 출발), 서귀포문화예술디자인시장(매주 토·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3 상인과 작가가 함께하는 광주 대인예술시장
대형마트에 밀려 활기를 잃어가던 재래시장이 일상의 에너지를 담은 예술의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문을 닫은 점포는 공방이 되고, 좁은 골목은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갤러리의 거리로 변모한 것. 물론, 상인들의 삶도 계속됐다. 시장 골목골목 사이에는 예술가들의 열린 작업실이 여느 시장 상점처럼 열려 있고, 아무렇지 않게 갤러리 옆에는 건어물 가게 상인이 장사를 한다. 시장 밖의 골목과 벽에는 그림과 조각품 등이 전시돼 있다. 한 달에 한 번 개최하는 대인예술시장 야시장은 전국적인 명물로 상인과 예술가들의 소품, 창작품, 떨이 난전과 각종 이벤트가 펼쳐진다. 단, 11월 초까지 진행되는 야시장을 방문할 때는 미리 일정을 체크해야 한다.
문의 062-233-1420
blog.naver.com/daeinwork
주소 광주시 동구 제봉로 200번길
골목에서 만난 세계 지도
1 일상과 이국을 잇는 골목길 이태원
최근 가장 ‘핫’한 카페골목으로 떠오르기 전까지 이태원은 화려한 유흥업소, 가짜 명품, 미군부대와 가까운 서울 속의 외국이라 여겨졌다. 확실히 외국어 간판, 세계 각국의 음식점, 술집 등이 늘어선 이태원은 향락적이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그러나 큰길 옆으로 작게 뻗어있는 이태원의 골목길은 계단과 축대, 갈림길이 어우러진 골목길의 정겨운 풍경이 가득하다. 뿐이랴, 골목길에 있는 낮은 상점들은 일상의 소박한 민낯을 보여준다. 특히 이슬람사원에서 보광동 방면으로 내려가는 소방서길 일대와 이태원 도깨비 시장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계단 골목은 이태원의 독특한 골목길 풍경이 펼쳐진다.
위치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3번 출구
Tip 이태원 골목길은 제일기획 건물과 순천향병원 사이에 놓인 길, 회교사원과 제일기획 사이의 골목, 회교사원과 보광동 방면으로 내려가는 소방서길, 회교사원과 도깨비시장을 잇는 길 등 크게 4구역으로 나뉜다.
2 또 하나의 중국 차이나타운
수도권 1호선 전철의 종착역 ‘인천역’의 또 다른 이름은 차이나타운역이다. 역 앞에 높이 서 있는 중국식 전통 대문인 패루는 차이나타운의 시작을 알린다. 화교들이 정착하면서 국내 최대 차이나타운을 형성한 이곳은 중국식 먹거리, 중국 전통의상 상점들의 마중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한껏 부풀려놓는다. 붉은 바탕에 한자로 쓰인 간판, 양꼬치 냄새, 중국어로 호객하는 장사꾼들의 목소리는 중국에 온 듯한 기분마저 느끼게 한다. 한편 차이나타운의 뒤편 자유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구한말로 시계를 돌려놓는다. 인천 개항 당시 건물과 일제강점기 때 세워진 건축물 13동과 창고를 개조한 박물관, 갤러리, 일본식 가옥, 성당 등이 들어서 있어 구한말 인천항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문의 인천종합관광안내소
032-777-1330
www.ichinatown.or.kr
3 국경 없는 거리 안산 원곡동
‘국경 없는 마을’인 안산 원곡동은 중국인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몽골, 베트남 등 60여 개국 5만여 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는 다문화특구. 특히 휴일이면 전국 각지의 외국인들이 친구를 만나기 위해, 자국의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이국적인 거리를 여행하는 한국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국의 문자로 쓰인 간판, 해외여행에서나 봄직한 과일을 파는 식료품 가게,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을 파는 잡화상, 아시아음식점 등이 골목의 풍경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사실, 안산 원곡동은 아기자기한 벽화나 조각품, 세련된 갤러리, 카페 등을 찾기 힘들다. 골목도 생각보다 짧고 단순한 구조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이곳은 전 세계를 가리키는 주민센터 이정표에서, 중국식 호떡집 앞에서, 골목 전봇대에 붙은 구인광고 전단지에서 이주 외국인들의 거칠고 투박하지만 따뜻한 삶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위치 지하철 4호선 안산역 건너편
Tip 안산 원곡동의 매력은 단연 먹거리다. 지역주민인 외국인 근로자를 상대하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다.
근대문화유산의 골목길
1 조선 최초 외교관들의 거리 정동
1883년 미국공관이 세워진 후 영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 서양 공사관들이 빠르게 진출해 정동은 조선의 외교 1번지가 됐다. 또한 이화학당, 배재학당, 정동교회 등 근대식 학교와 교회가 들어서며 본격적인 정동의 화려한 시대가 열렸다. 주황색 지붕이 눈에 띄는 성공회서울성당도 이즈음 세워진 것이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온전한 로마네스크 양식을 가진 곳으로 곳곳에 한국적 요소를 조화시켜 건축학적으로도 의미가 깊다. 또한 정동의 회전식 교차로에 위치한 정동제일교회는 1897년에 고딕식으로 건립된 최초의 감리교회로 일제강점기 시절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학생, 독립운동가에게 항일 활동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골목마다 근대문화 건축물이 보물처럼 남겨진 정동은 서구 열강 사이에서 국권을 지키려 했던 조선말기의 흔적이다.
문의 www.ntch.kr, 02-752-7525
Tip 정동길 근대유산 탐방 프로그램이 매주 2회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동네를 탐방하는 재미가 남다르다.
2 한국 근대사의 도시 혹은 시인의 고향, 군산 신흥동
군산의 원도심인 월명동, 신흥동, 장미동, 영화동에는 1900년대 초반의 삶이 남아 있다. 특히 일본인 지주와 부유층이 거주했던 신흥동의 ‘히로쓰 가옥’은 당시 호화롭던 일본인의 저택을 잘 보여준다. 월명동의 동국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본식 사찰이며 시인 고은이 출가했던 절로도 유명하다. 동국사 진입로 100m 구간을 정비한 ‘동국사 가는 길’은 지역 주민과 작가들이 문화거리로 조성해 2012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원도심과 제법 거리가 있지만 경암동 철길마을은 군산 골목길 여행에서 빠뜨리기 아까운 코스다. 1944년, 신문용지 제조업체가 생산품과 원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공장과 군산역을 잇는 2.5km 구간 철길 주변으로 마을이 형성된 곳. 10여 년 전부터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 인적이 드물어졌지만 좁은 철길과 평행선을 이룬 낮은 집들의 행렬은 여전히 정겹다.
문의 군산 문화관광
063-454-4000
tour.gunsan.go.kr
3 구한말 전국 3대 시장 강경 중앙리
1905년 일본인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강경은 전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상업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신작로가 놓이고 초등학교와 상업고등학교가 문을 열었으며 은행과 노동조합, 경찰청, 법원 같은 관공서 외 극장, 병원 등이 우후죽순 솟아났다. 실제로 중앙리 일대에는 구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구 강경노동조합 등 당시 번화했던 강경을 엿볼 수 있는 문화재들이 곳곳에 자리해 있다.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으나 중앙리 골목골목에는 과거의 시간이 남아있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상점과 2층 일본식 건물, 낡은 간판, 먼지 낀 창틀, 빈집 등은 영화 세트장을 방불케 한다. 지금도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허름한 선술집 ‘서창집’에 들어서면 시간도 삶도 모두 느리게 움직인다. 모든게 느리게 움직여 더 고마운 골목길이다.
문의 논산시청 문화관광과
041-746-5402
Tip 강경역사관(041-745-3444)에 들러 지도와 정보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