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Classical Music)이란?
우리가 클래식 또는 고전음악이라고 부르는 음악은 고전주의 시대의 음악을 일컫기도 하지만, 보통 재즈나 파퓰러 뮤직, 가요 등의 대중음악에 대한 서양의 전통적인 예술음악을 일컫습니다. 시대적인 구분은 없습니다. 21세기에 작곡된 클래식 음악도 있는 것이죠.
영어로는 ‘Classical Music’이라 부르는 클래식 음악은 길게는 500여 년에서 짧게는 300년 전부터 서구에서 만들어진 서양음악입니다. 우리가 관용적으로 클래식 음악이라 부르는 시기는 대략 1550년경부터 1900년대까지 이르는, 바로크, 고전주의, 낭만주의 시대 음악으로 좁힐 수 있습니다. 유럽 음악은 악보에 음표를 표시하는 기보법의 측면에서 다른 수많은 비유럽 음악과 대중음악의 형식과 상당 부분 구분됩니다. 이러한 표기 양식은 16세기부터 자리 잡았습니다.
서양의 기보법은 음악의 부분에서 피치, 속도, 박자, 개별적인 리듬을 정확히 연주하도록 작곡가가 연주가에게 그 변화의 양상을 미리 보여주기 위해 발달했습니다. 이는 인도나 일본, 한국 등의 전통음악이나 비유럽권의 예술음악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임프로비제이션이나 애드리브(Ad libitum), 즉 즉흥의 요소를 상당수 배제한 비교적 예측 가능한 궤도를 따르는 음악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클래식 음악(Classical Music)’이란 용어는 당시부터 존재했을까요? 용어로서의 ’클래식 음악‘은 19세기 초에 와서야 비로소 등장했다고 합니다. 서양음악의 황금기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에서부터 베토벤에 이르는 기간에 방점을 찍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됐습니다. 전통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지요? 그 작품을 후대의 연주자들이 연주하면서 길이길이 전해진 것이지요. 클래식 음악의 작곡가들은 세상에 없어도, 연주가들이 있기에 클래식 음악은 늘 생생한 해석으로 우리 곁에 있을 수 있답니다. 요컨대 클래식 음악에서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은 작곡가, 작품, 연주가가 되겠습니다.
클래식 음악은 우리 주변에 있다
푹푹 찌는 더위를 피해다니느라 애썼던 여름이 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왔습니다. 전에 없이 또렷이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처럼 가만히 있어도 클래식 음악이 들리는 계절입니다. 증권회사 광고에서는 파바로티를 닮은 성악가가
“피가로 싸, 피가로 싸” 하고 노래합니다. ‘피(Fee)’가 ‘로(Low)’하고 싸단 얘깁니다. 최저 수수료 상품에 대한 광고인 것이죠. 로시니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1막 1장에 나오는 ‘나는 이 거리의 만물박사’를 개사한 광고입니다. 실제로는 바리톤이 불러야 하는데 파바로티를 닮았으니 테너가 나온 셈이네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성악가가 파바로티였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클래식 음악은 우리 생활 도처에 있습니다. 김 과장은 ‘음정의 반올림(#, The Sharp)’이라는 이름의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그는 ‘보통 3악장으로 된 기악곡 양식(Sonata)’이란 차를 운전해 출근합니다. 그는 ‘대지휘자(Maestro)’라는 양복을 입고 있습니다. 한편 이 대리는 ‘강하게(Forte)’라는 차를 타고 ‘노래하듯이(Cantabile)’란 아파트로 퇴근합니다. 그녀의 차에는 마시다 남긴 ‘바로크 시대 성악곡 양식(Cantata)’이란 캔커피가 놓여 있습니다. 생활 속에 녹아있는 음악 용어는 음악이 주는 무한한 매력과 관계가 있습니다. 음악은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지만 귓가에 들려온 숭고하고 멋진, 아름다운 경험은 영원으로 이어질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사람들이 제게 묻곤 합니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싶은데 어떤 것부터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저도 고민입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 다른데 어떤 정도가 있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땐 친숙한 중국 배달음식을 예로 들고 싶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메뉴가 짜장면, 짬뽕, 볶음밥이죠. 요즘은 짬짜면도 있고 탕볶밥도 있지만 짜장면도, 짬뽕도, 볶음밥도 먹고 싶을 때 가장 좋은 선택은 볶음밥이었습니다. 밥 위에 짜장과 짬뽕 국물이 곁들여지니까요. 클래식 음악은 연주 편성에 따라서도 여러 장르가 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교향곡과 관현악,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협주곡,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등을 연주하는 등 기악곡, 3중주, 4중주, 5중주, 8중주까지 작은 규모로 연주하는 실내악, 그리고 오페라와 성악곡 등등 많지요. 저는 이 중에 모든 요소들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장르로 교향곡을 들고 싶습니다. 명 작곡가들이 남긴 교향곡을 충분히 듣고 나면 여러 악기의 소리를 섭렵할 수 있습니다. 베토벤 ‘합창’ 교향곡 같이 성악이 들어있는 교향곡도 있습니다. 이후 협주곡, 독주곡, 실내악 등으로 찾아 들으면 클래식 음악의 재미가 더하지 않을까 합니다.
처음 들어도 좋을 교향곡 명반 10선
브루노 발터가 모차르트 음악을 지휘할 때는 항상 연주자들에게 이렇게 주문했다고 합니다. “아름답게,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게” 발터는 심미적인 음악 표현에 뛰어나 모차르트 속에 잠재한, 눈물을 글썽이는 듯한 투명하고 순수한 성격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발터는 그 순백의 우미함을 날개삼아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듯한 모차르트의 우아함을 잘 살려냈던 지휘자였죠. 후기 교향곡 39, 40, 41번을 연주하는 브루노 발터의 해석은 모던 악기에 의한, 고전적인 모차르트 해석의 전문가답습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한 빈 필의 베토벤 교향곡 5번, 7번(DG)은 발매되자마자 대표음반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악기 간 밸런스의 디테일, 화음의 조율을 향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집중력과 명료한 텍스처, 완벽한 템포, 상쾌한 어택음과 프레이징의 호흡 등이 결합된 결과라고 평론가들은 이야기합니다.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DG 전집 가운데서 가장 빼어난 녹음입니다. 아직 패기만만한 카라얀은 푸르트뱅글러의 자취가 아직 식지 않은 베를린 필을 지휘해 성공을 거둡니다. 소프라노 군둘라 야노비츠가 절창을 선보입니다.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의 1973년 5월 26일 도쿄 분카카이칸 실황은 한마디로 선명하고 강렬합니다. 작품을 초연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권위, 첫 일본 방문이라는 긴장감이 함께하는 연주였습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은 므라빈스키의 기록 중에서도 최고로 추천하고 싶은 음반입니다. 므라빈스키에게 쇼스타코비치 다음으로 중요한 레퍼토리는 차이코프스키였습니다. 1960년 므라빈스키가 레닌그라드 필을 이끌고 유럽 투어를 떠났을 때 빈과 런던에서 도이치 그라모폰이 녹음한 교향곡 4, 5, 6번은 므라빈스키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명반입니다. 당시 바이올린부터 더블베이스까지 한 대의 현악기처럼 연주하는 일사불란함과 러시아의 눈보라같이 맹렬한 금관의 포효는 서방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교향곡 4번에서는 박력을, 교향곡 5번에서는 아름다운 음색을, 교향곡 6번 ‘비창’에서는 칠흑보다 더 어두운 슬픔을 빚어내고 있습니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말러 해석은 정평이 나 있지만 그 중에서도 1987년 빈 필을 지휘한 교향곡 5번을 첫손에 꼽고 싶습니다. 번스타인 특유의 끈적끈적함이 전면에 나서는 묵직하고 농후한 연주입니다. 브루크너를 잘 연주하는 지휘자는 많지만 대표적인 브루크네리안으로 오이겐 요훔을 꼽고 싶습니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주로 녹음한 DG 전집에 이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의 두 번째 전집은 브루크너에 대한 헌신과 정열이 결실 맺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치 끓어오르는 쇠를 다루는 주물공처럼, 요훔은 브루크너의 영성이 요구하는 커다란 스케일로 과부족 없는 축조물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슈베르트 교향곡 8번과 9번 ‘그레이트’의 명반은 수없이 많지만, 클렘페러가 1963년과 1961년, 각각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음반을 들고 싶습니다. 유장한 교향곡 9번 ‘그레이트’에서 클렘페러는 특유의 무뚝뚝하고 견고한 태도로 임하며 겹겹이 싸인 작품의 핵심을 하나씩 하나씩 벗겨갑니다. 시벨리우스 교향곡은 유카 페카 사라스테나 오스모 밴스캐 같은 본고장 북유럽 지휘자들의 음반도 좋지만, 역시 손이 가는 것은 존 바비롤리와 할레 오케스트라의 음반입니다. 교향곡 2번은 5번과 더불어 시벨리우스 교향곡을 대표하는 명곡입니다. 바비롤리의 연주는 따스합니다. 휴머니즘이 배어있죠. 작품이 그리는 북유럽의 맑은 대기와 찬 풍경,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내는 사운드의 온도가 대비되면서 발생하는 은은한 열기는 추운 겨울날 붉어진 뺨처럼 듣는 이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깁니다. 샤를 뮌쉬가 1967년 EMI에서 녹음한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은 파리 오케스트라와의 기념비적인 첫 연주회 녹음으로 타오르는 듯한 명연주입니다.
알고 가자, 공연장 에티켓
서양의 공연 역사에서 오늘날 같은 전반적인 음악회 에티켓이 정착된 것은 100여 년 전인 1895년이 그 시발점이라고 합니다. 그 전까지는 클래식 음악 공연장은 귀부인들의 패션쇼장을 방불케 한 사적인 영역이었습니다. 새로 맞춘 드레스를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공연장을 들락거렸고 공연 도중 음료수나 술을 먹고 마시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비로소 곡이 연주되는 동안에 객석에 입장할
수 없고, 잡담은 물론 기침도 자제해야 한다는, 요즘에는 상식에 속하는 음악회 에티켓이 성립됐습니다. 이런 무례를 극복하는데 일조한 것이 바로 심포니 오케스트라, 교향악단의 등장이었습니다. 19세기 중산층의 등장과 함께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클래식 음악을 성대한 의식, 또는 제의로 인식시켜 나갔습니다. 이 의식이나 제의의 행동 기준으로 음악회 에티켓이 서서히 정착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런 음악회의 기준이 다른 장르로 확대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시기를 살펴보면 빌렘 멩겔베르크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그럼 간단하게 공연장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 십계명을 알아보겠습니다.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첫째, 서곡도 연주의 일부다. 둘째, 지나친 향수를 자제한다. 셋째, 아이들을 데려오게 된다면 통제를 잘해야 한다. 넷째, 공연이 시작하기 전에 기침약을 복용한다. 다섯째, 휴대전화를 끈다. 여섯째, 연인끼리 애정 표현은 공연 후로 미룬다. 일곱째, 떠들거나 흥얼거리지 말자. 여덟째, 휴식시간을 최대한 이용하자. 아홉째, 공연이 끝난 후 퇴장하자. 열번째, 다른 사람이 내게 하기를 바라는 대로 그 사람에게 해주어야 한다.
청중은 단지 공연을 감상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연주자에게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연주 환경의 일부인 것이죠. 청중은 연주자의 용기를 북돋워줘서 더 좋은 연주를 가져올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떠올려 봅시다. 그 좋은 연주는 결국 에티켓을 지킨 청중의 몫입니다. 결국 에티켓은 내가 잘 감상하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가 아닐까 합니다.
가을의 한가운데인 10월은 클래식 음악 공연계의 성수기입니다. 수많은 공연들이 공연장마다 열립니다. 나들이 삼아 클래식 음악을 들으러 가보는 건 어떨까요?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감동의 출발점이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