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당신이 누군가에게 벌을 내리셔야 한다면, 무고한 사람은 말고 죄를 지은 사람에게 벌을 내려주세요. 그 사람이 아닌 저에게 화를 내세요. 그 사람은 아무 죄가 없어요. 제 건강, 제 휴식, 제 행복을 가져가세요. 그 대가로 그 사람의 행복을 지킬 수만 있다면, 전 그 모든 것을 희생하겠어요.”
- 카지미르 뒤드방에게, 1825년 9월 15일
21살의 유부녀 오로르는 남편(‘당신’)에게 연인(‘그 사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그를 뜨겁게 사랑하지만, 둘 사이는 어떤 육체적 사건도 없는 순수한 관계라며, 외도를 의심하는 남편에게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설명한다. 집을 떠나 여행 중인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써서 보냈다는 사실보다, 이어지는 편지의 내용이 더 놀랍다.
“당신은 단 한 가지를 내게서 빼앗는 것보다 당신 자신이 열 가지를 희생했죠. 그런 당신이 몹시 고마웠어요. 당신을 극진히 사랑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난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내적 교류가 없었고, 난롯가에서 달콤한 한담을 나누며 감미로운 시간을 보낸 적도 전혀 없었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난 단 한 시간도 집 안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어요. 끔찍한 공허감이 느껴졌어요 (…) 나는 독점적으로 사랑하고 싶어지는 나이에 도달한 거예요. 하는 모든 일이 사랑하는 대상과 관계가 있어야 해요. 오로지 그 사람만을 위한 매력과 재능을 소유하고 싶어 하죠. 당신은 내 매력과 재능을 알지 못했어요. 내 지식은 소용이 없었고, 당신은 그것을 공유하지 못했어요. 난 당신을 내 품에 꽉 껴안았어요. 난 당신의 사랑을 받았지만,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 뭔가가 내 행복에는 빠져 있었어요.” 이것이 그녀가 18세에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취향을 만족시킬 모든 조건이 충족됐지만 삶이 지루해진 이유였다. ‘불륜’이라 비난하던 마음에 ‘로맨스’가 급제동을 건다. 이렇게 탁월한 문장력으로 편지를 쓴 오로르가 바로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조르주 상드다. 연애편지의 역사에서 명작으로 손꼽히는 이 ‘고백편지’는 단편 소설 한 권 분량에 이르는데, 단 하룻밤 만에 썼다. 남자 이름인 조르주를 필명으로 사용했던 상드는 남자사냥꾼과 사랑의 여신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받았는데, 그의 성격과 삶이 그러했다. 차분하면서도 광기를 한순간에 폭발시켰고, 뜨거운 사랑을 하다가도 냉정히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등 자유로이 극단을 오갔다. 그것은 혈통의 유산이었다.
“나는 사랑 없이 살 수 없고, 사랑 없이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증조할아버지는 폴란드 왕 프레데리크 아우구스토의 사생아, 아버지는 보병대 하사로 왕가의 혈통을 물려받았다. 아버지보다 5살 연상이었던 어머니는 군인들을 상대로 몸을 팔던 창녀였다. 만날 수는 있지만 결혼으로 맺어지긴 거의 불가능한 신분차이였다. 아버지쪽의 반대로 상드가 태어나기 20일 전에야 결혼식을 올렸다. 상드가 다섯 살일 때 아버지가 낙마하여 죽자,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상드의 양육을 포기하고 떠나는 조건으로 연금을 제시했다. 상드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파리로 떠났고 상드는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다. 출생 콤플렉스에 시달린 상드는 애정결핍과 주변 사람들에게 버려질까봐 두려웠다. 그런 상드에게 편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는 매개체였고, 사랑을 확인하는 수단이었다. 빅토르 위고, 톨스토이, 쇼팽, 리스트, 보들레르, 플로베르, 들라크루아, 마르크스, 베를리오즈, 안데르센 등 당대의 예술가들를 비롯하여, 어린 시절 친구와 친지 등 2,000여 명에게 쓴 편지 1만 8천 통정도가 전해진다. 불태우거나 사라진 편지까지 더하면 대략 4만 통 정도 썼으리라 짐작된다. 서간문학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상드의 편지모음집이 프랑스에서 전 26권으로 출판되면서 한동안 잊혀졌던 조르주 상드는 작가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한국에도 508편을 총 6권으로 나눠 출판됐다. 그 가운데에서 당대 최고의 스캔들로 꼽혔던 상드와 쇼팽의 연애 편지는 내용만큼 안타까운 사연으로, 특히 유명하다.
일러스트 하고고
“그녀의 타오르는 듯한 시선이 나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쇼팽은 회색 코트, 양모 조끼, 넥타이, 모자로 남자 옷차림을 한 상드를 처음엔 꼴불견으로 여겨 철저하게 무시했다. 하지만 6살 연하의 그에게 모성애적 보호본능을 느낀 상드는 쇼팽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여 연인이 되었다. 쇼팽의 폐결핵이 상드의 헌신적인 간호로 호전되었고(“나에겐 돌봐야 할 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그들은 노앙(Nohan- Vicq: 프랑스 중부 지방, 조르주 상드의 고향)에 위치한 상드 집에서 상드의 자식들과 함께 살았다. 쇼팽은 상드를 ‘나의 주인’으로 불렀고, 그녀를 위해서만 살고 싶고, 그녀를 위해서만 정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고 고백한다. 상드와 쇼팽은 서로에게 경제적, 심리적으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마음을 깊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런 쇼팽의 마음은 1844년 11월 30일 여행 중인 상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잘 드러난다.
“어떻게 지내오? 방금 전 당신의 멋진 편지를 받았소. 여기는 지금 눈이 내리는데 (일정을 늦췄다고 하니) 당신의 방을 따뜻하게 해놓을 시간을 더 갖게 되었소. 당신 원피스는 근동 지방에서 나는 검은색 비단으로 만들었소. 당신 주문대로 내가 골랐소 (옷감이 아름다우며 소박한 최고급으로 최신 유행하는 것이고, 재단사가 총명하다고 설명한 다음) 당신 앞으로 편지가 많이 와있소. 가르시아 어머니로부터 온 듯한 편지를 동봉하겠소.” 상드 앞으로 온 편지의 발송인의 이름과 책의 제목 등을 알려주고, 오늘 저녁을 누구누구와 함께 먹을 예정이라고 덧붙인다. 아주 소소한 일상을 적었는데, 7여 년을 함께 산 다정다감한 연인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편지의 맨 마지막 문장은 쇼팽의 음악답게 감미롭고 아름답다.
“당신의 이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늙은 것 같소. 많이, 극도로, 믿기지 않을 만큼 늙은 것 같소.”
쇼팽은 섬세한 음악만큼 성격이 예민했다. 상드가 없는 동안 믿기지 않을 만큼 늙었다는 말은, 상드가 없으니 자신의 삶이 허전하여 삶의 즐거움을 잃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보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이다. 이 편지를 받고 상드는 답장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쇼팽에게 보낸 처음과 마지막 편지만이 남아서 전해진다. 쇼팽과 헤어지고, 상드가 왕복 서한을 직접 불태웠기 때문이다.
일러스트 하고고
이별 후 편지를 불태우다
오해와 음해로 딸과 쇼팽을 한꺼번에 잃은 상드는 배신감에 분노했고, 슬픔으로 고통스러웠다. 혼자 파리로 떠난 쇼팽은 무소식이었다. 상드는 살인적인 무더위와 불편한 몸을 이끌고 파리에 가서 그의 소식을 들으려 한다고 편지를 시작한다.
“그동안 당신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졌을 텐데 아무런 답장이없군요. 그래요, 지금 당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세요. 그애는(상드의 딸) 어머니란 사람을 미워하고, 비방하고, 어머니의 가장 성스러운 행동까지도 모독하고, 잔인한 독설로 가문에 먹칠을 하고 있어요. 당신은 그 모든 얘기를 귀담아 듣고 아마 그것을 믿을지도 모르겠네요. 난 그런 종류의 싸움은 하지 않겠어요. 끔찍해요. 그 애를 잘 보살펴 주세요. 당신이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상은 바로 그 애니까요. 난 당신을 원망하지 않겠지만 (…) 당신이 진지한 고백을 해준 이상 난 당신을 용서하고 이후로 어떠한 비난도 하지 않을 거예요. (…) 그럼 안녕히 계세요. 당신이 모든 병으로부터 조속히 치유되기를 빌어요. 그게 지금의 내 바람이에요(그러는 게 마땅하고요). 그리고 9년간의 독점적인 사랑을 이렇듯 기이하게 결말지어 준 것에 대해 신께 감사드려요. 가끔씩 소식 전해주세요. 나머지 일을 재론한다는 것은 무용한 일이에요.”
1847년 7월 28일 쇼팽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는 이렇게 끝난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쇼팽은 상드를 그리워하며 간절히 다시 만나고 싶어 한다는 소식에 상드는 승낙의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쇼팽의 병간호를 하고 있었던 누이는 그것을 전해주지 않았다. 상드의 애정 어린 편지를 읽지 못하고, 그를 엄마처럼 보살펴주던 상드와 재회하지 못하고 쇼팽은 죽었다. 편지로 시작된 사랑은 편지로 끝났다. 그래서 상드가 불태운 쇼팽과의 러브레터들이 더더욱 궁금해진다.
편지 출처 : <편지> 1~6권(조르주 상드 저, 이재희 옮김, 지식을 만드는 지식)
오늘의 편지이야기
내 평생의 짝꿍 재광씨께
2017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대학/일반부 <대상> 유미숙
봄꽃들이 한창입니다. 벚꽃 이파리는 바람을 타고 너울춤을 추고, 저 편에 오종종 피어있는 노오란 민들레는 지들끼리 도란거리면서 봄날 오후를 즐기고 있습니다.
여보, 당신과 인연이 돼 함께 한 세월이 자그마치 30여 년이 되어갑니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둘 다 무일푼으로 시작한 결혼이라서 하루하루가 눈물이고 한숨이 터질 만큼 힘든 과정이었지만 당신과 나, 용케도 잘 극복해서 여기까지 왔군요.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달라서 무던히도 싸우고,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위기의 순간을 여러 번 맞이했지만, 그때마다 우리 둘의 보석과도 같은 딸, 다영이와 찬은이를 생각하고 잘 조율하며 버텨온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맞는 말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당신과 나 사이에 다영이와 찬은이가 있기에 더 행복한 일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여보! 다영, 찬은 아빠!
그동안 정말 애쓰셨어요. 우리 가족을 위해 좋은 취지로 시작한 일이 잘못되어 저 밑바닥까지 추락해서 5년 동안 당신 고생 많이 하셨잖아요. 하루 5시간 이상 자면 죽고 4시간만 자면 살 수 있다고 하면서 밤에 대리운전을 자그마치 5년이나 했던 당신. 처음엔 며칠 하다가 그만두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대리운전 생활을, 직장일을 병행하며 성실하게 해내는 당신을 보며 절로 엄지손가락이 추켜세워졌어요. 물론 당신이 벌인 일 수습하는 것이라며 자업자득이라고 어느 땐 속으로 고소해했던 적도 있지만, 옆에서 지켜보면서 힘들었어요. 여보! 그 동안 정말 고생 많았고, 앞으로는 길이 아닌 곳엔 절대로 발 담그지 말고 큰 욕심 부리지 말고 순리대로 살기로 해요.
앞으로 당신과 나 사이 삶에도 몇 번의 위기가 몰아닥칠지 알 수는 없지만 이제는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내 옆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고, 우리에겐 소중하고 귀한 두 딸, 거기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두 녀석들 은재와 은환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는 속이 훤하고, 서릿발 하얘서 염색을 하지 않으면 보기 민망한 당신이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이 좋습니다. 이제 서서히 노년을 준비해야 할 나이, 내일 당장 무슨 일을 당해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신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우리 지금처럼 서로 보듬어주고 살아요.
사랑합니다. 죽어서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의 영원한 짝꿍 미숙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