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글. 진용선<정선아리랑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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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이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노래가 된 것은 구한말 일제강점기 무렵부터다. 물론 조선시대 이승훈의 <만천유고(蔓川遺稿)> ‘농부사(農夫詞)’에 “啞魯聾 啞魯聾(아로롱 아로롱)”이라는 구절이 등장하고, 1865년부터 시작된 경복궁 중수 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역을 하던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는지 “차라리 귀가 먹었으면 좋겠다”고 탄식하며 읊조린 ‘아이롱(我耳聾)’이 유행하면서 전국으로 확산하는 과정을 거쳤다. 아리랑의 불꽃을 전국적으로 활화산처럼 타오르게 한 것은 1926년 나운규가 연출하고 주연을 한 무성영화 ‘아리랑’이다. 억눌린 우리 민족의 한을 풀어내려고 해서였을까. 서울에서는 상연 첫날부터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단성사로 몰려들었으며 무려 2년 6개월 동안이나 전국 곳곳을 순회 상연했다.주인공인 영진이 아리랑고개를 넘는 영화의 마지막 대목에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주제곡인 아리랑을 다 함께 부르며 가슴 깊이 새겼다. 당시 아리랑은 ‘구아리랑’을 모태로 해서 나운규가 새롭게 만든 신민요 아리랑으로 ‘경기아리랑’, ‘서울아리랑’이라고 한다. 이 무렵부터 아리랑은 끊임없이 저항하는 노래가 되기 시작했다. 일제는 아리랑 부르는 것을 금했으나 아리랑은 그치지 않고 풍자와 해학이 깃든 가사들로 계속해서 생겨났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일제강점기 영화 아리랑을 바탕으로 1958년 제작한 영화 ‘아리랑’의 홍보용 전단과 포스터.
시간적으로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는 아리랑은 공간적으로는 우리나라 땅을 비롯해 만주, 연해주, 러시아, 일본, 하와이, 미주, 멕시코, 쿠바 등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울려 퍼져 어느새 한민족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민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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