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은 우리에게서 수많은 것을 빼앗아 가고 이 땅을 폐허로 만들어 버렸지만 우리 민요 아리랑이 입에서 입으로 전 세계에 퍼져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해외 언론은 매일 한국전쟁 소식을 알렸다. 전쟁이 장기전에 돌입하면서 우리 민족의 고단한 삶이 소개되었고, 아리랑을 비롯한 다양한 한국문화도 소개되기 시작했다. 유엔군으로 참전한 용사들이 위문 공연에서, 포연 속에서 틈틈이 듣던 노래가 아리랑이다 보니 아리랑은 특별한 노래이자 귀에 익은 노래였다. 참전용사들이 귀국하는 비행장 주변에는 아리랑이 새겨진 스카프, 손수건, 앨범, 인형 등이 불티나게 팔렸다. 태평양을 건너간 아리랑은 1950년대 모던 포크 운동의 여파 속에 미국에서 급격히 퍼져 나갔고, 구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로 뭇사람들 가슴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오스카 페티포드(Oscar Pettiford)처럼 위문 공연차 한국에 왔다가 듣게 된 아리랑을 ‘아디동 불르스(Ah De Dong Blues)’라는 재즈로 만들어 1952년 SP음반으로 낸 연주자가 있는가 하면 엘리 윌리엄즈(Elly Williams)처럼 UP통신사 기자 스탠리 리치(Stanley Rich)가 수첩에 기록한 아리랑을 부르고, 1954년 EP(Extended Play·도넛판)에 담아 발매 일주일 만에 ‘이주의 앨범’으로 선정된 가수도 있었다. 당시 엘리 윌리엄즈는 아리랑을 “2,500만 한국인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는 노래”라고 소개했다. 1951년 경기도 포천과 의정부 지역에서 보병으로 참전했던 가수 피트 시거(Pete Seeger)와 위문공연을 위해 한국에 왔다가 아리랑을 듣고 그 선율에 감동한 가수 낫킹콜(Nat King Cole) 등도 훗날 아리랑을 널리 알렸다. 영국계 미국 가수로 전 세계 민요를 두루 섭렵하던 피트 시거는 한국에서 복무를 마치고 돌아간 뒤 아리랑을 불렀다. 반조(banjo)를 연주하며 부른 노래 ‘Ariran’은 마침내 1957년 미국 스틴손(Stinson) 레코드에서 10인치 음반으로 발매되고, 독일과 영국에서도 출반되어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1954년 미국 Rainbow Records에서 발매한 7인치 EP(Extended Play) 음반이다. 미국 여가수 엘리 윌리엄즈(Elly Williams)가 6·25전쟁 당시 UP통신사 기자로 활동한 스탠 리치(Stan Rich)가 수첩에 기록한 아리랑을 바탕으로
부른 아리랑을 수록하고 있다. Ah-Dee-Dong(아디동)이라는 제목과 Arirang이라는 제목을 같이 표기하고 있는 이 음반은 발매 일주일 만에 ‘이주의 앨범’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엘리 윌리엄즈는 아리랑을 ‘2,500만 한국인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는 노래’라고 소개했다.
아리랑을 부른 가수 엘리 윌리엄즈(Elly Williams).
6·25전쟁이 일어난지 64년이 지난 오늘, 아직도 참전한 용사들은 아리랑을 기억하고 있다.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기억과 위문공연 가수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아리랑은 오늘도 전 세계로 흘러들어 녹아들었다. 그때의 아리랑, 그 후의 아리랑에 귀 기울여보면 전쟁의 포연이 자욱한 시기에 세계로 뻗어나간 한민족의 가락 아리랑이 숙연하게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