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은 꽃씨와도 같다. 조선족 아리랑은 한반도에서 가져온 씨앗이 뿌려져 싹튼 아리랑이다. 우리 민족이 가는 곳이면 어디서나 아리랑 꽃씨는 떨어진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그곳의 토양에 맞게 적응하면서 각양각색의 꽃을 피운다.
한 지역의 음악이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게 되면 또 다른 양상과 양식을 띠게 된다. 노래가 꽃씨라고 한다면 지역은 토양이 되며, 양식과 양상은 자양분이 다른 곳에서 피어난 꽃과 같다. 조선의 대표적 민요인 아리랑도 1860년대 조선의 경계를 넘어 길림성, 흑룡강성, 요녕성 등지로 들어선 지 150여 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아리랑은 지리적, 기후적 조건이 다른 그곳의 환경에 적응하고 변화하면서 오랜 세월 나름대로 특색 있는 차이점을 지니게 되었다. 한반도에서 가지고 온 유전자 형질을 지닌 조선족 아리랑의 시대별 양상과 특징도 그 가운데 존재한다. 조선족 사회에서 ‘아리랑’을 비롯해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강원도아리랑’ 등은 잔치 때나 유희의 공간에서 빠지지 않는 노래였다. 일제강점기 독립투쟁의 근거지에서 아리랑은 일제를 타도하자는 내용과 고향과 조국을 그리는 내용 등 항일 저항가로 뿌리내리기도 했다. 이러한 노래는 ‘독립군아리랑’이나 ‘광복군아리랑’에서처럼 기존 아리랑 가락에 반일과 저항의 정서를 담은 가사를 붙인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주 1, 2세대가 세상을 떠나면서 많은 수의 아리랑도 차차 사라져 갔다. 그나마 남은 아리랑은 세월이 지나면서 음조와 음색, 창법이 변한 채 전승되고 있다. 아리랑은 1950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그 종류만도 무려 50여 종에 이른다. 창작 아리랑의 가창 방식은 새로운 가치관이 반영된 민요풍의 노래와 트로트 등 대중가요풍의 노래로 다양하다.
1958년 중국 연변에서 발행된 문예지 <아리랑>. 1951년 6월 창간한 <연변문예>가 1957년부터 <아리랑>으로 제호가 바뀌었다.
이들 가운데 ‘새아리랑’, ‘장백의 새아리랑’, ‘아리랑 연곡’, ‘연변아리랑’, ‘청도아리랑’ 등은 시대적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아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랑이 발전하면서 조선족의 정서는 가극과 연극, 문학, 드라마, 미술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끊이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조선족에게 아리랑은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게 한 원동력이자 대대손손 조선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게 한 촉매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