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부터 파리로 유학 가
러시아의 핍박 어린 지배를 받던 폴란드인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던 시절, 여자인 마리에게 우수한 두뇌는 삶의 축복보다는 고난에 가까웠다. 하지만 신은 마리에게 그와 비슷한 생각과 공부에 뜻을 가진 혈육을 주었다.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브로니아 언니는 파리 소르본대학의 의과대에 입학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사랑하는 브로니아 언니에게. 돈 때문에 공부를 못하게 된 우리 처지가 너무 비참해. 폴란드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우리가힘을 내야 한다던 언니의 말이 맞아. 그래서 말인데, 우리이렇게 하자. 현실적으로 아버지에게 돈을 기대할 수 없으니까, 내가 취직해서 월급의 절반을 매달 언니에게 보낼게. 언니가 스무 살이니까 먼저 가. 나는 곧 열여덟이 되니까, 나중에 내가 파리로 갈 때 언니가 내게 한 칸의 방과 굶지 않을 만큼 음식을 주면 되잖아?” *
언니는 눈물을 흘리며 파리로, 마리는 바르샤바에서 북쪽으로 80km 떨어진 슈추키로 떠났다.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가정교사가 된 마리는 언니의 학비를 부쳐야 하기 때문에 여러 굴욕을 꿋꿋하게 견뎌냈다. 5년 후 언니는 소르본 의대를 졸업했다. 1,000명 가운데 단 세 명의 여학생 중 하나였다. 동생이 힘겹게 번 돈을 받으며 치열하게 공부하여 이룬 결과였다.
“브로니아 언니에게. 나는 내 고통의 보상으로 파리를 꿈꿨지만, 사실 정말 그곳에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오래 전에 버렸어. 이제 가능성이 생겼는데 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바보 같았고 평생 바보 같을 거야.” *
가난하다는 이유로 부잣집 연인에게 버림받은 충격과 자괴감으로 우울했던 마리는, 파리에서 보내온 언니의 졸업과 취직 소식에 오래 전의 꿈을 실현하기로 결심한다. 파리에서 마리는 매일 새로운 즐거움으로 가득함을 아버지에게 편지로 알린다.
일러스트 하고고
제 아내도 마땅히 노벨상 후보에 올라야 해요
“사랑하는 아버지께. 저는 공부에 온통 정신이 쏠려 있어요. 강의 사이의 빈 시간은 실험과 도서관에서 보냅니다. 저녁에는 방에서 공부하는데 주로 밤늦게까지 하는 편이예요. 제가 보고 배우는 모든 것이 제겐 완전히 새로운 즐거움이에요. 물리학과 화학을 가르치셨던 아버지처럼, 제게도 과학이라는 신세계가 열린 것 같아요.” *
당시는 남녀차별이 당연했고, 아무리 똑똑해도 여성은 남성 과학자의 조수로만 허락되던 시대였다. 여자가 자유롭게 주제를 찾아서 연구하고 활동하기는 불가능했다. 학교 안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었고, 유학생인 마리는 사랑의 쓰라린 실패로 대인관계를 경계해서 완전히 고립된 상태였다. 그럴수록 냉정한 지성으로 뜨거운 감성을 누르며 사람보다 사물에 관심을 가졌고, 과학에 매진했다. 음식을 거의 먹지 않고 공부만 해서 피로와 영양실조로 쓰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훗날 이 시기를 “내 인생 최고의 기억 중 하나”라고 언급할 만큼 행복해 했다. 그리고 피에르 퀴리(Pierre Curie)를 만났다. 자신의 연구와 실험에 도움이 되리란 실용적인 목적으로 이뤄진 첫 만남에서 둘은 불꽃이 튀었다.
“브로니아 언니에게. 며칠 전 적갈색 머리에 크고 맑은 눈을 가진 피에르 퀴리를 알게 됐어. 아주 유용하고 놀라운 실험도구들을 개발해서 유명한 학자인데, 첫 인상은 자기 생각에 푹 빠져 사는 몽상가 같았어. 무엇보다 잘난 척하지 않고 아주 진지해. 나를 동등한 학자로 대하고 정말 필요한 충고들을 기분 나쁘지 않게 해줬어. 처음 만났지만 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 같은 느낌이었어. 우린 비슷한 사람이야.” *
초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요즘으로 치면 난독증에다가 주변이 시끄러우면 전혀 집중을 하지 못했던 피에르는 가족들의 헌신적인 가르침으로 유능한 학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런 피에르에게 마리도 큰 조력자이자, 자극제였다. 미루고 미루던 박사논문을 끝낸 그는 오늘날까지도 유용하게 활용되는 탁월한 연구실적을 냈다. 하지만 생활인으로서 피에르는 낙제였다. 부모집에 얹혀 살던 서른네 살의 이 청년은 여자를 사악한 성욕이나 일으켜서 중요한 일에 방해되는 존재로만 여기던 남자였다. 이런 그가 마리 스쿼도프스카(마리 퀴리)와 결혼하여 훗날 방사능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 후보로 지명되자,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로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만약 유력한 후보자로 저를 생각하신다면, 방사능 물질에 대한 우리의 연구에 비춰 봤을 때 제 아내 마리 퀴리도 마땅히 후보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리에게 피에르는, 피에르에게 마리는 과학의 업적뿐만 아니라 인간을 보는 관점도 달라지게 만들었다. 사랑은 사람을 아름답게 변화시킨다. 이토록 달콤했던 행복은 피에르가 마차에 깔려 허망하게 죽으면서 끝났다. 남편의 교수직을 이어 받아 소르본대학 최초의 여성교수가 되었지만, 생활과 연구에서 아주 힘든 시기를 통과해야 했다. 사별의 고통에 더해, 염문과 추문으로 명예가 실추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 하고고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들을 생각해요
피에르의 죽음으로 마리는 실험실과 집만 오갔다. 항상 어둡고 우울했던 얼굴에 어느 날부턴가 발그스레 생기가 돌았다. 피에르의 동료인 유부남 폴 랑주뱅(Paul Langevin)과 사랑에 빠진 탓이다. 파리 근교의 작은 아파트에서 밀회를 즐기던 무렵, 마리는 랑주뱅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편지를 썼다.
“친애하는 폴, 나는 당신의 경이로운 지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여울 따름이에요. 과학과 문학, 철학에 걸친 당신의 해박한 이야기를 들으면 시간이 멈춘 듯 했어요. 어제 저녁과 밤은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들을 생각하며 보냈어요. 지금도 당신의 선량하고 부드러운 눈과 매력적인 미소를 떠올려요. 당신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눈빛을 다시 직접 볼 순간만을 생각하고 있어요.” *
과학자는 굳은 심장을 가졌으리라는 편견이 여지없이 깨진다. 실험에 대한 열정과 사랑에 대한 정열은 둘을 동지애로 묶으면서 불타올랐다. 둘의 은밀한 만남을 랑주뱅 부인이 눈치챘고, 불륜을 폭로하는 신문 기사가 실리면서 노벨 화학상도 놓칠 뻔했다. 마리는 “상은 과학자의 사생활이 아니라 업적에 주어지는 것”이라며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얼마 후 랑주뱅이 아내와 별거하면서 마리와의 사랑도 끝나버렸다. 떠들썩한 스캔들로 마리는 ‘단란한 프랑스 가정을 파괴한 외국여자’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마리와 랑주뱅이 이루지 못했던 사랑은 놀랍게도, 훗날 마리의 손녀와 랑주뱅의 손자가 결혼함으로써 결실을 맺었다.
“나의 사랑하는 딸에게. 네 엄마는 과학이 예술과는 다른 위대한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연구실에서 시간을 잊은 채 연구와 실험에 몰두하는 우리 같은 과학자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란다.
마치 어릴 적에 네가 좋아했던 동화처럼, 과학은 우리를 자연현상 앞에 선 어린아이로 만든단다. 그러니 마음에 꿈을 품고 사는 과학자들은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그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중요해.” *
19세기에 이미 현대 여성으로 살다
“오늘 피에르와 마리 퀴리 부부의 유골을 가장 신성한 사원에 이장하는 것은 단순한 기념 행위가 아닙니다. 과학과 연구에 대한 그녀의 헌신을 프랑스가 공인하는 것이며, 그들의 업적과 인생에 대한 우리의 존경심을 확인하는 행위입니다.” 외국인 이민자 출신의 여성 과학자였던 마리는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삶을 적극적으로 살았다. 똑똑하고 탐구정신이 강했으며 세속의 평가보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 마리 퀴리는 19세기에 이미 현대적인 여성이었다.
“개개인이 발전하지 않는다면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할 수 있다는 희망도 사라질 것이다.”
마리는 파리로 오기 전 썼던 이 글과 같이 평생을 살았다. 하지만 세속의 영광을 얻는 과정에서 건강은 피폐해졌다. 실험실의 방사능에 과도하게 노출된 마리는 골수암과 백혈병 등을 앓다가 67세에 사망했다.
*표시된 편지들은 마리의 글과 친구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편지체로 재구성했다.
편지 수신인은 필자가 임의로 선택했다.
*팡테옹: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립묘지로 국가를 빛낸 인물을 기리는 이곳에 업적이 뛰어난 학자와 정치가 등이 안치되어 있다.
참고서적
<열정적인 천재 마리 퀴리>(바바라 골드스미스 저, 김희원 옮김, 승산)
<과학 한잔하실래요?>(강석기 저, Mid엠아이디)
<세계사를 움직인 위대한 여인들>(조민기 저, 미래지식)
오늘의 편지 이야기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언니에게
2017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대학/일반부 <장려상> 김성준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언니에게
언니야~ 세상은 복잡하고 현실은 무겁지만 거리마다 은은하고 화려한 꽃들의 노래 소리가 고귀하게 울려 퍼지고 있어. 온통 분홍빛 속삭이는 사랑이야기가 바람결에 너무 듣기 좋네.
언니, 어느새 인생 60을 바라보는 중년이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새삼스럽다. 그치? 언니에게는 곧 결혼을 앞둔 훌륭하고 멋진 아들과 약간 까칠하지만 친구 같은 예쁜 딸이 있고 나에게는 함께할 사랑스러운 딸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우리 어린 시절 기억하지? 모질게 가난했던 탓인가. 분명히 어린아이가 맞는데 언니는 아이의 모습이 없었던 것 같아. 손발 닳도록 일만 찾아다니셨던 부모님 대신에 여린 손으로 집안일이나 식사 준비도 완벽히 했고, 웃을 일 없던 집안에 언니만 있으면 까르르 웃음소리가 담을넘어. 행복한 우리 집이라고 인정받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네. 그렇게 존재감 확실했던 언니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나는 세상이 사라지는 것 같은 허탈감과 슬픔 속에서 잠깐 방황도 했지.(철이 없었던 거야)
그저 행복하게 잘 살기만 바랐는데 세상 따뜻하고 사람 좋은 형부지만 경제적인 실패로 무너졌을 때, 언니의 절망감은 나의 절망감이었어. 하지만 위기의 가정을 현명하게 이끌어온 대단한 언니가 자랑스러워.
그만큼 언니 자신은 바다도 도망갈 정도로 많은 눈물과 애통함을 가슴에 묻었겠지?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려와. 언니가 그렇게 잘 살아왔기에, 사람답게 사는 게 뭔지 잘 보여주었기에, 언니가 우리 언니인 것이 내 인생 최고의 감사야.
언니, 짓궂은 바람에 살포시 떨어지는 벚꽃 잎들이 너무나 예쁘네. 바닥에 떨어져도 그 어느 곳에서든 끝까지 우아함을 잃지 않고 그 자리를 빛내주는 벚꽃이 마치 언니를 꼭 닮은 것 같아. 그 어떤 향기보다 언니의 향기가 최고야. 항상 언니의 사랑을 받기만 했는데 이젠 내가 사랑을 선물해야지. 고맙고 사랑해.
- 귀여운 동생 쭌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