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상 진설
일러스트. 서영원
남의 집 제사상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사람만큼 미련한 것이 없다. 제사상 진설은 그 집안의 내력이며, 그 집안의 사정이기도 하다. 그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기도 해서 제사상 진설을 두고 뭐라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제사(차례)는 상징이다. 새해 첫날(과 한가위)에 올리는 제사를 차례라고 하는데, 이는 새해의 시작을 알리고, 한 해 동안 무탈함을 비는 상징적인 행위이다. 차례는 그냥 절만 하는 행사가 아니다. 전통과 문화가 집약된 의식이 바로 차례인 것이다.
차례가 이러한 상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차례상 진설 역시 상징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차례상을 마주봤을 때 오른쪽이 동쪽이고 왼쪽이 서쪽이다. 옛날 집이 대체로 남향집이었으니 대청마루에 제사상을 차리면 자연히 오른쪽이 동쪽이 되기 때문에 굳어진 상징적인 방향인 것이다. 차례상을 진설할 때 가장 중요한 말이 동쪽은 해가 뜨는 곳, 즉 생명이나 붉은 피를 상징하고, 서쪽은 죽음, 혼령을 상징한다는 말이다. 차례상 진설은 이 기준에 따른다. 제주에게 가까운 쪽에서부터 과일이나 과자, 나물류, 고기와 전, 떡국 순으로 진설한다. 차례상을 차릴 때 홍동백서니, 좌포우혜, 조율이시, 어동육서라는 말에 따라 진설한다는 말을 곧잘 들었을 것이다.
과일은 홍동백서의 예법에 따른다. 홍동백서란, 동쪽은 해가 뜨는 곳이라 생명, 붉은 피를 상징해 붉은 색 과일을 동쪽에 진설하고, 서쪽은 죽음, 혼령을 상징하는 흰색 과일을 진설한다는 뜻이다. 보통 사과가 먼저 놓이고, 조율이시의 순으로 진설한다.
조율이시란 대추(棗), 밤(栗), 배(梨), 감(枾)을 뜻한다. 어느 집에서는 조율시이로 진설하기도 한다. 채소는 산동야서라 하여 산에서 자라는 것을 동쪽에, 들에서 자라는 것을 서쪽에 둔다. 고사리를 맨 오른쪽, 그 다음 시금치, 집에서 기른 흰색나물인 도라지, 콩나물, 숙주나물을 진설한다.
좌포우혜란, 말린 포는 왼쪽, 식혜는 오른쪽에 둔다는 것으로, 북어포나 생선포, 고기포 등은 왼쪽에 두고, 식혜나 발효음식은 오른쪽에 둔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어동육서는, 물고기는 동쪽, 육고기는 서쪽에 진설한다는 뜻이다. 경기도에서는 굴비나 숭어를 쪄서 제사상에 놓는데, 이때 생선의 머리를 동쪽으로 향하게 한다. 이를 두동미서라 한다. 생선이 죽으면 배를 물 위로 해서 뜨는데, 조상에게 죽은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배를 제주 쪽으로 향하게 해야 한다. 생선은 그나마 온전한 모습으로 상에 올라가 죽음을 보이지 않지만 육고기는 제 모습을 그대로 보일 수 없다. 혼이 빠져나간 살만 오를 뿐이어서 왼쪽에 둔다. 이밖에 식사에 꼭 필요한 간장, 밑반찬, 편(떡) 등을 진설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차례 절차는 비교적 간단하다. 무축단작(無祝單酌)이라 하여 축문을 읽지 않고 술을 한 번 올린다. 기제사에서 문을 닫는 ‘합문’과 숭늉을 올리는 ‘헌다’는 차례에서는 생략한다. 하지만 축문을 읽는 집안도 있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차례상 진설이나 차례 절차는 지역, 집안은 물론 같은 집안이라 해도 가가호호 다 다르다. 그러니 여기에서 쓴 진설법은 ‘보통 이렇다’는 뜻이지 정해진 것이 아니다. 차례상 차림을 갖고 다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저 조상에 먼저 명절음식을 성의껏 올린다는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일러스트. 서영원
차례상에도특징이 있다?지역별차례상
북어가
빠질 수
있나
서울·경기
서울·경기지역은 서쪽과 동쪽이 많이 다르다. 서쪽에서는 해산물이 풍부하고, 동쪽은 산간지대로 산나물이 많다. 예로부터 고기가 많이 나서 고기를 이용한 음식이 차례상에 많이 올랐다. 북어는 전국에서 많이 쓰이는 제수로 서울·경기에서는 통북어를 올렸다. 통북어는 풍요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배추를 고명으로 넣어 만든 녹두전도 서울·경기 지역 제수의 하나다. 생선으로는 맛이 일품이라는 굴비를 많이 올렸다. 요즘은 숭어도 쓰고, 가자미나 참조기를 올리기도 한다.
해산물 풍부한
차례상
경상도
경상도는 해산물이 풍부하다. 경남 지역은 바다가 옆에 있어 차례상에 어물을 많이 올린다. 조기·민어·가자미·방어 등
많은 종류의 생선이 차례상에 오르고, 조개 등 어패류를 올리는 지역도 있다. 포도 다양해서 대구포, 가오리, 문어도 차례상에 올렸다. 특히 대구나 영천에서는 적으로 상어 살을 구워서 올리는데, 이를
‘돔베기’라고 한다. 안동에서는 가자미식해가 차례상에 빠지지 않고 오른다.
3도 인접해
다양한 식재료 올려
충청도
산간지역 산채·버섯 등과 함께 평야지역 쌀·보리 등 곡식도 많고,
무·배추·고구마 등 밭작물도 풍부하다. 서울·경기,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등 각 지방과 접해 있는 지역이어서 제수가 다양하다. 경상도에 인접한 지역에서는 대구포·상어포·오징어·문어 등 건어물을 차례상에 올리고, 호남과 인접한 지역에서는 홍어를 비롯해서, 병어·가자미·낙지·서대묵 등을 많이 올린다. 내륙에 인접한 지역에서는 통째로 삶은 닭 위에 계란지단을 올리기도 하고, 배추전이나 무적 등 부침개류를 많이 올린다.
홍어,
꼬막은 필수
전라도
전라도에서는 홍어가 빠지면 잔치가 아니라고 했다. 잔치 때와 마찬가지로 차례상에도 홍어가 빠지지 않는다. 전라도는 예부터 풍부한 곡식과 각종 해산물도 많았고, 산나물 역시 풍부했다. 그래서 음식의 종류도 많았고, 정성 또한 대단했다. 병어나 낙지도 차례상에 올랐고, 꼬막이 많이 나는 벌교 쪽에서는 어패류도 많이 올랐다. 음식문화가 많이 발달해 있어서 전라도 차례상은 그 어느 곳보다 풍성하다.
일러스트. 서영원
산나물과
풍성하게
강원도
산악지형과 바닷가를 접한 강원도는 영서와 영동의 산물이 많이 다르다. 쌀농사보다는 밭농사가 주여서, 밭에서 나는 농산물을 제수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어서 산채와 감자, 고구마를 이용한 음식이 많다. 감자전이나 무 혹은 배추로 만든 적이 차례상에 많이 올랐다. 평창지역은 메밀이 많아 차례상에 반드시 메밀전을 올린다. 강릉이나 속초 등 바닷가와 인접한 지역에서는 명태포와 생선전을 차례상에 많이 올렸다.
옥돔부터
바나나까지
제주도
제주도 차례상에는 제주도에서만 나는 생선이 빠지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생선이 옥돔이다. 전에는 우럭을 많이 썼는데, 요즘은 옥돔이 대세다. 제주에서 많이 나는 전복을 차례상에 올리기도 한다. 제주도는 농촌, 어촌, 산촌의 산물이 각기 다르고 생활방식도 조금씩 차이나 차례상 차림도 약간씩 다르다.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귤도 차례상에 올린다. 요즘은 파인애플이나 바나나 같은 열대과일도 상에 올린다.
오메기술이라는 전통주도 많이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