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역
입에 맞는 맛있는 탕
신선로
일러스트. 서영원
우리 음식의 진수는 궁중음식에 다 있다. 조선왕조 500년의 궁궐이 있었던 서울은 자연스레 궁중음식이 이어지게 되었다. 신선로는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궁중음식이다. 원래 이름은 열구자탕으로, ‘입에 맞는 맛있는 탕’이라는 뜻이다. 이 탕을 담아내는 냄비를 신선로라 했는데, 지금은 그릇 이름이 음식 이름으로 바뀌었다. 신선로에 들어가는 식재료도 많다. 돼지고기, 생선, 꿩, 홍합, 해삼, 소의 양, 간, 대구, 국수, 고기, 만두 외에도 파, 마늘, 토란 등을 고루 섞어 놓은 다음 맑은장국을 부어 끓인다. 이 정도면 달리 양념을 하지 않아도 각 재료에서우러나오는 국물만으로도 간이 된다. 맛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가 한데 섞이고 끓어 한 가지 맛을 내니 ‘이것을 함께 먹는 사람들이 서로 다투지 않을 만하다.’ 하여 신선로는 예부터 ‘화합’을 상징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평양 지역에서 유래한 ‘어복쟁반’이라는 음식이 있는데 용기도,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끓이는 것도 신선로와 비슷하다. 평양이면 조선시대 제2의 수도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니, 궁중음식 신선로의 변형이 어복쟁반이 아닐까 싶다. 신선로도 맛보고 어복쟁반도 맛보길 권한다. 더울 때 원기 회복에 좋다.
경인지역
달콤하고 쫀득한 맛
수수부꾸미
부꾸미의 역사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43년에 발간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 ‘북꾀미’란 이름의 떡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이 떡이 지금은 부꾸미로 불린다. 설명에 의하면 ‘거피팥에 꿀과 계핏가루를 볶아 계피떡처럼 소를 넣고 보시기로 반달처럼 떠서 꿀을 찍어먹는다’고 했다. 부꾸미는 찰수수가루와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동글납작하게 빚어 만든다. 이것을 기름에 지진 다음 견과류나 팥고물 같은 소를 넣고 반달 모양으로 접어 또 한 번 지진다. 화전(꽃떡)이나 주악(햅쌀이 나오는 철에 해먹었던, 잔칫상에 빠지지 않았던 지지는 떡을 우메기, 개성주악이라고도 한다)처럼 기름에 지지는 것은 같지만 소를 넣고 다시 지진다는 점이 다르다. 부꾸미의 주재료인 수수는 경기, 강원에서 주로 재배돼 부꾸미 역시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겨울철 아이들 간식이나 명절 때 손님맞이용으로 많이들 만들어 먹었다. 맛이 달콤하고 쫀득해서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
충청지역
숙취 해소에 좋은 음식
다슬기국(올갱이국)
전라도에 재첩이 있다면 충청도에는 올갱이가 있다. 충청도나 경기도 일원의 시골길을 가다 보면, 흐르는 냇가에서 물속을 들여다보며 뭔가를 잡아 건져내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다슬기를 잡는 것이다. 다슬기를 충청도 방언으로 올갱이라고 해서, 충청도에서는 다슬기국이라는 말보다 올갱이국이라는 말로 더 많이 불린다. 다슬기는 시력을 보호하는 한편, 간 기능 회복, 숙취 해소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철분이 많아 빈혈 예방에도 좋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다슬기가 성질이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고 기록돼 있다. 다슬기는 반딧불이 유충의 먹이이기도 하다. 반딧불이가 물이 맑은 곳에서 서식하는 만큼 다슬기가 산다는 것은 그만큼 물이 맑다는 이야기다. 다슬기는 충주, 청주 이외에도 금강, 남한강, 괴강 등을 끼고 있는 옥천, 영동, 단양, 괴산 등에 많이 자라 이름난 다슬기국 음식점도 이곳에 많다. 충청도의 향토음식으로 손꼽힌다. 다른 건 몰라도 다슬기국 만큼 숙취 해소에 좋은 음식도 찾아보기 힘들다.
부산(경남)지역
눈물이 담긴 국밥
돼지국밥
돼지국밥 하면 부산, 부산하면 돼지국밥이다. 부산뿐 아니라 경남 창원, 밀양에서도 돼지국밥이 유명하다. 돼지 뼈를 고아 그 육수에 돼지고기, 내장 등을 넣어 끓여낸 국밥이다. 돼지국밥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분분하다. 한국전쟁이 일어나 경상도 지역으로 흘러온 피란민들이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돼지 뼈를 이용해 국을 끓였다는 설이 있고, 고려 때 지배계층이 백성에게 선사한 돼지고기와 개고기를 이용해 국을 끓여 먹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한국전쟁 때 서울의 피란민들이 소뼈를 우려내 먹던 설렁탕에 돼지 뼈를 우려 육수를 내는 일본 음식문화가 접목돼 돼지국밥이 생겼다는 설도 있다. 설이야 어쨌든 종합해보면, 눈물이 담긴 국밥이다. 반면 돼지국밥은 몸에 상당히 좋다. 뼈가 튼튼해지고, 기운을 보강하고, 피부에도 좋고, 어린이 성장 발육을 촉진한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경북지역
귀한 손님 대접하던
안동식혜
경북 안동 사람들이 설 명절이나 집안 행사 때 또는 귀한 사람을 대접할 때 꼭 내놓는 음식이 안동식혜다. 찹쌀을 하룻밤 물에 불렸다가 푹 쪄 지에밥을 만들고, 체에 밭친 엿기름물과 잘게 썬 무, 생강즙, 고춧가루 우린 물을 넣고 고루 버무려 저온 발효시킨다. 밥알이 삭으면 급히 냉각시켜 차가운 곳에 두고 먹는다.
상온에 오래 두면 상하기 때문에 옛날에는 겨울철 음식이었으나 냉장고가 나오면서 사시사철 만들어 먹는다. 녹말을 저온 발효해서 찡하게 쏘는 맛과 함께 산뜻하며 매운 맛과 단맛이 난다. 동해안에서는 밥반찬으로 생선과 밥에 양념을 섞어 버무려 삭힌 젓갈인 어식해를 만들어 먹었다. 어식해에서 생선을 뺀 젓갈을 소식해라 한다. 흔히 안동식혜의 근원을 소식해에서 찾는 이도 있고, 김치의 일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안동식혜를 젓갈도 아니고 김치도 아닌 음청류로 보는 견해가 많다. 주로 후식으로 쓰이면서 명칭도 ‘안동식해(安東食醢)’가 아닌 ‘안동식혜(安東食醯)’로 불리고 있다.
전남지역
잔칫상에 빠지면 섭섭한
홍어회
홍어회만큼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음식도 드물다. 좋아하는 사람은 ‘겁나게’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냄새 때문에 오만가지 인상을 찌푸리며 손사래를 치는 음식이 홍어회다. 전라도에서는 잔칫상에 홍어가 없으면 잔치가 아니라고 할 정도다. 홍어를 잡는 흑산도 사람들은 홍어를 신선한 상태로 먹는데, 보통은 삭혀 먹는다.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한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나주고을 사람들은 홍어를 삭혀 즐겨 먹는다”고 했다. 나주 영산포까지 배가 오는 기간에 홍어가 삭았는데, 처음에는 이 삭은 고기를 버리다가 누군가 먹어보고 그 맛에 반해 이후부터 홍어를 삭혀 먹었다는 이야기가 나주 영산포 지역에 전한다. 홍어는 삭힌 정도에 따라 그 맛이 제각각이다. 아주 많이 삭히지 않더라도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톡 쏘는 게 특징이다. 삶은 돼지고기, 묵은지와 함께 먹는 홍어삼합은 톡 쏘는 맛과 함께, 씹으면 씹을수록 입안 전체에 단맛이 번진다. 홍어 마니아들은 홍어찜을 더 좋아하는데, 아주 많이 삭힌 홍어찜은 입천장이 확 까질 정도다. 홍어애탕은 숙취 해소에 좋다.
전북지역
조선시대 3대 음식
전주 비빔밥
한식의 세계화에 불고기와 함께 가장 유명한 음식이 비빔밥이다. 여러 나물과 고기를 한 그릇에 넣고 비벼 먹어서 세계인들은 보기에도 희한하고 그 맛도 좋은 음식이라고 감탄한다. 비빔밥의 유래는 비빔밥에 들어가는 나물 수만큼이나 많다. 조선시대 왕이 점심으로 먹는 가벼운 식사로 비빔이란 것이 있는데, 그 비빔이 비빔밥의 유래라는 궁중음식설도 있고, 왕이 피란길에 찬이 없어 밥에 몇 가지 나물만 넣어 비볐다는 설도 있다. 농번기에 농민이, 동학혁명 때 동학군이 그릇 하나에 여러 음식을 담아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제사 후 음복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전주비빔밥인가? 80년대 국풍 행사에 전주비빔밥이 소개되면서 이후 비빔밥 하면 전주비빔밥이 됐다고 하는데, 조선시대 때도 전주비빔밥은 평양냉면, 개성 탕반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음식 중 하나로 꼽혔다. 하룻밤에 만든 맛이 아니라 오랜 역사가 담긴 맛이다.
강원지역
메밀꽃 필 무렵 고소한
메밀전
옛날 강원도 평창, 봉평 일대는 메밀밭이 지천이었다. 이효석은 소설에서 그 풍경을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고 말했다. 메밀이 많이 나니 메밀을 이용한 음식도 많아서 강원도 사람들은 예전에 메밀전, 메밀국수, 메밀전병 등을 많이 해먹었다. 평창에서는 제사상에 꼭 메밀을 올릴 정도다. 메밀전은 물에 메밀가루를 풀어 전을 부칠
때 배추를 넓게 펴서 같이 부치는데, 배추의 아삭아삭한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맛이 고소하면서도 배추의 시원한 즙이 씹을 때마다 터져 나와 입안 가득 청량한 느낌이 든다. 메밀은 서늘하고 찬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 몸의 열독을 제거해 준다. 염증을 가라앉히고, 변비 예방에도 좋다. 두부보다 단백질이 풍부해 영양을 고루 섭취할 수 있다. 또한 루틴이 풍부하게 들어있는데 루틴은 항산화 물질로 혈관에 쌓인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고혈압 예방에도 좋다. 메밀꽃 필 무렵 메밀전의 고소한 맛을 음미해보자.
제주지역
제주 고유의 냉국
자리물회
제주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몹시 가난했다. 보리밥과 고구마가 먹거리 전부였던 적도 있었다. 제주도 농토는 거의 보리밭이어서 5월이면 보리밭이 장관이었다. 보리가 익을 무렵 바다에서는 자리돔이 무진장 들어온다. 자리돔은 제주도 사람들의 거의 유일한 단백질원이었다. 그래서 제주 밥상에서는 보리밥과 자리돔을 빼놓을 수 없다. 자리물회는 자리돔을 뼈째 썰어 양파, 배, 붉은 고추, 풋고추, 부추, 초피잎 등의 채소와 함께 버무린 다음 된장, 고추장, 다진 양파, 참기름, 통깨 식초 등으로 양념한 후 찬물을 부어 먹는 음식이다. 자리돔은 주로 물회를 재료로 많이 쓰는데, 자리물회는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냉국이다. 물을 넣지 않고 양념만 한 것을 자리강회라 한다. 원래 제주도의 자리물회는 토장(된장)과 식초 맛이 강한 음식이었으나 요즘은 유행이 변해서 동해안 지역의 물회처럼 매운맛이 강해졌다. 자리돔을 구이로도 많이 먹는데,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아 먹을 게 많지 않다. 자리돔은 역시 물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