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마음
그림. 정윤미
평구平丘1)가 올 때 가져온 편지는 보았다. 26일에 과연 출발했느냐? 27, 8일에 연일 비가 왔는데, 중로에 지체되지 않았을까 걱정되어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오늘은 어디쯤 도착했는지 모르겠구나. 비 온 뒤 일기가 갑자기 추워졌는데, 건강을 상하지나 않을까 염려되어 더욱 잊을 수 없다. 내 행차는 초사흘로 정해졌으나, 정시庭試2)를 초하룻날로 물려서 거행하기 때문에 내일 내가 시소試所에 들어가면 네가 도착하는 즉시는 서로 만나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다. 네 행중行中의 소식을 탐지하기 위해 이 귀노貴奴3)를 보내며 돈 석 냥도 보낸다. 노자가 부족하면, 보태 쓰도록 해라. 진위振威, 양성陽城, 수원, 과천 등의 읍에는 영문營門4)의 시초柴草5)가 있어 값을 받고 사사로이 거래한다고 하는데, 혹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느냐? 나머지 사연은 만날 때를 기다리며 이만 줄인다.
1725년 10월 29일 오시午時〔낮 12시〕 아버지.
귀남貴男의 양식 값 4푼을 보낸다.
각주)
1) 평구역平丘驛의 찰방察訪을 말하는 것으로 보임.
2)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대궐 안마당에서 보이던 과거 시험.
3) 이 편지 끝에 보이는 노비 귀남貴男을 말한다.
4) 감영, 또는 병영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감영을 말하는 것으로 보임.
5) 땔감으로 쓰는 마른 풀.
서울에 있는 아버지가 서산 시골집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있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다. 쌀쌀한 초겨울 날씨에 비까지 내렸는데, 먼 길 오느라 몸이 상하지나 않을까? 노자는 떨어지지 않았을까? 각 고을 객관客館에서 묵을 터인데, 군불은 제대로 때고 잘까? 걱정하는 아버지의 자상함이 요즘 여느 아버지와 다름이 없다. 보통 조선시대의 아버지가 근엄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런 자상한 면도 있었다.
아버지는 김흥경金興慶(1677~1750)이다. 그는 며칠 후인 11월 3일 동지정사冬至正使로서 북경에 갈 예정인데, 그의 사행使行을 배웅하기 위하여 아들이 서울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그는 벼슬이 영의정까지 오르고 영조 임금과 사돈 간이다. 넷째 아들 김한신金漢藎이 영조의 딸 화순옹주에게 장가들어 월성위月城尉에 봉해졌기 때문이다. 이 김한신이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증조부이므로, 김흥경은 추사의 고조부가 된다.
아들은 김흥경의 둘째 김한좌金漢佐(1708~1741)다. 그는 나이가 열여덟이다. 공부도 할 만큼 했고, 말 한 필에 견마 잡힌 노비 한 명 데리고 여행할 만큼 세상 물정도 안다. 책상머리나 지키고 있는 것보다는 이렇게 바깥바람 쐬며 세상구경 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는 일 아닌가. 무엇보다도 아버지를 필두로 긴 행렬을 이루어 떠나가는 장엄한 사신 행차를 보는 기대에 그의 가슴은 부풀었다.
보고 싶은 마음
27일 편지는 책내柵內1)에서 받아 보았다. 이 기쁜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느냐? 그 후에 계속 평안한지 몰라 매우 궁금하구나. 나는 4일 책문柵門을 나가 5일에 겨우 의주에 당도했으나, 먼 길을 급히 달려와 근력이 거의 다하여 걱정이지만, 무슨 수가 있겠느냐? 너는 3일 출발 한다고 하는데, 반드시 평양 이상은 오지 말고 거기 머물며 내가 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 나는 11일쯤 평양에 당도할 것이니, 서로 만날 날이 머지 않아 몹시 기다려지는구나. 다만 봄날 마파람 속에 네 약한 몸으로 어떻게 먼 길을 올지, 매우 걱정스럽다. 나머지는 피곤하여 이만 줄인다.
1726년 3월 5일 유시酉時〔오후 6시〕에 아버지
사행 갔던 아버지가 돌아오며 마중 나오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다. 사행의 귀국 날짜가 대략 정해져 있기에, 아들은 거기에 맞추어 이미 서울에 올라와 있었다. 선성先聲2)의 기별을 받고 아버지의 일정에 맞추어 아들은 자신의 일정을 정하여 출발했다. 이제 곧 평양 언저리에서 아버지를 뵐 수 있을 거였다. 아버지는 아들더러 평양 이상은 올라오지 말라고 금을 그어 준다. 아버지를 마중하는 예는 평양까지 오는 것으로 충분했다.
각주)
1) 만주의 구련성九連城과 봉황성鳳凰城 사이에 있던 책문柵門의 안. 사신 일행은 여기서 입국수속과 행장 정리를 했다.
2) 사신이나 관리의 도착을 미리 알려 주는 일, 또는 사람.
걱정스러운 마음
어제 의주에서 편지를 써서 도강장계渡江狀啓1) 편에 보내어 중로에 전달하게 했는데, 과연 잘 전해질지 모르겠구나. 3일에 과연 출발했으며, 오늘은 어디쯤 이르렀느냐? 먼 길에 외로운 나그네의 행로가 여러모로 힘들고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니, 걱정이되는구나. 나는 아침에 의주를 출발하여 지금 용천龍川에 묵고 있는데, 내일은 선천에 이르게 된다. 날짜를 헤아려보니, 우리 일행은 11일쯤 평양에 도착할 것 같다. 네가 평양에 머물며 나를 기다리려면 여러 날을 머물 듯한데, 양식 사정이 필시 어려울 것 같아 정말 염려되는구나. 평안 감사 앞으로는 네가 온다고 슬쩍 알려 두었으니, 너도 모쪼록 감영에 알리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만 줄인다.
1726년 3월 6일 아버지.
각주)
1) 중국 갔다 돌아오던 사신이 압록강을 건넜음을 임금께 보고하는 장계.
아버지와 아들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제 용천에 묵고 있다. 아들은 평양 가까이 갔을 것이다. 아들이 평양에 먼저 닿아 며칠 고생하지 않을까? 아버지는 걱정이 된다. 아들이 마중하려 평양에 온다고 평안 감사에게 넌지시 알렸다. 감사가 아들의 숙식을 포함한 모든 편의를 제공할 것이다.필자가 아주 어릴 적 시골에 살 때의 일이다. 출타하신 아버지가 저물도록 돌아오시지 않으면, 어머니께서 나를 동구 밖까지 마중을 보내셨다. 어둠 속에서 점점 선명하게 다가오는 아버지의 도포자락을 보고 반가워 뛰어가 안겼던 기억이 난다. 어른을 배웅하고 마중하는 조선시대의 기록은 흔치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풍습이 없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일상적이었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이 편지 석 장이 그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편지의 내용을 보편화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어른을 배웅하고 마중하는 것이 조선시대의 보편적인 풍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이 편지를 읽으며 어릴 적 기억이 새롭던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하영휘 / 고문서(古文書) 달인이라 불리는 하영휘는 선인들의 옛 편지를 통한 역사연구로 당시대의 생활상과 사회상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