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의 마음 담은 편지
그림. 정윤미
답장을 겨우 천홍추千鴻秋에게 부쳐 그로 하여금 해남 관체官諦〔관아의 역참〕 편에 부치게 했는데, 그의 회답을 보니 마침 난체蘭遞〔어란포於蘭浦 역참〕에서 먼저 출발하여 가는 편이 있어 편지를 부쳤다고 하더군. 소위 전 만호萬戶〔어란포 만호(종4품 무관)〕가 과연 서울에 잘 도착하여 편지를 즉시 전할지, 몹시 마음이 쓰이네. 또 해남 편을 통하여 작년 섣달 28일 쓴 편지를 받으니, 최근의 편지라고 할 만하네. 또 새해를 맞이하여 한결같이 편안하다니, 아주 위로가 되네. 그러나 편지에서 ‘세월의 감회’와 ‘명망이 없는 부끄러움’을 말했는데, 이것이 진실로 옛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말씀한 뜻이니, 이 뜻을 마음에 새겨 늘 보며 스스로 경계할 수 있으면, 길이 나아가는데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 단상湍上의 편지는 잘 받았네. 내 안부는, 봄이 온 후 목木의 기운이 왕성하기 때문에 적취積聚〔뱃속에 덩어리가 뭉치는 병〕가 자주 발작하지만 연전에 배를 쥐고 죽을 듯 신음하던 지경에는 이르지 않을 뿐이네. 광아光兒의 혼처 문제는, 그 사이에 내 답장을 보았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두 혼처 중에서 과연 이미 결정하여 사주단자를 써 보냈는가? 팔순 노인의 일은 아침에 저녁을 알 수 없으니, 봄여름 사이에 혼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네. 이때 혼례를 치르며 다만 물 한 잔 떠놓고 예를 갖출 뿐, 어찌 예물을 갖추는 것 여부를 논하겠는가? 만약 혼처가 완전히 결정되어 바로 단자를 보냈다는 소식을 들으면, 광아를 4월에 올려보내겠네. 이 뜻을 잘 알아서 반드시 영암이나 해남의 관편官便이나 수영水營의 인편을 구하여 모쪼록 속히 알려주길 바라네. 나머지 사연은 지난 편지에 다 썼네. 또 다음 인편을 기다려 쓰겠네.
1821년 정월 그믐날 부옹婦翁〔장인〕
유배가 오래 풀리지 않자, 같이 생활하며 외로움도 달랠 겸 글도 가르칠 겸 서형수는 손자 ‘광아光兒’를 데리고 있다. 그런데 이제 손자도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마냥 데리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73세〕에 오랜 유배생활로 쇠약해진 몸이라, 자신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죽기 전에 손자의 혼례를 치르게 하리라. 그리하여 그는 손자의 결혼을 재촉하고 있다. 이것이 이 편지의 주된 사연이다. 이 편지에 의하면, 서형수가 바로 전에 사위에게 쓴 편지는 먼저 해남 부근에 있는 천홍추라는 사람에게 보냈고, 천홍추는 그 편지를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전 어란포 만호에게 주며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서울에 간 만호는 그 편지를 인편으로 서형수의 사위에게 보냈을 것이다. 그 편지가 제대로 전해졌는지 중간에 없어졌는지, 서형수가 불안하여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을 보면, 편지가 중간에 없어지기도 한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에서 추자도에 보내는 편지는 그 역순을 밟아서 왔다. 서울의 가족이 편지를 써서 해남이나 영암, 또는 그 부근의 수영水營으로 가는 관편을 수소문하여 천홍추에게 부치면, 천홍추가 그 편지를 받아 추자도의 서형수에게 부쳤다. 전 해 12월 28일 서울에서 부친 편지를 약 한 달 만에 받고는 ‘최근의 편지’라고 한 것을 보면, 서울에서 추자도까지 편지가 가는데 빠르면 한 달쯤 걸린 것으로 보인다.
존재 확인을 위한 편지
원래 써 둔 편지가 오래되어 종이에 보풀이 일었네. 설 후 날씨가 바람 불고 눈 오는 날이 반이라 뱃길이 막혀 부치지도 못하는 사이에 달이 또 바뀌었네. 아득히 먼 하늘가에서 소식을 들을 길이 없는데, ‘혜주惠州① 가 하늘 위에 있지 않다’고 누가 말했던가? 나는 병이 매양 같아서 아직도 자리에 누워 있는 물건이며, 적취積聚가 더 했다 덜 했다 하는 것 외에는 별로 대단한 증세는 없네. 모든 사연은 원폭原幅〔원래 써 둔 편지〕에 있네. 허흠許欽이 제주 암행어사를 따라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이 섬에 정박하여 며칠 와서 만나고, 지금 또 떠난다고 하여 그편으로 이 편지를 부쳐 돌아가는 즉시 특별히 전하게 하니, 다른 편에 비해 훨씬 빠를 것이네. 사면령은 그 사이 이미 마감되었으며, 우리 문제는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가? 관록館錄② 이 이미 시행되어 비연斐然이 명단의 앞에 들었다고 하는데, 당록堂錄③한 언제 시행한다고 하느냐? 그가 출세하는 것이 내게도 기쁨이 아닌 것은 아니나, 나는 이 먼 섬에서 또 한쪽 팔을 지탱하며 어떻게 버텨야 할지 모르겠네.
2월 2일 추가로 쓰다
각주
① 중국 광동성의 지명. 송 나라 소식蘇軾이 왕안석王安石의 화를 당하여 그곳으로 귀양을 간 일이 있으므로, 흔히 귀양살이하는 곳을 지칭한다.
② 홍문관의 교리와 수찬을 선임할 때 홍문관의 관원이 작성한 후보자 명단에 부제학 이하의 관원이 권점을 찍은 명단을 말한다.
③ 홍문관에서 작성한 관록館錄에 의정, 참찬, 대제학, 이조판서, 참판, 참의 등이 권점을 찍어 임금에게 올리는 명단을 말한다. 도당록都堂錄이라고도 한다.
목마르게 인편을 기다리는 사람은 편지를 미리 써 둔다. 인편이라는 것이 언제 만날지 모르는 것이고, 갑자기 인편을 만나 재촉 아래 황급히 편지를 쓰게 되면 두서가 없고 사연도 빼먹기에 십상이다. 그래서 써 둔 편지가 오래되어 보풀이 일었다. 그러다가 뜻밖에 믿을 만한 인편을 만나 원래 써 둔 편지와 함께 이 추신을 동봉하여 부친다. 이번 사면령에 자신이 포함되지 않았는지를 묻는 대목에서는 오랜 유배생활에 지치고 병든 필자의 형편을 엿볼 수 있다. 수신자 손에 들어갈 때까지 적어도 서너 단계를 거치고, 그것도 반드시 전해진다는 보장도 없지만, 서형수는 아득히 먼 서울과 교신하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고립 속에서도 자신이 살아있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한 가닥 생명줄이었기 때문이다.
각주
① 안치(安置) : 죄인의 거주를 한 곳에 제한하여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하게 하는 형벌.
② 양이量移 : 유배된 죄인의 정상을 참작하여 유배지를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겨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