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정윤미
조선시대 부녀자의 행동반경은 그리 넓지 않았다. 평소 이웃에 마실가는 것이 고작이었고, 친정에 상이 나거나 잔치라도 있어야 몇 년 만에 한번 친정나들이를 했다. 더구나 타지방으로의 장거리 여행은 양반가의 부녀자라도 꿈도 꾸지 못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그들이라고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남자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그냥 체념하고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들에게도 장거리 여행의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남편이 지방관으로 근무할 때였다. 지방관은 한 지역의 행정을 관장했기 때문에 중앙관에 비하여 재량권이 많아 가족을 데려다 같이 지낼 수 있었다. 새로 부임한 남편의 임지에 갔다가, 남편의 임기가 끝나면 본가로 돌아가는 부녀자의 행차를 ‘내행內行’이라고 했다. 먼 길을 오가며 구경하는 이색적인 풍물, 남편이 다스리는 지역의 명승과 진미는 마을에만 갇혀 지내던 그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거리요,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호강이었을 것이다. ‘내행’이라는 말은 문헌에 종종 나오지만, 이 말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내행의 규모와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편지가 있어 소개한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외직으로 나가기를 자청하여 1548년 1월 단양군수로 나갔다. 다음 편지는 단양에 올 내행의 수와 방법에 대하여 아들 준寯에게 지시한 것이다.
초하루에 보낸 편지는 이미 보았을 것이다. 모든 일은 그 편지에 자세한데, 아직 답장을 보지 못하여 네가 오는지 여부를 모르겠구나. 나는 남은 증세가 여전하지만, 심하지 않아 다행이다. 그리고 네 서모庶母와 계집종〔비자婢子〕들의 견마잡이〔집마인執馬人〕는 모두 사내종〔노자奴子〕을 써야 된다. 그 나머지 길라잡이〔인노인引路人〕와 말 뒤의 수종인隨從人〔뒤따르며 시중드는 사람〕과 짐바리를 이끄는 사람도 모두 사내종을 써라. 적당히 헤아려 사람 수가 너무 많게 하지 마라. 또 노비 무리에게 이르는 곳마다 조심하고 함부로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가르치고 타일러라.
무신년(1548) 2월 4일 아버지가.
(추신)
네가 만약 오면 건蹇도 소식素食을 해야 된다. 다만 금琴군도 있어 형편상 모두 소식할 수 없으면, 밥 먹을 때 너는 반드시 다른 곳에서 먹어야지, 육식하는 사람과 마주 보고 먹어서는 안 된다. 내청內廳에는 모두 소식할 것을 지시했다.
(봉투에 쓴 추신)
네가 금군과 함께 오더라도 뒤에 쳐지면, 수행할 사람이 없고 종마從馬도 남으니 건도 반드시 함께 와야 된다. 네가 탈 말은 보내지 않는다. 반드시 네 말을 타고 오면, 돌아갈 때도 종마의 폐단이 없다. 그리고 집에 쓰고 남은 쇠가죽이 있으니, 아울러 가져오너라.
‘서모庶母’는 퇴계의 소실(小室)을 말한다. 퇴계는 이태 전에 둘째 부인 권씨를 잃었다. 이제는 이 소실이 단양에 가서 안살림을 살며 퇴계의 수발을 들것이다. 그녀는 관비가 아니면 관노였던 것으로 짐작한다. 신분이 천했기 때문에 가마를 타지 못하고 말을 타고 간다. 아래에 살펴볼 별지에도 나오지만, 계집종들도 따라간다. 그들은 소실의 시중을 들거나 허드렛일을 할 것이다. 그들도 장거리 여행에는 말을 탔음을 알 수 있다. 네 가지 역할을 분담한 사내종의 수도 적지 않다. 일단 편지를 마무리하고 나자, 또 할 말이 떠올랐다. 아니, 이것이 정녕 하고 싶은 말이었을 수도 있다. 편지의 여백과 봉투에 추신을 썼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소식素食’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상중에나 제사를 앞두고 소식을 했다. 아들 준寯이야 계모의 상중이니 소식하는 것은 당연하다. 함께 오는 조카 건蹇은 자기 집에서는 소식하지 않겠지만, 일단 상가에 오는 것이기 때문에 소식해야 된다고 못을 박고 있다. 관아에서 귀한 분을 모시기 위하여 보내는 말을 ‘종마從馬’라고 한다. 퇴계의 내행은 모두 단양군에서 보낸 종마를 타고 갈 것이다. 그러면서도 퇴계는 왔다가 곧 돌아갈 아들에게 종마를 타지 말고 자기 말을 타고 오라고 했다. 아들이 종마를 타고 오면, 돌아갈 때 또 종마를 타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별지)
관아에 거느리고 올 비(婢)
가질금(加叱今). 이 비는 본성이 곧아서, 처음에는 남겨 두고 가사(家事)와 제사를 맡기려 했다. 다시 헤아려보니, 그 지아비가 평소 절도(竊盜)로 이름이 있고 기선군(騎船軍, 수군)의 역(役)도 감당하기가 몹시 어려워, 관아에 데려옴으로써 그 지아비와 떨어지게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그래서 데려오려는데, 너희 생각은 어떠냐?-이 뜻을 조용히 알고 하인들이 알게 하지 마라.극비(克非). 이 비는 미련하고 완고하여 일을 맡길 수 없다. 그러나 가질금을 데려오고 나면, 제사 음식을 만들고 준비하는 등의 여러 가지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이 없다. 이 비에게 맡길 수밖에 없지 않으냐? 다만 이 비가 왕래(往來)를 조심하지 않는 일로 허물이 심하기까지 하여, 내가 그 죄를 다스려 남겨두고 모든 가사를 맡기려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 개임(介任), 연분(燕粉), 조비(趙非)는 모두 데려와야 된다. 석진(石眞). 이 비는 그곳에 남겨두고 잡다한 일과 밥하고 방아 찧는 일을 모두 시켜야 한다. 대개 관아에서 비를 많이 거느릴 수 없기 때문에, 이 네 사람으로 한정하려 한다. 막비(莫非). 이 비는 의지할 곳이 없어서 데려와야 하지만, 식구가 많아서는 안 되기 때문에 데려오지 않으려 한다. 반드시 범금(范金), 광운(光雲) 등을 불러 그들로 하여금 생업(生業)을 의지할 수 있는 부모가 있는 믿을 만한 백성을 택하여 시집보내도록 하고, 죽동(竹洞)에 와서 살도록 하면 더욱 좋겠다. 갖가지 일을 다 말할 수 없으니, 너희가 세세히 헤아려 적당하게 처리해라.
퇴계 이황이 아들 준寯에게 보낸 내행內行 관련 편지원문
가능하면 관아의 경비를 절약하려는 퇴계의 합리적인 정신을 엿볼 수 있다. 편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내행에 데려올 계집종 네 명의 이름을 정해주고, 나머지 계집종의 역할을 자세히 분담해주고 있다. 자기가 부리는 노비에 대하여 이렇게 자상하게 이야기해 주는 자료는 흔치 않다. 자, 이제 퇴계의 내행의 규모와 구성을 그려 볼 수 있게 되었다. 길을 안내하는 길라잡이 한 명, 퇴계의 소실이 탄 말과 마부, 계집종 네 명이 탄 말 네 마리와 마부 네 명, 수종하는 노비 두어 명, 짐바리를 실은 말 서너 마리와 짐꾼 서너 명. 사람 열대여섯 명과 말 여덟아홉 마리가 한 줄로 죽령을 넘는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