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이
뭐길래
예부터 장은 담그면 맛도 좋고 벌레도 아니 생겨 정월에 담그는 것이 좋다 하였다.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막장 등 우리네 장은 집안 식탁을 책임져야 하는 중책을 맡고 있기에 장이 잘되어야 한해가 평안해지는 법이었다. 장맛이 좋은 집은 대를 이어 장맛을 전수했다. 종갓집에 장맛이 변하면 우환이 생긴다고도 했고, 집안이 망한다고도 했다. 장맛이 뭐길래.
그해 난 백태(흰콩) 중에 좋은 것을 골라 음력 동짓달에 메주를 띄우고 음력 정월에 장을 담아 음력 8월이면 햇장이 익는다. 장을 담그는데 열 달이 족히 걸렸던 것은 숙성의 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마치 아이를 낳는 과정처럼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정성이 고스란히 담긴 장으로 간을 하여 내오는 음식은 집안의 내력과 품위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요즘이야 소금으로 음식의 간을 맞추지만 소금은 간장이 없어서 쓰는 대용품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 간장(재래식 간장)은 숙성과정에 따라 그 쓰임이 달랐다. 장을 담그고 첫 번째로 나온 간장을 청장(햇간장)이라 했고 국, 찌개, 나물의 간을 맞출 때 사용했다. 3~4년 정도 묵은 간장을 중간장, 5년 이상 묵은 간장은 진장이라 했는데 단맛이 나고 색도 진해서 조림이나 육류양념에 사용했다. 정월에 장을 담그면 음력 3월경에 간장과 된장을 갈랐다. 꺼낸 메주는 항아리에 담아 빗물이 들어가지 않게 봉하고 햇볕을 쬐어 삭혀 된장을 만들었다. 요즘이야 마트에서 쉽게 사 먹는 된장이며 간장이며 고추장이라지만 재래식 장을 담그는 정성이라면 장맛으로 집안을 본다는 말도 넘치지 않다.
예부터 장은 담그면 맛도 좋고 벌레도 아니 생겨 정월에 담그는 것이 좋다 하였다. 특히 장맛이 변하면
집안에 우환이 든다고 하여 장맛을 각별히 신경썼다.
고추장하면 순창
그리고 문옥례
고추장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순창고추장이 나오고 순창을 검색해도 연관검색어로 순창고추장이 나온다. 이미 사람들은 순창고추장을 고유명사처럼 사용한다. 대한민국 방방곡곡 고추장 안 먹는 가정 없고 고추장 안 담그는 고장 없을 텐데 순창이 유독 고추장맛으로 유명해진 이유는 뭘까?
정설에 의하면 조선시대 진상품이었다는 얘기가 있지만 요즘 유명세의 시작은 1980년으로 올라간다. 순창에서 장을 담가 팔던 문옥례 여사는 국풍80에 고추장을 내놓았다. 당시 TV중계를 통해 얼굴을 알린 문옥례표(?) 고추장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여 현재의 순창고추장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문옥례 대표는 순창으로 시집을 와 시어머니로부터 장 담그는 방법을 전수받았다. 처음에는 군청에서 일하던 남편이 손님을 데리고 오면 가시는 손에 집에서 담근 고추장을 담아 선물로 주었는데 맛이 너무 좋아 지인들로부터 고추장 주문이 이어지면서 조그만 가게를 내었고 이것이 문옥례 브랜드의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문옥례 대표는 아직도 고추장이며 장아찌며 그녀의 손맛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장을 담그며 고추장 명인으로 건재함을 알리고 있다.
하늘의
은혜라는 것
‘연간 안개 낀 날 77일, 습도 72%’ 순창고추장 TV광고에서 들었던 카피라 귀에 익숙하다. 연간 안개 낀 날과 고추장 맛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 이유는 고추장이 대표적인 발효음식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고추장 발효균의 성장에 최적의 기후조건을 갖고 있는 곳이 바로 순창인 것이다. 커다란 태풍에도 피해가 적고 상수원의 오염도 없어 고추장맛을 오래 지켜올 수 있었다. 순창에서는 해마다 8월 즈음 고추장메주를 만든다. 콩과 쌀을 쪄 메주를 빚고 볏짚으로 엮어서 한 달 정도 발효를 시킨다. 볏짚의 바실러스 균이 메주의 발효를 돕는다. 메주가 발효하면서 그곳에 효모, 고초균, 황국균이 번식하는데 고초균은 콩 속의 단백질을 분해해 고추장의 맛을 내고 황국균은 찹쌀에 들어있는 전분과 콩에 들어있는 단백질을 분해해 감칠맛을 더한다. 고추장은 주로 겨울에 담그는데 6개월에 걸쳐 발효가 진행된다. 발효를 통해 각종 미생물의 작용으로 새로운 성분이 생겨나 음식의 맛도 살리고 영양가도 높이는 것이다. 순창이 지역적 특색으로 이러한 발효에 적합한 지역이라는 것은 아주 까다로운 조건들을 두루 만족하고 있다는 것으로 천혜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장처럼 우직한
우체국쇼핑
장 담그는 때가 오면 우체국쇼핑에는 장터가 열린다. 우리 콩으로 잘 띄운 메주와 국산 천일염이 모인다. 고추장이며 된장이며 간장도 있다. 모두 한국의 자연 속에서 숙성된 맛이다. 이렇게 모인 상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신뢰감이 느껴진다. 쇼핑몰의 미덕이라면 질 좋은 제품을 합리적 가격에 공급하는 것일 게다. 이것을 태도의 측면에서 보면 ‘정직’이라는 말과 통한다. 품질이 과연 좋은가라는 질문에 가격이 합당한가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쇼핑몰이 얼마나 될까? 홈쇼핑에서 화면으로 보는 과일의 크기와 집으로 배송된 과일의 크기가 너무도 다른 것을 보고 실망스러웠을 때 느끼는 허탈함은 일종의 배신감에 가깝다. 우체국쇼핑 입점의 기준은 품질과 철학이다. 지역에서 오래도록 사랑받아온 특산품으로 시작했던 첫 마음을 그대로 지켜가고 있기 때문이다. 민원율이 1%에도 못 미치는 품질관리는 우리 것을 지킨다는 철학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하지 않던가. 겉보다 속이 훌륭한 우리네 장터. 아직도 장 못 담근 이들에게 오늘은 우체국쇼핑에서 장 담그는 날이다.
된장
고추장
간장의 장류,
건강이야기
음식에 맛과 향을 불어넣고 감칠맛을 내주는 장맛은 메주에서 시작된다. 메주에는 항암효과가 뛰어난 바실러스균을 비롯한 다양한 유익균과 식물성 단백질과 지방, 칼슘, 인, 철분, 섬유질, 리놀산, 레시틴 등의 영양성분이 함유되어 그 자체만으로도 건강식품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된장, 고추장, 간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한 단계 더 발효를 거치는데, 최소 2개월에서 길게는 수십 년에 걸친 발효과정에서 유익균은 더욱 늘어나고 시간의 깊이만큼 맛과 향도 풍부해지는 것이다.
항암효과 뛰어난 된장
된장에 들어있는 키토올리고산은 면역력 향상과 향균, 항암 효과가 있다. 또한 필수지방산과 리놀렌산은 콜레스테롤을 감소시켜 심장질환과 혈관질환, 노인성 치매를 예방해준다. 이외에도 전통방식으로 만든 된장에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의 유해균과 체내 노폐물을 제거하는 작용을 해 노화를 방지하는 항산화 효과와 디톡스, 비만예방 효과 등을 기대할 수 있다.
항암효과 뛰어난 전통된장 - 짚과 메주, 천일염으로 만든 전통된장에는 바실러스균을 비롯해 항암효과와 해독효과, 항산화작용 등 유익한 작용을 하는 세균과 곰팡이, 효모가 풍부하다. 이에 비해 콩, 쌀, 밀가루에 메주가루와 코지균을 섞어 만드는 시판된장은 염분이 적고 발효과정이 짧으며 균등한 맛과 영양성분을 지닌 제품을 양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전통된장에 비해 항암효과가 떨어지고 유익균이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다.
다이어트 특효약, 고추장
군산대 주종재 교수 연구팀은 “고추장이 체지방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체지방 감소의 비결은 고추장의 원료에 있다. 고추의 캡사이신과 메주의 사포닌과 레시틴 등 그리고 발효과정에서 생긴 발효산물들이 콜레스테롤 분해와 지방연소를 도와 체지방을 감소시켜준다는 것, 또한 고추장에는 유산균이 풍부해 장운동을 활성화시키고, 아밀라아제와 프로테아제 등 소화효소가 들어있어 소화를 돕는 역할을 한다.
전통고추장과 시판고추장, 무엇이 다를까? - 전통고추장과 시판고추장의 가장 큰 차이는 메주의 함량에 있다. 시판고추장은 숙성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메주를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량을 절반 이하로 줄이고 있다. 따라서 메주 속 영양성분이나 아밀라아제와 프로테아제 등 메주의 발효과정에서 생기는 효소들의 역할은 시판고추장에선 기대하기 어려운 효과다.
유해물질 제거하는 디톡스 푸드, 간장
된장을 담는 과정에서 생기는 물을 분리해 따로 숙성시켜 만드는 전통간장은 된장과 동일한 원료를 사용해 동일한 초기 발효과정을 거친 만큼 그 효과도 비슷하다. 간장에 들어있는 메티오닌은
간의 해독기능을 도와 체내의 유해물질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알코올과 니코틴의 해독에 특효를 보이기 때문에 술, 담배로 피곤해진 몸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선 간장요리를 꾸준히 먹는 것이 좋다. 또한 혈액을 맑게 하고 혈관에 탄력을 불어넣어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고 면역력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화학물질로 만드는 혼합간장 - 간장은 크게 양조간장과 혼합간장으로 나뉜다. 양조간장에는 된장에서 간장을 분리하는 전통간장과 메주 대신 콩가루, 콩비지 등 대두 가공품을 사용해 만드는 개량식 간장이 있다. 혼합간장은 콩 가공품을 염산으로 분해하고 소금으로 간을 해서 산분해간장과 양조간장을 섞어 만든 간장이다. 산분해간장은 발효기간을 거쳐야만 생성되는 아미노산을 얻기 위해 가성소다나 탄산소다를 사용한다는 문제도 있다.
이윤진 / 건강칼럼니스트. 건강전문기자 출신으로 최근 <도쿄 데이&나이트>를 여행도서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