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달고, 더 쫀득한 맛!
“길이 조용하지요? 원래는 상주가 떠들썩한 고장인데 이맘 때만 되면 한산해집니다. 저희 같은 곶감 농장은 물론이고, 동네 어르신들도 다들 곶감 농장에서 소일거리 삼아 감 깎고 매다는 일을 하시거든요.” 아버지를 도와 상주형제곶감농원을 운영 중인 문상훈 씨는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설명을 한다. 감꼭지를 따고 감 깎는 기계로 감의 껍질을 벗겨 낸 뒤, 타래(줄)에 감을 묶어 건조장에 너는 일이 그야말로 일사천리다. 감을 따지 않고 놔두면 잘 익은 홍시가 되고 따서 잘 말리면 곶감이 되니, 홍시가 되기 전에 수확을 하고 말리는 손길이 분주한 것은 당연한 일. 감 수확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10월 초부터 곶감을 포장 출하하는 작업이 마무리되는 2월 초까지는 매년 반복되는 익숙한 풍경이라고 한다.
“곶감은 어떤 감으로 만드느냐가 정말 중요한데, 경북 상주의 둥시①로 만든 곶감은 당도와 씹는 질감이 전국 최고입니다. 감이 둥근 모양이라고 해서 둥시라고 부르는데 상주에서 나는 감의 90%는 이 둥시죠. 상주는 토향이 비옥하고 일교차가 클 뿐만 아니라, 상주를 둘러싼 속리산이 바다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을 막아 건조하고 찬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곶감을 말리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고 있죠.”
곶감 이야기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지명이 ‘상주’인만큼 곶감에 있어 상주의 인지도는 독보적이다. 전국 곶감 생산량의 65% 정도가 상주에서 생산되니, 그 양만 해도 연간 7,000톤에 달한다. 맑은 물과 공기, 비옥한 토향에서 자란 감이 적당한 햇살과 온도 시원한 바람을 만나 달고 쫀득한 상주 곶감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① 태추, 신대봉, 월하시, 대봉시, 밀시 등 감 품종의 하나. 중부지역에 많고 월동이 가능하며 곶감용으로 최적이다.
팔방미인 곶감 예찬!
“곶감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호랑이의 입맛도 사로잡았다는 달콤한 맛. 감의 단맛이 햇살과 바람을 만나 그 깊이를 더 하니, 과실의 단맛 중에서도 곶감의 당도는 단연 최고다. 뿐만 아니라 곶감의 비타민C는 사과의 8~10배에 달하고 비타민A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가을에 잘 익은 감을 따서 말려 과일 섭취가 어려운 겨울에 부족한 비타민을 보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조상의 지혜도 엿보인다.
고려시대의 문헌 <향약구급방>에 감에 대한 기록은 있으나, 곶감에 대해서는 1682년(숙종 8년) 중국에 보낸 예물목록에서 처음 기록되었으며, 19세기 초의 문헌 <주영편 晝永編>에는 종묘제사 때 바치던 계절식료품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부터 본격적으로 곶감을 만들어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의보감>에서는 곶감(건시, 백시)의 시상(겉면에 내돋는 흰 가루)이 기침, 목감기에 좋다고 언급하고 있고, 중국의 <중약대사전>에는 곶감의 표면에 생기는 흰 분말이 폐열조해①, 인건후통②, 구설생창③, 토혈④, 객혈⑤등을 치료한다고 나온다. 이를 토대로 한방에서는 머리가 아프고 코가 막히며 기침이 날 때 곶감 서너 개를 구워 먹거나 곶감 세 개와 생강 한뿌리를 함께 달여서 하루에 한번씩 마시도록 권하고 있다.
또, 술을 마실 때 곶감을 안주로 먹거나 다음 날 아침 곶감 달인 물을 마시면, 곶감의 당질로 인해 숙취해소와 피로 회복에 효과가 있고, 곶감을 식초에 1개월 동안 절인 뒤 벌레 물린 곳에 바르면 식초의 강한 살균 작용과 곶감의 수렴작용으로 인해 좋은 약효를 낸다. 자연에서 얻은 달콤하고 건강한 맛. 우는 아이도 그치게 하는 곶감의 매력은 끝이 없다.
① 폐에 생긴 여러 가지 열증(熱證)으로 마른기침이 나는 것
② 목구멍의 건조한 상태가 심하여 통증이 나타나는 증상
③ 입과 혀에 부스럼이 생기는 증상
④ 소화관 내에서 대량의 출혈이 발생하여 피를 토하는 것
⑤ 혈액이나 혈액이 섞인 가래를 기침과 함께 배출해내는 증상
4대를 이어온 맛,
상주형제곶감농원
“아버지를 도와서 농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제가 주로 하는 일은 일하시는 분들 심부름입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농원에서 일하시는 분은 물론이고 대부분이 저보다 오래 일하신 숙련되신 분들이거든요. 감 깎는 기계 고장 나면 고쳐드리고, 새참 챙겨드리고, 무거운 감 날라드리고, 그러면서 어르신들의 오랜 노하우를 배우고 있죠.” 상훈 씨가 아버지 문의현 씨와 여러 어르신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비단 오랜 노하우만은 아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의 방식 그대로 맛 좋은 곶감을 정직하게 만드는 장인정신. 상훈 씨는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 때부터 4대째 내려오는 그 마음을 배우고 있다. 상주 지역에서 자란 질 좋은 감만을 골라 옛날 방식 그래도 일일이 손으로 매달고 햇빛과 바람만으로 건조시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60일 동안 밤낮으로 일조량을 조절하고 곰팡이가 나지 않게 널어놓은 감을 보살피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요즘은 기계건조를 하는 곳도 많이 늘었어요. 감을 일일이 매다는 수고 없이 건조기에 넣기만 하면 며칠 만에 곶감이 나오니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큰 도움이 되죠. 그러나 맛은 자연건조에 비해 크게 떨어집니다. 껍질이 두꺼워질 뿐만 아니라 질겨지고 뒷맛에 쓴맛이 섞이게 돼요.”
작년에 유독 장마가 길게 이어지고 이상고온 현상이 계속되면서 건조장에 걸어놓은 감이 홍시처럼 변해서 녹아내리는 일이 벌어졌었다. 상주 곶감의 3분의 1 이상이 버려지는 피해를 입었고, 자연건조를 고집하던 농가들 중 많은 곳이 안전하고 편리한 기계건조로 돌아섰을 때는 상훈 씨의 마음도 흔들렸었다.
“아버지께서 딱 한마디 하셨어요. 돈을 많이 벌기 위한 욕심이 아니라, 제일 맛 좋은 곶감을 만들겠다는 고집으로 지금까지 왔다고. 사람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결국 알맞은 온도와 습도, 햇살과 바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좋은 곶감을 만들 수가 없는 거잖아요. 기계를 이용하면 더 편리하긴 하겠지만 대신에 자연이 주는 그 깊은 맛은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 맛을 지키기 위해 조금 더디고 불편한 방법을 고집하기로 했다. 발품을 팔아 가장 좋은 감을 고르고,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묶어서 매다는 일. 적당한 일조량을 위해 가림막을 올리고 내리는 일을 반복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곶감의 상태를 확인하고 바람이 잘 통하도록 이동시키는 일. ‘상주형제곶감농원’이 자연에서 얻은 가장 달콤한 곶감의 맛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선택한 일이다.
자료출처 : <상주곶감> 상주시 발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