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건강지킴이
긴 겨울밤,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귤을 까먹다 보면, 어느새 바구니에 빈 껍질만 수북하기 일쑤다. 겨울철, 가정마다 한 상자씩 귤을 쟁여놓고 심심할 때마다 꺼내 먹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다.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을 즐겁게 해줄 뿐만 아니라, 향긋한 향은 코를, 샛노란 색깔은 눈을 즐겁게 해준다. 어디 그뿐이랴. 도구를 이용해 껍질을 벗길 필요 없이 손만 있으면 어디서나 쉽게 껍질을 까서 먹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겨울을 대표하는 국민 과일이라 할만하다. 그렇다고 귤을 단지 달콤한 맛이나 편리함만으로 승부하는 과일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암 예방, 피로회복, 감기 예방, 고혈압 예방 등 그 어느 과일보다 건강에 이롭다. 제주 감귤에는 암 억제 물질인 ‘베타클립토키산틴’이 과일 1개에 1㎎ 이상으로 수입오렌지보다 100배가 더 함유되어 있다는 사실이 ‘일본과수시험장과 교토부립대학 공동연구팀’에 의하여 밝혀졌다. 스페인 카탈란종양연구소 연구팀 역시 지난 2000년 52만 1457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 귤을 하루 반개~한개(50~100g)씩 먹는 것이 위암 예방 효과가 있었다고 국제암저널에 발표한 바 있다. 또 귤 속껍질에는 대장운동을 도와 변비를 해결하는 식이섬유 펙틴이 풍부하기 때문에 하얀 속껍질을 떼지 않고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 뿐만 아니라 말려서 오래 둔 귤껍질을 한방에서는 ‘진피’라 하는데, <본초강목>에는 진피가 구역질이나 딸꾹질, 속이 번거로운 것을 치료한다고 전해지며, <동의보감>에도 진피 하나만 가지고 일체의 기체나 기결 등을 다스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귤껍질과 생강을 넣고 푹 달여 끓인 귤껍질차를 꾸준히 마시면 겨우내 감기 걱정을 덜 수 있다. 귤껍질은 생활 곳곳에서도 요긴하게 쓰인다. 흰 빨래를 삶을 때 귤껍질과 빨래를 함께 삶으면 귤껍질이 표백제 역할을 하면서 빨래가 더욱 희어지고, 귤껍질을 삶은 물로 바닥을 닦으면 반짝반짝 윤이 나고, 컵이나 사기그릇에 낀 때도 말끔히 제거된다. 귤즙을 린스제로 쓰면 머릿결도 한층 부드러워진다.
제주의 귤,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식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적절한 기온, 햇빛, 바람, 흙, 물 등이 필요하지만, 감귤은 이 중에서도 흙과 기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7℃ 이하에서는 잎이 떨어지고 열매가 심한 동해를 입기 때문에 내륙지역에 비해 기온이 높고 일조량이 풍부한 제주도가 귤 재배의 최적지다. 화산재로 이루어진 제주의 토양 역시 배수가 잘되기 때문에 귤 농사를 짓기에 최고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제주의 남쪽인 서귀포 일대에 감귤나무가 많은데, 이는 한라산이 바람막이가 되어 북쪽에서 오는 찬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현재 제주지역에서 재배되는 감귤 품종들은 20세기 일본에서 도입된 품종들로 온주밀감이 대부분이다. 1903년 제주에 부임한 Esmile J. Taque 신부가 1911년 제주의 왕벚나무 원종과 일본의 온주밀감을 교환해 현재 서귀포시 서홍동 소재 복자수도원에 심었는데, 이것이 온주밀감 재배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 감귤이 처음 재배된 때는 이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디서 언제 도입돼 재배되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제주의 역사를 기록한 탐라지(耽羅誌)에 ‘백제 문주왕 2년(476년) 탐라국에서 공물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제주 지역에서 감귤이 재배됐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 고려사세가(高麗史世家)에는 고려 문종 6년(1052년)에 지금의 세금인 세공으로 탐라국(현 제주)에서 받아오던 귤의 양을 100包(포)로 늘린다고 기록돼 있다. 이는 고려시대부터 제주 지역은 국가에 감귤을 세공품으로 진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시대에는 왕가에 의해 제주의 감귤이 관리되었다. 세조원년(1456년)에 제주도안무사에 내린 유지 <세조실록(世祖實錄) 2권>에 보면 “감귤은 종묘에 제사지내고 빈객을 접대함으로써 그 쓰임이 매우 중요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왕가에서 파견한 관리는 감귤나무의 수를 일일이 기록할 정도로 왕족과 중앙관리들만이 맛볼 수 있는 귀한 과일이었다. 1564년(명종 19)에는 제주도에서 감귤이 진상되어 올라오면, 성균관의 명륜당에 유생들을 모아놓고 감귤을 나누어준 뒤 시제를 내리기도 했는데, ‘선계의 맛’이라는 감귤을 맛보기 위한 유생들의 경쟁 또한 치열했다고 한다. 이 시험이 바로 황감제(黃柑製)다.
제주도 맑은 해풍과 햇빛 맞으며 자란 서림농원 노지 귤. 일일이 손으로 선별해 그 맛이 더 달고 향기롭다.
서림농원의 노지 감귤
한라산에는 설화가 살포시 내려앉았지만, 제주 서귀포에 자리한 서림농원에는 한라산의 흰 눈이 무색하게, 진한 초록가지마다 주렁주렁 감귤이 영글어 간다.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감귤을 따는 박성필 (서림농원 대표) 씨의 손길이 분주하다. 하우스가 아닌 노지에서 키우는 감귤은 익어가는 속도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일일이 눈으로 확인한 후, 때를 놓치지 않고 수확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빅성필 씨가 새벽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12시간을 꼬박 감귤농장에서 보내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하면서도 노지 감귤을 고집하는 이유는, 제주의 자연을 담은 감귤을 재배하고 싶다는 오랜 욕심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면서 늘 곁에 두고 먹던 것이 귤이에요. 굳이 감귤농장을 하지 않아도 집집마다 감귤 나무 한그루씩은 있었으니까요. 매년 겨울이 되면 감귤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귤을 바구니에 소복하게 담아서 겨울 내내 먹었던 기억이 있어요. 제주의 바람을 맞고 햇살을 받으며 자연이 키운 귤의 그 싱그러운 맛을 지키고 싶었죠.”
12년 전, 본격적으로 감귤농장을 시작했을 때 그가 처음 한 일은 ‘흙을 살리는 일’이었다. 지렁이와 미생물들이 살 수 있는 흙을 만드는 일. 이를 위해 제초제와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대신 직접 거름을 만들어 사용하고 일일이 손으로 잡초를 제거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기를 3년, 지렁이가 꿈틀대는 살아 있는 흙에서 자연을 담은 감귤이 열리기 시작했다. 봄부터 가을까지 수시로 거름을 주는 것은 물론,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물을 끌어와 뿌려주고, 때가 되면 가지치기를 해주고, 바람도 막아 줘야 한다. 1년 내내 감귤농장에서 흘린 땀방울에 제주의 자연이 더해져 황금빛 열매가 탄생하는 것이다.
“강제 착색과 코팅처리를 하지 않아 모양도 못났고, 일일이 손으로 선별을 해서 크기도 고르지 못하지만 새콤달콤한 맛과 영양은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내 가족이 먹을 음식이라는 마음으로 정성껏 키운 서림농원의 감귤은 껍질이 얇고 당도가 높아 겨울이면 단골들의 주문이 이어진다. 정직한 마음과 ‘제주의 자연을 닮은 건강한 감귤’을 향한 고집이 오롯이 담긴 서림농원 감귤의 싱그러운 맛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출처: 조선일보 2009년 3월 11일 기사, 네이버캐스트 황교익 칼럼, 제주감귤박물관,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