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창의 애간장을 녹인 홍랑의 뛰어난 시문
홍랑은 기생이었다. 기생은 유교적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조선시대에 가히 노비나 다를 바 없는 천민이었다. 천민은 결코 양반을 사랑할 수도 없고 사랑해서도 안되는 법.그럴진대과연어떻게해서홍랑과최경창은사랑에빠질수가있었던가?
조선 8대 문장가에 당시 삼당시인으로 불리며 추앙을 받았던 고죽 최경창! 그들의 운명적인 첫 만남은 무관이었던 최경창이 북도평사로 함경도경성에 부임하면서 이루어진다.
최경창은 도중에 홍원이란 곳을 들르게 되는데, 당시 그곳 관아의 기생이었던 홍랑이 최경창을 맞게 된 것이다. 홍랑은 문장에 탁월한 최경창을보자 감히 넘보지 못할 사람임에도 단번에 연정을 느끼게 된다.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 아니던가? 홍랑의 얼굴에 홍조가 드리워짐과 함께 최경창의 가슴속에도 사랑의 불꽃이 튀어 올랐다. 홍랑의청초하고 아름다운 미모도 그러려니와 그의 애간장을 녹인 것은 그녀의뛰어난 시문 때문이었다. 해서 최경창은 홍랑에게 이런 약조를 하기에 이른다.
“홍랑, 내 경성에 도착하는 즉시 다시 데리러 올 것이야. 허니 그리 알거라. 나는 이 약조를 꼭 지킬 터니라.”
하지만 얄궂은 운명은 이들의 만남을 방해하고 말았으니, 그것은 당시최창경이 처한 역사적 임무가 그것이었다. 즉, 최북단 국경이었던 경성은 오랑캐의 침범이 많았던 곳으로 무관인 최경창은 전투를 치르기 위해 그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흘러버린 시간이 장장 1년! 이제나 저제나 임 소식만을 기다리던 홍랑은 더 이상 타는 사랑의 갈증을 참다 못해 홍원에서 경성까지 천리 길을 나서기에 이른다.
“아니 이게 누구던가, 홍랑 아닌가.”
최경창은 임을 찾아 먼 길을 찾아온 홍랑을 뜨겁게 껴안았다. 홍랑의눈에서 흘린 눈물은 비가 되어 최경창의 옷을 적셨다.
“이제는 더 이상 떨어져 있고 싶지 않사옵니다.”
그러나 이들의 애끓는 절절한 사랑이 다시 위기에 처하고 말았으니 그것은 임기를 마친 최경창이 한양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영흥의 함관령까지 최경창을 배웅하는 그 날 밤은 홍랑의 마음을 아는 듯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부여잡은 두 손을 놓아야 되는 순간이 가까워질 때 쯤 마침내 홍랑은 버들가지와 함께 시조 한 수가 적힌 서찰을 내미는데, 그 내용은 이것이었다.
묏버들 가려 꺾어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에게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 잎 나거든 나인가도 여기소서
여기서 가리키는‘묏’은 옛말에서 유래한 우리말로‘순수, 앞, 근원’을 뜻한다. 그러니까 묏버들은 산 버들로서 홍랑의 순수한 영혼이 담긴 버들을 의미한다. 비록 사랑하는 임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버들가지에 새 잎이 돋아나듯이 자신을 기억해 주면서 그리워 해달라는 애절함이 질곡지게 묻어 있는 이 편지야말로 조선시대 최고의연서가 아닐까?
이에 최경창은 홍랑에게 난초를 건네주며 자신의 어두운 마음을 표현한 답시를 주었다.
말없이 바라보며 유란을 주노라
오늘 하늘 끝으로 떠나고 나면 언제 돌아오랴
함관령의 옛 노래를 부르지 마라
지금까지도 청산에 어둡나니
기생신분으로 사대부 집안의 선산에 묻힌 홍랑
한양으로 돌아온 최경창은 병으로 몸져눕기에 이르고, 이 소식을 접한 홍랑은 7일 밤낮을 걸어 한양으로 향한다. 오직 임을 향한 열정으로…. 그러나 이들의 사랑 행각이 조정에 알려지게 되고 최경창은 파직을 당하고 만다. 이후 최경창은 평생을 변방의 한직으로 떠돌다 마흔다섯의 나이에 객사하고 만다.
그러나 홍랑의 임을 향한 사랑은 식을 줄을 몰랐다. 최경창이 죽은 뒤 홍랑은 스스로 얼굴을 상하게 하고 임의무덤가에서 시묘살이를 시작한다. 그녀는 숨이 끊어지는 14년간 그의 곁을 지켰으니 이 얼마나 애틋한 사랑인가.
감히 기생의 신분으로 어엿한 사대부 집안의 선산에 묻힌 홍랑! 얼마나 그 사랑이 지고지순했으면 천민의 신분임에도 해주 최 씨 문중이 이를 받아들이고 그녀를 문중 산에 머물게 해주었을까? 지금도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다율리 해주 최 씨 선산에 가면 최경창 부부의 합장묘 밑에 홍랑의 무덤이 서 있다. 묘역 입구엔 시비가 서 있으며 정면엔‘고죽시비’가, 뒷면엔‘홍랑가비’라는 홍랑의 시조가 새겨져서 그들의 사랑이 이끼 낀 세월이 흐른 아직까지도 메아리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