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연인들
과학자나 연구가 등 이런 사람들은 연애와 담을 쌓고 지내리라고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이 더더욱 관심을 끌게 된 것은 그의 바람 잘 날이 없었던 연애행각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첫 결혼 상대자는 학창 시절 짝사랑했던 4년 연상의 밀레다 마리 치란 여성이었다. 그는 밀레 마에게 바치는 연서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처럼 강인하고 부모로부터 독립적인 그대를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기쁜지 당신은 모를 거요. 당신을 생각하지 않고는 하찮은 사람들 무리 속에서 더 살고 싶은 생각이 없소.
— 내 귀여운 병아리에게 아인슈타인으로부터
그는 연상의 여인에게‘내 귀여운 병아리’라고 하면서 밀레바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 보였다. 스물한 살 때 보낸 연애 편지에는 그가 얼마나 밀레바를 사랑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들어있는데 바로 이것이다.
밀레바! 당신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것이 힘들어. 나의 모든 것, 나의 수다쟁이, 나의 꼬마요정, 나의 장난꾸러기여
그런가하면 또 다른 연서에는 자신의 상대성이론과 접목시킨 대목이 나오기도 한다.
우리들의 상대운동에 관한 작업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빠른 시일 내에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맹목적 짝사랑에 그치고 말았다. 밀레바가 일절 응답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후 아인슈타인은 여러차례 연서를보냈고‘, 열번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없다’는 속담처럼 마침내 그 철옹성같던 밀레바의 마음이 열리고 만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양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기에 이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둘 사이에 냉전의 기류가 감돌기 시작하고 만다. 아무리 사랑했던 사이라도 미워지면 원수가 된다고 했던가? 아인슈타인은 그토록 사랑했던 밀레바에 대한 염증이 커지면서 마침내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기에 이른다.
밀레바, 이혼당하고 싶지 않으면 이런 조건을 지키시오. 내 방과 옷을 항상 깨끗이 정리하고, 하루 세 끼 식사를 내 방으로 가져오고, 내 물건에 절대로 손대지 말고, 옆에 앉으라고 하지 말고, 함께 외출할 생각도 하지 말고, 부르면 즉시 대답하고, 어떤 애정도 기대하지 마시오.
그러니까 이 편지는 연서가 아닌 이별을 예고하는 경고장인 셈이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당연히 그들의 결혼생활이 제대로 유지될 수 없었고, 별거에 들어가면서 결국 이혼을 하게 된다. 노벨상금 일부를 위자료로 지불하고는 밀레바와 의 연을 모두 끊고 만 아인슈타인. 그는 이혼하자마자 내연관계였던 사촌여동생 엘자와 결혼하였다. 이후 그는 물리학 연구뿐만 아니라 연애 연구에도 몰입하기 시작했으니, 구소련의 여자 스파이, 여비서, 심지어는 의붓딸의 친구와도 염문을 뿌리는 등 과연 저런 사람이 천재 물리학자가 맞나 할 정도로 카사노바 뺨치는 행각을 펼친다.
그는 노벨상금으로 위자료를 지불하고 상당액의 돈을 미국에 투자했지만 대공황 때 모두 날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여자들이 아인슈타인을 따른 것은 아마 그의 명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정식 결혼 두 번에 그가 사귄 공식적인 여인만도 개인비서 등 여섯 명. 그리고 유럽의 돈 많은 귀부인 등 수십 명의 애인을뒀던것으로알려진천재물리학자겸천재카사노바아인슈타인! 그는자주이렇게말하곤했다.“ 나는원하지 않는데도 여성들이 애정 공세를 멈추지 않는다.”그러니까 자의든 타의든 그는 항상 여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것으로 여겨진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내가 죽으면 묘지를 만들지 말고 바로 화장을 하시오.” 왜그랬을까? 그 속내야 모르지만 혹시 자신이 사랑했던 많은 여성들이 묘지로 참배하러 올까봐, 그래서 바람둥이로 찍힐까봐 걱정돼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세기적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그는 왜 한 여자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여자를 찾아 나선 것일까? 그 해답은 다음의 편지 한 구절에서 유추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1921년 두 번째 부인 엘자에게 보낸 편지에 나타난 바로 이대목이다.“ 나는 상대성 이론에 질리게 될 것이다. 아무리 내가 집착한것이라도 너무 깊게 빠져있게 되면 시들게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