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를 만난지도 엊그제 같은데, 벌써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별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동안 한국대표팀을 맡아 힘든 일도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선수들에게는 내색도 안 하시고 묵묵히 저희를 지도해 주시고 월드컵 4강이란 신화를 만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포르투갈과의 본선 마지막 경기에서 결승골을 뽑아낸 뒤 벤치로 달려가 할아버지 품에 와락 안겼었죠. 사람들은 그걸 보며 아버지와 아들이 포옹하듯 자연스럽고도 감동적인 장면이었다고 얘기하지만, 저는 감독님이 할아버지처럼 느껴졌어요. 사실 그때 할아버지가 먼저 제게 달려오라는 사인을 보내신 걸 봤고 감독님의 손짓을 보며 저는 ‘할아버지가 나를 찾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히딩크를 할아버지로 칭한 박지성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의 축구인생은 히딩크 감독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 한국 축구의 사령탑으로 선임된 히딩크 감독이 그의 잠재력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는 눈에 띄는 기대주나 유망주가 아니었다.
실력만이 살 길이다
박지성의 아버지는 항상 “네가 살 길은 실력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량은 뛰어났지만, 다소 작은 키와 몸집 탓인지 국내 대학과 프로팀 어디에서도 수원공고를 졸업한 그를 원치 않았다. 축구에 눈을 뜨게 해준 이학종 감독이 “두고 보면 알겠지만 크게 될 선수입니다”라며 강력 추천했고, 명지대 축구부의 김희태 감독이 받아들였다. 거기서 인생 전환점의 기회를 맞았다.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과 명지대의 연습경기에 출전했고, 얼마 후 자신의 귀를 의심할 만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지성이냐? 너 대표팀에 뽑혔다. 곧바로 짐 싸서 합류해라.” 그렇게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호에 승선했고 얼마 후에는 월드컵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됐다. 일본 프로리그 교토 퍼플상가로 이적했고, 이듬해 1월 울산 전지훈련에서 히딩크 감독을 처음 만났다. 한일 월드컵 개막식이 1년 반 정도 남았던 무렵이다. “감독님이 제 이름을 처음 불러주신 때가 기억나네요. 우리가 홍콩 칼스버그컵에 출전할 당시, 호텔 로비를 어슬렁거릴때 감독님이 제게 다가와 “지성, 나이트클럽 가는데 같이 가자”고 권했죠. 감독님이 내게도 관심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이 생겨 났어요. 그 이후에도 감독님은 대표팀 막내인 저에게 항상 따뜻하게 대해주셨죠. 이제 할아버지는 한국을 떠나지만 언젠가는 다시 뵐 날이 오리라 믿고 있어요.”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그들은 네덜란드에서 다시 감독과 선수로 만났다. 초반에 낯선 환경에서 각종 어려움이 많았지만, 결국 그는 클럽 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박지성다운 행동으로 스타가 되다
“월드컵이 끝나고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에 합류한 자네는 한동안 어려운 시기를 보냈지. 당연한 일이었어. 모든 면이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오른쪽 무릎 부상으로 고통당하면서도 묵묵히, 아무런 불평 없이 최선을 다해 뛰고 또 뛰었지. 역시 박지성다운 행동이었다고나 할까. 클럽 안팎에서 들려오던 불만의 소리를 물리치고 마침내 PSV에서 가장 특별한 선수, 가장 사랑받는 선수 중 하나로 우뚝 섰어. 앞으로도 묵묵히 아무런 불평없이 최선을 다해 뛰는 내 제자 박지성을 기대하겠네.”
할아버지와 제자로 서로를 부르던 히딩크와 박지성. 히딩크는 박지성의 학벌이나 체격보다 그가 가진 실력과 노력, 성실과 책임감을 알아봤고, 박지성은 감독의 신뢰에 힘입어 나날이 성장한 실력으로 보답했다. 그가 히딩크 감독에게 제일 고마웠던 점은, 자기안에 숨어 있던 잠재력을 현실로 끌어내 준 것이다. 특히 작은 키(177cm) 탓에 항상 미드필더로 뛰던 그를 히딩크는 ‘최전방 라인과 미드필드 라인 사이에서 교묘하게 움직이며 상대를 괴롭힐 줄 아는 선수’라고 칭하며 과감히 최전방 공격수로 기용했다.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놀라웠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가장 충성심있고 정직한 선수
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거. 그 영광의 타이틀은 박지성이 거머쥐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직접 박지성에게 전화를 걸어 입단을 제의했다.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과의 인연을 생각해 잠시 고민했지만, 새로운 도전을 피하지 않았다. 동료에게 받는 믿음과 사랑은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닌데도 박지성은 ‘맨유’에서 그다운 경기를 펼치며 팀을 우선시하고 동료를 배려하여 모두에게 인정받았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일화가 있다.
맨유로 이적한 초반 풀햄과의 경기에서 상대팀에게 동점을 허용한 후, 맨유의 최전방 공격수 루니가 상대 수비라인을 뚫고 들어가는 박지성에게 패스를 했고, 골키퍼가 그를 향해 달려나왔다. 이때 충분히 슈팅할 수 있었지만 박지성은 자기보다 좋은 위치에 있던 동료에게 패스해서 역전골을 넣게 했다. “나도 골 욕심은 있었다. 그때까지 데뷔골을 기록하지 못해서 솔직히 빨리 골을 넣고 싶었다. 하지만 축구는 혼자서 하는 경기가 아니다. 내가 골을 넣는 것도 중요하지만 팀의 승리가 훨씬 더 중요하다. 내가 아무리 골을 많이 넣어도 나의 이기적인 경기로 인해 팀이 승리하지 못한다면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없다. 축구는 팀의 일원으로서 선수를 평가하는 스포츠이다. 선수 개인이 골을 넣는 것보다 경기에서 팀이 승리하는 게 더 우선이다. 골문 앞에서 나는 언제나 나보다 더 골을 넣기 좋은 위치에 동료가 있는지 살핀다.”
팀을 위한 헌신과 동료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그를 퍼거슨 감독은 맨유에서 가장 충성심이 깊고, 프로정신과 결단력이있는 선수로 꼽았다. 2012년 박지성을 QPR로 떠나 보낼때 아쉬움이 컸던 퍼거슨 감독은 ‘지성아! 난 언제까지나 너를 내 선수 중 하나로 여길 것이고, 언제고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날 찾아와라’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렇게 박지성은 자신의 롤모델인 둥가와 같은 존재가 되어갔다. 둥가는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우승한 브라질 대표팀의 주장이었다. “팀 전체를 아우르는 둥가만의 분위기, 그것이 나의 목표였다. 내가 그라운드에 섰을 때 팬들뿐만 아니라 코칭 스태프와 동료들도 믿을 수 있는 선수, 그런 존재가 되리라.”
박지성이 대한민국에게 쓴 편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한국-에콰도르 평가전’이 끝난 후 전광판에 대표팀 주장 박지성의 편지가 띄워졌다.
“누군가 저에게 자신있냐고 물어본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국민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특별한 선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닌 대한민국에겐 특별한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동료들의 눈에서도 보입니다. 붉은 악마의 함성에서도 들립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투혼이라고 부릅니다. 누군가 다시 저에게 자신있냐고 물어본다면 대한민국은 꼭 해낼 것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개개인으로서는 평범할 수 있지만, 하나로 뭉쳤을 때 누구보다 강한 투혼의 힘.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 팀이기 때문입니다.”
팀스포츠인 축구에서 각자의 노력과 집중력이 하나로 모였을 때, 상상 이상의 결과를 내기도 한다. 경기장의 대표팀, 관중석의 붉은 악마, 텔레비전으로 시청하는 국민들의 마음이 모여 ‘대한민국 원팀(one team)’으로서 최선의 결과를 내겠다는 주장 박지성의 편지는 진심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무명 선수였던 저를 응원해 준 팬들부터 밤을 새워가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보는 국민 여러분까지 저에게는 한 분 한 분이너무나 소중합니다. 팬들의 따뜻한 성원이 제 등 뒤에 버티고 있지 않다면 그라운드 위에서 뛰고 부딪치며 겪는 모든 일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시대를 사로잡는 대스타는 실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전국민의 마음을 물들이는 그의 마음과 노력이 진실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결혼소식에 기뻐하고, 그의 어머니 사고에 슬퍼했던 것이다.
참고서적
<박지성, 멈추지 않는 도전>(박지성 저, 랜덤하우스 코리아) - 인용된 모든 문장의 출처
* 소개된 편지는 맥락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오늘의 편지 이야기
고통을 이겨낸 할아버지께
2017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청소년부/가족 <은상> 신원섭
따스한 햇살, 살랑이며 부는 봄바람 그리고 분홍빛을 띠며 활짝 핀 벚꽃들을 보니 이제 봄이 온 듯한 마음에 문득 항상 저를 아껴주시고 상냥한 미소로 반겨주시던 할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봄에 봄나들이 한 번 함께 가지 못하여 죄송한 마음만이 마음 한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작년 3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으시고 어느덧 1년하고도 한 달이나 더 지났네요. 그때는 저에게 있어서 많은 슬픔과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때 할아버지와 추억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한 것 같네요. 폐암에 걸리셨다는 것은 곧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다고 생각하여 방에서 혼자 울었고, 초기가 아닌 폐암 3기라는 말에 더 큰 슬픔과 함께 세상에 대해 울분했어요. 그 상황 속에서 저의 눈물을 멈추게 한 사람은 엄마, 아빠, 할머니가 아닌 할아버지셨습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웃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암 진단 후에도 이어졌고, 저의 슬픔을 줄이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일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있어서 가장 힘들었고 지쳤던 시기였을 것 같고, 할아버지 본인이 가장 힘드셨을 것 같은데 힘든 내색 하나 보이시지 않은 점,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께서 가끔 술을 마시시거나 담배를 피시는데 갑자기 끊으시기 힘드시겠지만 건강에 피해 끼칠 수도 있고 저번에 쓰러지신 일이 다시 벌어질 수도 있으니 술, 담배는 이제 완전히 안 하시면 좋겠어요. 그래야지 제가 커서 더 많은 것을 해드릴 수 있고, 저의 크나큰 목표인 카이스트 진학을 꼭 보셔야죠.
저도 대신 열심히 공부해서 꼭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항상 공부 잘한다고, 성실하다고, 착하다고 칭찬해주시는 만큼 저도 베풀겠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하여 첫 시험을 통해서 꼭 저의 약속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할아버지의 칭찬, 친절한 모습을 보면 꼭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마당에 식물 가꾸는 모습을 보면 식물을 사랑하시는 게 느껴질 정도로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고 공기도 깨끗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 제가 말씀드린 약속들 함께 지켜나가요. 할아버지,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 원섭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