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짝사랑
독일 출신의 대음악가로 우리 귀에 너무도 친숙한 이름 베토벤. 베토벤은흔히 모차르트와 비교되곤 하는데, 모차르트가 비교적 순탄한 음악의 길을걸었다면 베토벤은 그의 교향곡 제5번 <운명>이 대변하듯 고통과 투쟁의 연속이었다. 모차르트는 타고난 천재성으로 일찍부터 음악에 두각을 나타냈지만, 베토벤은 타고난 천재도 아니었고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것도 아니었다.
그가 음악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순전히 아버지 영향 때문이다. 아버지 요한은 폭음을 자주할 정도로 썩좋은아버지상은 아니었다. 요한은 아들을 모차르트처럼 유명하게 만든다면서 가혹할 정도로 훈련을 시켰다. 피아노 과제훈련을 끝내지 못하면 밥을 주지 않을 정도였다. 간혹 베토벤에게 찾아온 우울한절망, 뿌리깊은 반항심은 아마 이시기에 형성 되었던것은 아닐까? 청년 시절의 베토벤은 한때 하이든의 문하생이 되기도 하는 등 음악에 대한 노력을 계속했고, 점차 그의 명성이 알려질 무렵 자신의 귀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한다. 즉,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귓병은 갈수록 심해졌고, 30세가 되던해에는 심각할 정도로 악화되기에 이른다. 치료를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런 시기에 제자 인리스가 찾아오자 두사람은 산책에 나선다. 리스는 아름다운 주변의 풍광을 둘러보며 큰소리로 이렇게 찬탄한다. “베토벤 선생님, 지저귀는 새소리, 흐르는 시냇물소리, 목동의 피리소리… 아, 너무도 아름다운 소리들이 넘쳐요. 선생님, 이런소리 같은곡을 작곡해 보세요.”그러나 안타깝게도 베토벤은 아무소리도 듣지 못하고 있었다.
음악인에게 소리는 생명과 같은 것이기에 그가 느껴야 하는 절망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나의 음악은 끝났어. 동시에 내운명도 막을 내릴때가 오고 말았어.”이렇게 마음을 정리한 그는 유서를 쓰기에 이르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하이리겐슈타트의 유서’이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는지 살아났고, 다시태어난 그는 이전보다 더욱 왕성한 음악적 활동에 몰입한다. 그가 이시기에 작곡한 곡들은 아름다움을 동반한 강렬하고 장대한 작품으로 빛을보게 되니, 바로다음과같은 곡들이다. 크로이텔소나타, 제5 교향곡<운명>, 제6교향곡<전원>, 바이올린협주곡, 피아노 소나타<템페스트>, 오페라<페델리오> 등.
베토벤의 일생을 집필한 로맹 롤랑은 가히 이렇게 칭송했다. “이 시기에 작곡한 베토벤의 작품들을 보라. 걸작의 수풀이아닌가?”더불어 로맹 롤랑이 베토벤 전기의 서문에 쓴 다음과 같은 구절은 베토벤이 얼마나 위대하고 훌륭한 음악가였는지를능히짐작케한다. “만약 신이 인류에게 저지른 범죄가 있다면그것은 베토벤에게서 귀를 빼앗아 간 일이다.”
<엘리제를 위하여>
평생 단 한 차례도 결혼을 하지 않은 베토벤이지만 그렇다고 여성에게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몇몇 여성과 교류가 있었는데, 그는 뒤늦게 40세란 늦깎이 때에 강렬한 사랑을 느낀다. 베토벤의 가슴에 사랑의 열정이란 불을 지른 주인공은「테레제 마르파티」란 여인이었다. 아니, 어린 숙녀였다.
베토벤은 피아노 연주 제자인 그녀의 미모에 반해 틈만 나면 그녀 집을 방문했고 또 열렬한 사랑의 연서를 보냈다. 마르파티가 확실한 거절을 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으되, 베토벤은 그녀와의 결혼을 위해 본에서 세례 증명서까지 떼어왔으나 결혼은 성사 되지 못했다. 베토벤은 40세, 마르파티는 17세로 마치 아버지와 딸 같은 나이 차이는 마르파티 부모가 허락할 리 없는 철옹성이었고, 모르긴 해도 베토벤의 불안정한 경제적 여건도 여기에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짝사랑에 그치고 말았는데, 그가 마르파티에 대한 열정을 강하게 느끼던 때에 작곡한 곡이 있으니 너무도 유명한 <엘리제를 위하여>. 이 곡은 그의 사후에 발견된 피아노 소품으로 작은 론도 형식(반복되는 주제 사이에 다른 주제들이 들어가 있는 곡)의 애수를 띤 귀엽고 사랑스런 작품이다. 우리 귀에 친숙하고 지금도 피아노를 갓 배우기 시작하면 꼭 연주해 보는 곡이기도 하다.
피아노 소나타 <월광>
57년간의 독신생활 동안 그는 여러 여성들과 연정의 음악을 수놓았는데,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그의 사후에 수취인이 누군지 알 수 없는 불멸의 연인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3통이 발견되어 화제를 모았다. 아직도 불멸의 연인들이 누군지 밝혀지진 않았지만 연애편지를 간직한 것을 보면 나름대로 보낼 수 없는 속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베토벤의 가슴에 사랑의 오선지를 그린 여인들 중 그가 가장 정성들여 사랑이란 악보를 만들게 한 주인공은 단연 줄리에타였다. 베토벤이 30세, 줄리에타는 16세였고 처음엔 피아노 연주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다. 그러다 사랑이 싹트기에 이르렀지만 백작인 그녀의 아버지는 신분상 이유로 결사반대했고, 혹시라도 딸내미가 베토벤과 함께 야반도주라도 할까봐 서둘러 결혼시키고 말았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는 슬픔과 고통의 무게는 얼마나 크고 아플까? 바로 이러한 격정의 심리상태 하에서 만들어진 곡이 있으니 역시나 유명한 사연의 곡, 피아노 소나타 제14번 <월광>이 그것이다. 흔히‘월광곡’으로 알려진 이 피아노 작품은 오직 그녀 줄리에타에 대한 사랑의 점철과 이별의 아픔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승화시킨 연서일 것이다.
이 소나타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인 제1악장‘아다지오 소스테누토’에는 베토벤의 줄리에타를 향한 연정이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한다. 뒤이어 자기를 떠나버릴 것 같은 줄리에타에 대한 베토벤의 그리움이 호수 위에 비치는 달빛처럼 조용히 일렁인다.
그리고는 가슴에 피를 토하듯 무거운 불안감 속에서 사랑의 흔들림을 나타낸 셋잇단음표의 침묵처럼 조용한 흐름의 음률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