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퀴리의 치명적 사랑
폴란드 태생 프랑스 물리학자로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그 유명한 여성, 마리 퀴리. 방사능에 관한 연구로 그녀의 남편인 피에르 퀴리와 함께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데 이어, 1911년에는 단독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연구에만 전념할 것 같은 여성도 사랑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훗날 그녀의 치명적인 사랑은 이미 예견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리는 18세에 가정교사직을 얻었는데, 당시 그곳에서 불행한 연애 사건을 겪었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 생애에 아물지 않을 사랑의 상처를 제외하고 그녀는 너무도 위대한 과학자였으며, 그녀가 남긴 업적은 실로 대단하다. 플루토늄과 라듐의 발견은 질병 치료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핵물리학 연구를 크게 발전시켰으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는 몸소 총상을 입은 환자들을 치료하는 등 헌신적 봉사로 인간애를 실현하기도 했다. 마리는 언제 어디에서고 항상 연구하는 자세를 유지했는데 이는 그녀 자신의 열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편의 다음과 같은 당부가 있었기에 더 큰 빛을 볼 수 있었다“. 부인, 인류의 학문은 꾸준히 발전되어야 하오. 그러므로 학문을 연구하는 우리부부는 죽는 날까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학문을 계속해야 할 의무가 있소.”그러나 남편 피에르 퀴리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않아 안타깝게도 비오는 날 마차에 깔려 세상을 떠나고 만다.
위대한 여성 과학자이기 전에 그녀는 사랑에 목마른 한 인간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그녀는 사랑의 옹달샘을 찾아 가게 되는데, 문제는 상대가 유부남이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남편의 제자였다는 점은 그녀로선 지탄받을 수밖에 없는 위험한 사랑이었다. 마리는 남편의 제자이자 전자기장 연구로 유명한 유부남 동료 폴 랑주뱅과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이들은 프랑스 파리에 한적한 아파트를 마련해 놓고 남들의 시선을 피하면서 은밀한 밀회를 나누었다.
마리는 연구에 집착하듯 사랑의 대상인 폴에 미친 듯 집착했다. 단순한 사랑의 차원을 넘어 그를 영원히 소유하고 싶어 했으며, 이런 집착은 폴의 부인을 증오하는 마음으로 발전한다.
사랑에 빠지면 이렇듯 이성이 마비되는 것일까? 지성을 겸비한 위대한 여성 과학자로서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싶은 사랑의 갈구를 한 마리 퀴리. 그녀는 여러 차례 폴에게 사랑의 연서를 보냈는데, 다음의 편지를 통해 그녀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폴, 당신에 대한 그리움은 우리 앞에 놓여있는 모든 어려움을 물리치고 말 거예요. 당신 목소리를 다시 듣고, 당신의 아름다운 눈을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황홀하고 멋진 일이에요. 사랑해요, 폴.”
그러한 위험한 사랑은 그녀의 편지가 폴의 부인에게 발각되면서 만천하에 드러나고 만다. 1911년 11월 23일, <뢰브르>지에 마리가 폴에게 보낸 편지가 실리면서 그녀는 존경받는 대상에서 하루아침에 추락하는 새가 되고 만 것이다“. 폴란드인여성과학자, 프랑스인 가정을 파탄시키다.”프랑스 시민들은 폴란드 출신의 마리가 한 조용한 프랑스인 부부의 가정을 파탄시켰다면서 극렬히 비난했다. 나아가 노벨상 두 번째 후보로 지명된 것을 반대하는 운동까지 펼친다. 이에 마리는 큰 정신적 충격 속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게 되고, 폴은 국민 정서상 마리를 더 이상 찾지 않으며 가정으로 돌아가고 만다. 결국 마리는 두 번째로 노벨상을 수상했지만 프랑스인들은 이를 결코 환영하지 않았다. 마리 퀴리가 발견한 라듐.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을 내는 라듐 광선이 매혹적이고 치명적이듯, 그녀가 택한 사랑 역시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치명적인 위험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의 위험한 사랑이 노출되고 비난을 받았지만, 마리는 애써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낸다면서 스스로를 달래고 위로했다. 그러나 그녀 생의 끝은 아주 초라했다.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이 영웅적 여성의 장례식에 불과 채 열 명도 되지 않는 문상객이 찾은 것이다. 마리는 부적절한 사랑으로 자신의 인생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말았지만, 그녀는그런와중에도 이렇게 강변했다. '나는 폴을 사랑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아.”어쩌면 사랑을 하는 이로서 합당한 논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남긴 어록 중에 다음의 대목을 보면 그녀 역시 이중적 잣대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과연 그녀가 그런 사실을 알긴 알았던걸까?“ 우리는꿈과희망, 이상과 같은 것들을 찾아야한다. 정신적인 힘은 우리를 오만하게 하는일 없이 삶의 가치를 드높인다. 삶의 참다운 의미를 연애 같은 격렬하고 자극적인 데서 찾는 것은 환멸을 부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