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라르와 옐로이즈
지고지순하면서도 애절하고 안타까운 사랑의 표본이라면 어떤사랑일까?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하고 많은 그 절절하고 애틋한—목숨까지 거침없이 내던졌던 사랑들은 참으로 많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흔히 애끓는 비극적인 사랑으로 막을 내린 연인하면 <로미오와 줄리엣>을 꼽는다. 그러나 그들은 셰익스피어가 만들어 낸 소설 속의 인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존재한 사랑 중에 그 주인공 남녀를 찾으라면 누구를 들 수 있을까? 비록 애틋하고 숭고한 사랑과는 그 궤를 약간 달리하지만 사랑이란 이름으로 뜨겁고 열정적인, 그러면서도 못 다 이룬 사랑의 회한에 찬 연인이라면 단연 이들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아벨라르와 옐로이즈!
아벨라르는 12세기 당시 프랑스의 대표적 신학자인 지성인이었으며, 옐로이즈는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참사 회원인 퓔베르의조카딸로 뛰어난 미모에 지성미를 갖춘 여인이었다. 아벨라르에게 관심을 가진 옐로이즈는 그녀의 삼촌이자 후견인인 퓔베르에게 개인교수를 제의했고, 퓔베르는 그의 성품을 존경한 터라 두 말 없이 허락했다. 그러나 어찌 짐작이나 했을까? 이로 인해 엄청난사랑의 대사건이 빚어지고 만 것을….
아벨라르는 옐로이즈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 개인교사와 제자라는 제약을 뛰어 넘고 또 열아홉 살이란 나이의 장벽을 가로지르면서 활화산 같은 사랑에 휩싸이고 만다. 당대의 평판이 자자한 아벨라르는 한 순간에 옐로이즈에게 빠지면서 그는 온통 옐로이즈의 사랑을 갈구하는 사내로 변모해 가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사랑은 지고지순함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이는 훗날 그가 고백한 내용에서도 뚜렷이드러난다“. 그녀의 공부는 우리에게 은밀한사랑을 나눌 하늘이 준 기회였다. 눈앞에 책을 펼쳐도 책의 내용보다는 사랑의 말을 쏟아내기에 바빴고, 가르침보다는 키스가 더 절실했다. …(중략)… 시간이 흐르면서 열정의 폭풍우에 휘말린 우리는 책을 멀리하는 대신 서로의 사랑을 탐했다.”
아벨라르가 일개 필부에 지나지 않았다면 보통 연인 사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나 그는 프랑스인들이 존경하는 지성인이었다. 때문에 그의 일탈, 나아가 두 사람의 스캔들은 프랑스 전역으로 소문이 꼬리를 물면서 파장을 일으키고 만 것이다. 이에 퓔베르는 옐로이즈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아벨라르에게 더 이상 만나지 말 것을 협박하지만 그들이 들어간 사랑의 늪은 너무 깊기만 했다. 급기야 옐로이즈가 임신을 하기에 이르고, 야밤에 아벨라르는 옐로이즈를 자신의 고향으로 보낸다. 옐로이즈는 출산을 하기에 이르는데,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연인들의 사랑이 뜨거운 때문이기도 했지만 퓔베르의 분노를 피하고 그동안 학자로서 쌓아온 자신의 명성을 조금이나마 지켜보
고자하는 슬픈 욕망 때문이었다.
아벨라르는 결혼을 원했지만 옐로이즈는 반대했다. 더 없이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결혼으로 인해 아벨라르에게 비난이 쏟아질까 우려했던 것이다. 당시 그녀의 이런 심정은 아벨라르에게 띄운 연서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아벨라르. 당신은 결혼보다 사랑을 원하고 속박보다 자유를 원하는 저의 주장을 잠재우기 위해 설득하시지만 오, 아벨라르. 하느님께 증언컨대 설령 세계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저와 결혼하기를 바라고 저에게 온 세상을 다 준다 해도 전 그의 황후가 되어 세상을 다 소유하기보다는 당신의 여자가 되는 편이 더 소중하고 영광스러울 거예요. 이런 제 마음을 아시겠어요? 아벨라르.”
그러나 아벨라르는 옐로이즈와 파리에서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린다. 이어 아벨라르는 옐로이즈를 파리 근교의 한 수녀원에 은거시킨다. 아벨라르로선 사태의 추이를 지켜봐가면서 잠시 맡겨 둘 의향이었지만 이를 알게 된 퓔베르는 이를 갈면서 복수를 감행한다. 어느 날 밤, 퓔베르의 사주를 받은 괴한(오늘날의 살인 청부업자)들이 자고 있던 아벨라르의 집을 급습하기에 이르고, 정적이 흐르는 한밤중에 외마디 비명이 이어지면서 아벨라르는 어쩌면 목숨보다 귀할지도 모를 그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 남성을 거세당하면서 아벨라르가 짊어져야 했던 고통의 무게는 살아있으되 죽은 목숨이요, 남성이지만 남성의 값어치를 할 수 없는 초라하고 비참한 사내의 처연한 몸부림이었다.
이 소식이 퍼지자 파리는 온통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들었으며, 아벨라르의 제자들과 그를 따르는 여성 추종자들은 그의 집 앞에 몰려와 울부짖었고 일부는 혼절하기도 했다. 당시 이 현장을 지켜 본 이는 이렇게 표현했었다.“ 모든 여인들이 울부짖고 실신하는, 마치 전투에서 남편을 잃은 것처럼 망연자실하고 슬픔에 찬 표정 들이었다.”
이렇게 해서 12세기 최대의 스캔들은 조용히 막을 내린다. 그럼 이후 이들의 운명과 사랑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성과 욕망 사이에서 빚어진 비극적인 사랑이 막을 내리면서 이들은 각각 수도원과 수녀원에 몸을 의탁하며 하루하루를 넘긴다. 그들에게 이 하루는 억겁의 고통을 수반한 길고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비극은 비록 육체적 사랑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그 한편으로 두 사람은 연서를 주고받으면서 서로에 대한 갈망과 사랑을 잘 갈무리해 나간다. 어쩌면 편지를 주고받은 그 사랑이야말로 육체를 뛰어넘은 아름답고도 숭고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아벨라르는 그동안 자신이 쾌락적 사랑을 추구했던 점을 반성하면서 신(神)에게 귀의할 것을 옐로이즈에게 당부했다. 옐로이즈는 과거의 사랑이 다시 찾아오길 간절히 원한다는 내용을 담으면서도, 비록 떨어져 있지만 항상 당신을 사랑했던 마음만큼은 평생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연서를 띄운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수도원과 수녀원에서 살게 되고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다.
뉴욕타임스는‘천 년의 인물’에 옐로이즈를 선정할 만큼 그녀의 사랑과 정신의 가치를 높게 여긴다. 그래서 훗날 그들에게 붙여진 수식어가 있었으니 바로 이것이다.‘ 당대의 외면과 후세의 찬양, 모든 연인의 부러움을 받은 전설적 연인! ’
왜 이런 수식어가 붙게 된 것일까? 아벨라르가 세상을 뜨자 옐로이즈는 이제 수녀원장이 돼서 그의 시신을 수녀원 뒷산에 고이 묻는다. 그리고는 그녀가 생의 마지막을 고하는 날까지 30년 동안 그의 무덤을 지켰던 것이다. 아니 영혼의 대화, 둘 만의 무한대적인 자유로운 사랑을 그 속에서 꽃피워낸 것이다.
프랑스 파리 동쪽의 페르라셰즈 공동묘지에 들어서면 특이한 남녀 석상을 만날 수가 있다. 석상은 평온한 표정으로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인데, 바로 이 석상의 주인공들이 아벨라르와 옐로이즈다. 지금도 유럽의 수많은 커플들은 이곳에 들러 그들의 사랑에 탄복하며 서로에 대한 오직 일치된 사랑만큼은 닮자는 다짐을 하곤 한다.
욕망과 지성 사이에 점철된 비극의 사랑. 그러나 비극 이후에 아름답게 승화된 사랑의 주인공 아벨라르와 옐로이즈! 이제는 세상의 눈치 볼 필요 없이 둘 만의 사랑을 나눌 수 있으니 오히려 하늘나라에 있는 지금이 더 행복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