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성냥팔이 소녀> <미운 오리새끼> <벌거숭이 임금님> <인어공주> <눈의 여왕> <엄지공주> <장난감 병정>… 어린 시절 재미있게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던 동화들이다.
수많은 동화작가들 중에서도 가히 최고라 칭해도 과언이 아닐 어린이의 영원한 벗, 영원한 우상인 동화작가 안데르센! 안데르센은 1805년 덴마크 코펜하겐 근처 오덴센에서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했지만 안데르센의 어린 시절은 그런대로 행복했다. 아버지는 틈만 나면 아들에게 <아라비안나이트>를 읽어 줬으며 어머니의 사랑도 극진했다.
그러나 그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처럼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다 사망하고 만 것이다. 가장이 된 어머니는 세탁일로 간신히 생계를 이어갔으며, 그가 하는 일이라곤 집에서 온갖 상상을 하는 일뿐이었다.
더 이상 그런 생활을 견디지 못한 안데르센은 14세 때, 결국 가출하기에 이르고 이후 그는 코펜하겐 국립극장의 무용과 음악연수 학생으로 들어갔다. 일찍부터 상상을 가슴에 안고 살아온 때문이었을까? 그는 나이에 비해 정신연령이 성숙했으며 이성에 대한 사랑 또한 일찍부터 눈을 떴다.
이 시절 안데르센은 동급생 친구의 누나인「보이보이쿳」이란 여성을 사랑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 사랑은 혼자만의 슬픈 짝사랑이었다. 쿳에게는 약사인 약혼자가 있는데다 안데르센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안데르센은 굴하지 않고 사랑을 고백하는데 단번에 퇴짜를 맞는 실연을 겪는다. 얼마 후 쿳은 약혼자와 결혼하기에 이르고, 그녀로부터 받은 실연은 그에게 큰 상처를 남겼으며 그는 그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유명해져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 꿈을 이루는 길은 무대에 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외모, 연기력, 집안 배경 등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없기에 무대에 서지 못하고 급기야 마땅히 오갈 곳도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만다.
이때 그를 구해준 은인이 있었으니 왕실고문관 콜린이었다. 콜린은 안데르센을 불쌍히 여겨 라틴어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안데르센은 콜린의 집을 자주 방문했는데, 사실 그의 관심은 콜린이 아니라 그의 딸 루이제 콜린이었다. 그녀는 그의 마음을 단번에 흔들어버릴 정도의 미모를 지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에게 친절했던 것이다.
대개의경우, 이성이 친절하게 대해 주면 곧 잘 착각을 하게된다‘. 음, 나에게 관심이 있나 보구나. 아, 나를 좋아하나 보구나’당시 안데르센은 이런 확신에 찬 착각이 들었다. 루이제는 안데르센이 단지 가엾게 여겨져 보인 친절이었건만 그는 이를 사랑으로 착각해 수시로 시 구절이 담긴 편지를 보내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안데르센은 동화작가로서의 재능을 보이기전에 이미 시(詩)에 대한 영감이나 감흥이 무척 뛰어났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토록 많은 편지를 보냈지만 그녀로부터 답장 한 번 받아 보질 못했고 그녀의 반응 또한 시큰둥했다. 그는 너무도 애가 닳고 가슴이 아픈 나머지 자신의 일대기 같은 자서전 형식의 길고도 긴 연애편지를 띄우기에 이른다. 그리고는 편지 말미에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뜨겁고 한결같은지를 세세히 담아 자신의 사랑을 이루어 달라고 눈물겹도록 부탁했다.
안데르센은 외모가 볼품이 없고 가난한데다 소심했지만 연애편지에서 만큼은 이 모두를 초월한 뜨거운 열정을 내뿜었다‘.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없다’는 말을 뒷받침하듯 그의 그런 열정에 마침내 오매불망 기다리던 답장을 받았다. 그는 편지 겉봉에 입을 맞추면서 환희에 들떠 감히 열어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행복한 상상 속 나래를 펴던 그는 마침내 편지를 개봉하기에 이르는데 아, 그 편지는 결코 받아서는 안 될, 차라리 받지 않을 때가 훨씬 행복했었다는 한탄만을 남기고 말았으니 바로 이런 내용이었다.
“안데르센. 왜 그렇게 눈치가 없으세요. 당신이 보낸 모든 편지는 결혼한 언니가 심심풀이로 모두 읽고 있으며 나는 단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으니 제발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마세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본 편지였다. 그의 상심이 얼마나 컸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이다. 안데르센은 루이제의 결혼식에 참석해 달라는 콜린의 초대장을 받았다. 그는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로 고민하다가 마침내 이렇게 결정을 내리고 만다.
‘나를 버린 여자의 결혼식에는 절대 갈 수 없다.’
이 실연은 그의 동화 속에 녹아 있는데 그 작품이 바로 <인어공주>이다. 안데르센의 동화들은 자신의 실연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 그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자신의 사랑을 글 속에 담아 미련으로 남기거나 복수하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장난감 병정>의 경우. 이 작품은 당시 안데르센이 상류층 아가씨인「소피」를 사랑했을 때 쓴 이야기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외다리병정은 안데르센이고 춤추는 무희는 소피로서 안데르센은 이렇게 자신의 사랑, 엄밀한 의미에서의 실연을 이야기에 담은 것이다.
이후 안데르센은 실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랑은 하되 감히 그 사랑의 대상에게 먼저 프러포즈를 하지 못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그는 동화작가로서 명성이 자자했으면서도 당시 사랑했던 여인「예니 린드」에게 결코 고백하지 못한다.
이 시기에 나온 작품이 바로 <미운 오리새끼>였다. 이 책에서 그가 강조하고자 한 말, 어쩌면 세상의 모든 여성 특히 자신이 사랑한 여성들을 향해 이렇게 부르짖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못생긴아기 오리였지만 보라, 지금은 성공해서 백조가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결국 사랑했던 여인 예니 린드도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그의 곁을 떠나 버리고 그는 또 홀로 남겨진 채 다른 사랑을 찾아 방랑의 길에 나선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러 이렇게 단정한다“. 안데르센이 결혼했다면 아마 그의 주옥 같은 동화작품은 존재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안데르센 개인적으로는 작가로서는 성공했지만 사랑에는 실패한 인생이었던 셈이다. 일생 동안 그는 160여 편에 달하는 많은 동화 작품을 남기면서 아동문학의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떨쳤지만 그의 생애는 결코 동화스럽지 못한 불행과 고독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그는 항상 사랑을 꿈꾸며 사랑을 찾아 나섰다. 그는 오랜 기간에 걸쳐‘스웨덴의 나이팅게일’이라 불렸던 리더와의 우정과 사랑을 이어왔다. 그러나 끝내 이 여인도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떠나고 말았다. 안데르센은 실연을 당할 때마다 그 허기진 마음을 달래고자 여행을 즐겨 했는데 평생 29회의 외국 여행을 한 걸 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실연을 당했는지 알 수 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다가 70세 때 코펜하겐에서 간암으로 세상을 뜨고 만 사랑의 실패자 안데르센. 당시 그가 세상을 뜨자 황태자에서 부터 덴마크의 남녀노소 모두가 슬퍼하면서 그를 위로했는데 정말로 그가 원한 것은 자신이 사랑했던 한 여인의 눈물은 아니었을까?
안데르센의 동화를 보면 <성냥팔이 소녀> 등 꼭 누구 하나는 죽는 설정으로 돼 있으면서 슬픈 결말을 맺는다. 슬픔이 크면 클수록 여운은 더욱 짙게 드리워지고 길게 남는 것처럼 그의 실연은 동화가 되어 세월이 흐르고 또 흐른 오늘날에도 여운이 되어 우리곁을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