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살이의 어려움을 노래한 민요들을 보면 조선 시대의 유교사회에서도 고부간의 갈등이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집살이 개집 살이
앞 밭에는 당초(唐椒) 심고
뒷밭에는 고추 심어
고추 당초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맵 더라’
또한 “시아버지 호랑 새요 시어머니 꾸중 새요/동세 하나 할림새요 시누 하나 뽀죡새요”라고 하면서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힘든 시집살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비극적인 상황으로 치닫는 경우도 있었다.
극단적인 며느리
조선 후기 경상도 거창에서 있었던 일이다. 박대 악지라는 여인이 시집간지 석 달만에 시어머니의 구박과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소나무에 목을 맨 사건이 있었다. 십 대 중반의 어린 며느리는 평소 남편의 무관심과 시부모의 구박에 삶의 의욕을 잃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시어머니가 손찌검을 하자 이를 참지 못하고 목을 맨 것이다.
당시의 검시 결과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소위 김조이는 마을에서는 무식한 여인으로 그 며느리를 박대하여 참을 수 없게 했으며 종종 실로 절통한 바 있어 며느리를 본 지 3개월도 되기 전에 매사를 책망하고 꾸짖으니, 이는 인정상으로는 할 수 없는 바이다. 27일에 서로 다툴 때에도 분을 못 이겨 구타하여 며느리가 나가서 통곡하게 한 그 요망하고 나쁜 정상은 불문가지다.’ 이 사건으로 시부모는 관의 처벌을 받았다. 특히 시아버지 박상문은 가장으로서 집안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며느리가 자살하는 지경에 이르게 했다는 이유로 벌을 받게 되는데, 이는 우리가 눈여겨볼만한 대목이다. 고부간의 갈등에서 대개 남성은 방관하거나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보듯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시아버지 나남 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그 역할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갈등이 쉽게 해결될 수도 있고, 반대 로더 악화될 수도 있다.
그리고 검시 결과 문안에는 며느리 박대 악지에게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즉, 분을 참지 못하고 나가서 목을 매고 죽은 것은 며느리의 행동으로서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물론 시어머니의 잘못이 크지만 며느리가 지나치게 극단적인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꾀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요즘도 이와 유사한 경우를 볼 수 있는데, 극과 극으로 치달리다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대체로 어떤 문제의 원인을 상대방에게서 찾으려는 경향이 많다. 나의 잘못은 아예 거론도 하지 않고, 무조건 상대방의 문제를 잔뜩 부풀려 거기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 집착은 결국 자신을 눈뜬장님이 되게 하고, 대립과 갈등만을 고조시킨다. 그러므로 보는 관점을 다양화할 때 생각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괴팍한 시어머니
어느 고을에 성격이 아주 괴팍한 시어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이유 없이 며느리를 욕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괴롭혔다. 결국 시어머니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제 발로 걸어나간 며느리가 셋이나 되었다. 그런데 세 번째 며느리가 집을 나간 뒤 스스로 그 집의 며느리가 되겠다고 찾아온 처녀가 있었다. 그러나 새 며느리 의지 극한 정성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의 태도는 이전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하루는 시어머니와 단둘이 집에 있게 되었다. 며느리는 조용히 방안으로 들어가서 시어머니의 팔을 잡아 비틀었다. 갑작스러운 며느리의 행동에 시어머니는 질겁하고 소리쳤다.
“아이고, 이년이나 죽이네!”
저녁 무렵 아들과 딸들이 돌아오자 시어머니는 통곡을 하며 낮에 있었던 일을 다 말하였다. 그러나 자식들은 그 말을 믿지 않고, 어머니가 또 며느리를 쫓아내려고 꾸며낸 말이라고 생각하였다. 잔뜩 화가 난시 어머니는 그날부터 더욱더 혹독하게 며느리를 구박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며느리는 아무도 없는 우물가에서 또 시어머니의 팔을 잡아 비틀었다.
“어머니, 같은 여자로서 정말 너무하세요.”
그날도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당한 일을 낱낱이 자식들에게 말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자식들은 웃기만 할 뿐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어머니, 거짓말 좀 그만하세요. 세상천지에 어느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팔을 꺾겠어요. 제 집사람이 마음에 차지 않으시더라도 좀 감싸주고 이해해 주세요.”
“아이고, 저 놈이 계집 하나 잘못 만나더니, 제 어미 말은 믿지도 않는구나. 아이고, 내 팔자야!”
시어머니는 그날로 울화병이 생겨 자리에 누웠다.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지 않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혼자 끙끙 앓았다.
이레째 되는 날 며느리는 살며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초췌해진 시어머니는 병자처럼 머리를 산발하고 자리에 누워 있었다. 개진 개진한 눈가에서는 눈물이 가늘게 흐르고 있었다.
“어머니, 이제 제 뜻을 아시겠어요?”
“오냐. 내가 그동안 너에게 잘못했다. 누워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잘못이 너무 크구나. 오죽했으면 네가 그렇게까지…”
그 후로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남이 부러워할 만큼 다정한 고부간이 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이처럼 관점의 변화는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가져온다. 몽매 한우리는 눈앞의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어둡고 오랜 갈등의 시간을 거친 후에 야비로 소한 줄기 맑은 햇살을 만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