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옛 어머니들은 걸인이 동냥하러 오면 바가지에 쌀이나 보리쌀을 담아서 자식이 직접 걸인에게
건네주도록 하였다. 이것은 자식이 남에게 베푸는 것을 은연중에 배우게 하는 산교육이었다.
자식을 망치는 지름길
조경(趙絅)이 어느 재상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한 나이 든 음관(蔭官)이 먼저 와서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재상이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손자를 너무 귀여워한 끝에 아이에게 늙은 음관을 희롱하고 욕하게 하였다.
조경은 속으로 혀를 차며 말하였다.
“어린 아이라 아직 심기(心氣)가 정해지지 않아 매로 쳐서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라 하여도 그 가르침을 제대로 받들지 못할 텐데 오히려 어른을 모욕하라고 가르치니, 이아이 가장 차형이나 아버지에게 악덕을 범하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소.”
조경의 탄식에 재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이 일화에서 보듯 어른의 그릇된 가르침이 아이의 생각과 자세를 비뚤어지게 한다. 자녀에게 바른 심성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바른 삶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요즘도 공공의 자리에서 아이가 버릇없이 굴어도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며 그냥 웃고만 있는 경우를 본다. 따끔하게 야단을쳐서잘못된행동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자녀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자녀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부모 의무 지나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는 자식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부모의 책임을 돈으로 적당히 해결하는 것도 큰 잘못이다. 타일러서 설득하지 않고 아이들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는 것은 부모로서의 책임 회피이다. 기다릴 줄 도자 제할 줄도 모르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이러한 부모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옛 어머니들은 걸인이 동냥하러 오면 바가지에 쌀이 나보리 쌀을 담아서 자식이 직접 걸인에게 건네주도록 하였다. 이것은 자식이 남에게 베푸는 것을 은연중에 배우게 하는 산교육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아이들은 이러한 인성 교육보다 개인의 목표 달성과 이익에만 관심을 갖도록 내몰리고 있다. 무 조건남 보 다우 위에 서야 한다는 부모의 이기적인 욕심이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바른 심성과 가치관
조현명(趙賢命) 은정승으로 있을 때에 상처(喪妻)를 하였다. 상을 당하자 여러 사람들이 돈과 물건으로 부조하였다. 장례를 끝냈을 때에 집안일을 돌보던 사람이 조현명에게 조용히 말하였다.
“부의로 들어온 돈으로 땅을 사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큰 아드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조현명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혼자 앉아서 술을 마셨다. 술을서너병비우고얼근해지자 그는 아들들을 모두 불러놓고 호통을 쳤다.
“못난 것들! 어미의 상을 치른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거늘 부의 들어온 재물을 가지고 땅을 사려고 하니 부모의 상(喪)을 마치 큰 이익으로 알고 있구나.”
조현명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자식들을 불러 차례대로 매를 쳤다. 그리고 아들들에게 엄히 말하였다.
“잘 듣거라. 이번에 부의로 들어온 모든 재물들은 빈궁한 친척과 가난한 이웃들에게 남김없이 나누어주도록 하여라.”
정승 조현명의 자식에 대한 바른 가르침은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된다. 이 일화는 자녀들에게 바른 심성과 가치관을 갖게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자녀가 건전한 시민 의식과 올바른 삶의 자세를 갖도록 하는 것은 부모의 막중한 책무이다.
자식을 가르치는 도리
유학자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내 친구 한 사람은 자기 자식을 지나치게 사랑하여 자식에게 방종하고 게으른 행동이 있어도 알지 못하더라. 그러면서도 항상 남에게 자식 자랑을하고심할 때는 자식 앞에서도 칭찬하기를 꺼리지 않더구나. 그러자 그 의자 식은 아버지의 사랑만 믿고 꺼리는 것이 없게 되어 갈수록 방종하고 게으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격히 타이르거나 말리지 않고 오히려 감싸고 보호하여 그런 버릇을 키워주는 것이었다.’
이 편지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식에 대한 사랑과 교육은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 잘못된 행동을 보고도 오히려 자식을 두둔하고 감싸는 것은 부모로서 크게 경계해야 될 일이다. 자식이 올바른 품성과 덕성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냉정하게 시비(是非)를 살피고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갖게 해야 될 것이다.
우암(尤庵) 송시열은 출가하는 딸에게 시댁에 가서 처신해야 할 규범을 한글로 써서 주었다. 그 글에는 자식을 가르치는 도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어려서 가르치지 못하여 늦게서야 가르치려 하면 되지 않으며, 일찍 가르쳐야 집안을 보존하고 내 몸에 욕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 요즈음의 많은 부모들이 간과하기 쉬운 것이 바로 이점이다. 나이가 들고 성장하면 스스로 알아서 바른 행동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큰 잘못이다. 처음 자랄 때부터 비뚤어졌던 나무가 나중에 곧게 자랄 가능성이 많지 않다는 점, 우리가 모두 가슴에 새겨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