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도와 하늘을 감복시킨 소녀 이야기
어느 고을에 마음씨 착한 부부가 오래도록 자식이 없이 살다가 어렵사리 예쁜 딸을 얻어 이름을‘콩쥐’라고 지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콩쥐의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다가 콩쥐가 백일도 되지 않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래서 콩쥐가 자라 열 살이 되었을 무렵, 새어머니가 생겼는데 새어머니는‘팥쥐’라는 딸을 데리고 왔다. 팥쥐 모녀는 마음이 고약하고 심술이 사나워서 아버지가 집에 없을 때는 콩쥐를 더할 수 없이 구박하고 미워하며 온갖 힘든 일을 골라 시켰다.
하루는 콩쥐에겐 나무 호미를 주면서 자갈밭을 매라 하고, 팥쥐에겐 쇠 호미를 주면서 모래밭을 매라고 하였다. 콩쥐의 나무 호미는 비탈 자갈밭을 한 이랑도 매기 전에 부러져버렸고 이때 어디선가 황소 한 마리가 나타나 그 자갈밭을 깨끗하게 갈아주고는 쇠 호미까지 주고 사라졌다.
오월 단오에 밖에 나가 동무들과 그네를 뛰고 싶어 하는 콩쥐에게 독에 물을 가득 길어놓고 나가라고 하였다. 하지만 구멍 뚫린 독을 주고 물을 채우라고 하였으니 물이 채워질 리가 없었다. 어쩔 줄 모르는 콩쥐 앞에 커다란 두꺼비 한 마리가 나타나 그 뚫린 독의 구멍을 막아주었다. 또 신임 감사(監司)가 부임하여 온 마을에 잔치가 벌어지던 날, 콩쥐는 그 잔치마당에 가고 싶었으나 새어머니가 벼 석 섬을 찧어놓고 베 한 필을 짜놓고 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참새 떼가 날아와 모두 찧어주고 아리따운 선녀가 나타나 베 한 필을 짜주었다. 그리고는 마음씨 착한 콩쥐에게 비단 옷 한 벌과 꽃신 한 켤레를 주면서 갈아입고 가라 하였다.
헌데 콩쥐는 감사의 행차 일행과 마주쳐 길을 피하다가 그만 신 한 짝을 잃어버린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감사는 신발의 임자를 찾아오라 일렀는데, 콩쥐의 집에까지 이르러 결국 신발의 임자가 콩쥐임을 알게 되었다.
콩쥐는 감사와 혼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팥쥐의 흉계에 넘어가 연못에 빠져 죽게 되고 팥쥐가 죽은 콩쥐 행세를 하게 된다. 그 뒤 연꽃으로 피어난 콩쥐가 계속 팥쥐를 괴롭히다가 마침내 감사 앞에 나타나 자초지종을 고하게 된다. 감사가 연못의 물을 파내 콩쥐의 시신을 건져내니 도로 살아났다. 감사는 팥쥐를 처단하여 새어머니 배씨에게 보냈고, 이를 받아본 새어머니는 놀라서 그 자리에서 죽었다.
감성 자산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성은 딱딱하고 감성은 부드럽다. 이성은 차갑지만 감성은 따뜻하다. 감성적 자산이 풍부한 사람은 타인과 나눌 줄 알고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람과의 유대를 통해 일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즐긴다. 콩쥐가 신임 감사와 혼인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콩쥐의 미모때문이 아니라 가족의 화목을 바라는 마음과 어른에 대한 공경 같은 이타적인 감수성 등을 두루 볼 줄 알았던 신임 감사의 안목 때문일 수도 있다. 감성적인 자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 정확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끊임없는 노력과 성찰을 통해 자신을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남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깎아내고 자기 합리화를 최대한 경계해야 한다. 나도 실수할 수 있으며 나도 부족한 점이 많아서 늘 노력해야 한다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 감성이 가지는 최고의 강점인‘인간미’를 갖는 길이다.
그러면 이후 타인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바뀔 수 있다. 나에 대한 생각이 그대로 타인의 삶에도 투영될 때 타인에 대한 시각이 한결 너그러워질 수 있다. 다른 사람도 실수할 수 있고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다. 내 자신에게 갖는 관심의 반을 뚝 덜어서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인간적인 공감이 형성되어 즐거움과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된다. 이성이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감성은 가슴으로 받아들이는것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이성적인 면보다 인간적인 면에 매료 될 때 그 사람의 인상은 더 오래 남는다.
공감 능력을 키우자
좋은 학교 졸업과 우수한 입사 성적으로 신입사원 때부터 주목을 받고 승진도 빨랐으나 중간관리자가 되면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부하직원의 자발적인 협력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부족하여 불만을 사는 사람이 있다. 혼자서 하는 실무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기 때문에 말단 직원이었을 때는 오히려 능력이 두드러져 보였지만, 여러 사람의 의견을 통합하고 조율하고 협력을 이끌어내는 일에 이상하리만큼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문제를 드러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혼자는 잘 하는데‘같이’‘함께’하는 일에 서툰 사람, 개별적인 업무에서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데 정작 리더십이 필요할 때 힘을 못 쓰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문제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아주 우스운 이야기를 듣고 좌중의 사람들이 모두 배꼽을 잡고 웃는다고 해도 왜 우스운지 모르겠다는 투로 심드렁하기도 하고,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납득이 가는 일에 대해서만 공감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혼자 즐기는 일에 익숙하고 혼자 노는 것이 편하고 좋다 할지라도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 안에서 웃을 일도 많고 나와 다른 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공감하는 감성의 훈련을 저절로 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는 권위주의로 이끌던 시대와 결별을 고하는 시대다.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공동에게 필요한 이익을 창출해내는 창조적인 자질이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감성의 계발이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다. 부드러움과 따뜻함, 배려와 이해라는 비권위주의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조직의 변화, 개인의 변화, 조직의 성공, 개인의 성공을 두루 아우르자. 센 바람이 나그네의 코트를 벗기려고 하였지만 결국 따뜻한 해님이 나그네의 코트를 가볍게 벗겼다. 해님의 따뜻함은 결국 감성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