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탤지어 이펙트Nostalgia Effect 과거에 대한 그리움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17세기 스위스 용병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불안감, 불면증, 식욕감퇴 등의 증상에 약해져 갔다. 당시 군의관은 이를 나약하게 여겨 ‘노스탤지어Nostalgia’(향수鄕愁)로 정의내리고 20세기가 될 때까지 이는 정신질환이자 대단히 비정상적인 상태로 간주되어졌다. 다행히(!) 오늘날 노스탤지어는 인간이 가진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자 얼마든지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2013년, 영국의 사우스햄튼 대학에서 진행한 심리학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기억을 머릿속에 떠올린 후 종이에 적는다. 다른 비교집단은 그냥 평범한 기억을 적어낸다. 그 결과, 그리운 과거를 생각했던 참가자가 평범한 기억을 적어낸 집단보다 낙관적 표현을 더 많이 사용했다. 기억만이 그럴까?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노래와 평범한 노래를 들려줘봤다. 그리움이 깃든 기사와 평범한 기사를 읽게했다. 그랬더니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딩동댕. 그리움이 깃든 노래와 기사를 접한 집단이 훨씬 긍정성이 높았다! 와일드슈츠 박사는 “노스탤지어는 자존감을 높여 결국 긍정성을 향상시켰다. (중략) 과거에 대한 기억은 자기 가치에 대한 현재 감정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미래를 밝게 전망할 수 있게 기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우리의 노스탤지어는 사실 긍정적 기운의 좋은 묘약인 것이다!
illustration 이정윤
‘퀸망진창’의 난리법석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이 750만을 훌쩍 넘어, 천만 관객을 향해가는 눈치다. 이게 안 본 사람이 없을 지경의 느낌인데 그냥 누구 한 명이 발만 굴러도 ‘위윌위윌 락휴!!’ 하면서 노래를 따라부르고, ‘퀸’ 하면 떠오르는게 더이상 여왕이 아니라 ‘록 밴드Rock Band?’를 떠올린다. 온 국민이 열광하는 가운데 퀸망진창(퀸과 엉망진창의 합성어, 퀸 신드롬을 표현하는 유행어) 하면서 일상이 엉망진창이 된 ‘행복한’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벌써 몇 번째 봤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 노래를 따라불러도 되는 싱얼롱Sing Along 상영관에 탬버린을 가져가 ‘떼창(떼로 노래를 합창하여 부른다는 용어)’에 목이 쉬고, 그냥 평범한 영화티켓이 아닌 그들의 모습이 담긴 영화 값에 천 원을 보탠 포토티켓을 만들어 간직한다. 2018년 12월 멜론 하드록 차트는 1위부터 50위까지 단 한곡을 제외하고 퀸의 노래가 독식했고, KBS는 ‘프레디 머큐리, 퀸의 제왕’이란 해외 다큐멘터리를, MBC는 ‘MBC 스페셜 내 심장을 할퀸QUEEN’을 방영하기도 했다. 이뿐이랴, 팬이라면 모름지기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과 그들의 철학을 알고 싶은 법! 서점가도 퀸망진창이다. 밴드 퀸과 프론트맨 프레디 머큐리 관련 서적 판매가 적게는 10배, 많게는 30배까지 급증하고 있다. 더불어 나도 그때의 그 록 밴드 그 열정을 느끼고 싶다! 그럼 기타를 사겠다! 종로의 유명 악기상가 낙원상가의 박 점장은 “개봉 후 일렉트릭 기타는 3배는 더 팔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악기 사이트의 밴드 구인란에는 ‘퀸의 노래를 함께 연주할 밴드원을 찾는다’ 등의 게시물이 줄을 잇는다. 늘어나는 악기 구매에 기타 교습소도 호황을 맞고 있다. 그런데 이게 과연 퀸의 전성기 1970~1980년대 젊은 시절을 보냈던 중장년층만의 일일까. 그때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1020 세대 역시도 퀸망진창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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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로New+Retro, 과거를 재해석하고 새로움을 더하다
오늘날 1020 세대에게 새로운 것은 무엇일까. 노스탤지어는 원래 그 과거를 경험했던 사람들만을 지칭하는 것이었는데, 정보가 넘쳐흐르고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오늘날 젊은이들은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그 낭만성에 매료되고, 그 새로움에 열광한다. 게다가 기술에 대한 이해가 높고 SNS를 통해 생각과 일상 모두를 공유하는 것이 당연한 1020 세대에게 뭔가 새로우면서 익숙한 퀸은 너무나 매력적인 존재인 것이다. 이렇듯 4050 기존 세대가 느끼는 노스탤지어와 1020 젊은 세대가 느끼는 새로움이 합쳐져 과거의 콘텐츠가 새롭게 재조명받고 나이를 초월하여 모두가 즐기고 있다. 기존의 레트로Retro가 과거의 것 재현 자체에 중심을 두었다면, 오늘날의 뉴트로New-tro는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새로운 감각과 해석이 더해진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는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을 떠올리고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동시에, 젊은 층에는 처음 접해보는 신선하고 새로움을 동시에 만족시키며 트렌드가 되었다.
없던 향수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복고 느낌의 가게들
가게 문을 열기 1시간 30분 전인 오전 10시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는 요즘 핫한 압구정동 ‘도산분식’은 세련된 인테리어의 주변 고급 식당과 다르다. 시간을 되돌려 놓은 것 같은 옛날식 간판과 인테리어, 학교앞 분식점에서나 봤던 초록색 점박이 플라스틱 접시, 지금은 단종된 델몬트 오렌지 주스병에 구수한 보리차를 담아준다. 이런 풍경은 젊고 감각 있는 사람들이 찾는다는 서울 마포구 상수동과 망원동, 광진구 성수동,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종로구 익선동은 1920년대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낡은 한옥 동네 전체가 ‘복고 상권’을 이루고 있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20년대 제과점을 모티프로 한 디저트 카페 ‘동백양과점’, 옛날 스타일로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를 내는 ‘경양식 1920’, 한옥의 멋을 살린 프렌치 레스토랑 ‘빠리가옥’ 등이 골목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최근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는 이 맛집들은 단순히 옛 시절의 소품 몇 점을 가져다 놓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가게 이름이나 소품 등 전체적인 분위기는 복고를 차용하되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은 젊고 현대적이다. 이 뿐이랴. 쓸모를 잃고 사라졌던 물건들도 ‘핫’한 물건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개장. 오래된 우리집 자개장은 자리만 차지하는 촌스러운골칫덩어리로 여겨졌지만 최근 들어 세상 ‘힙한’ 인테리어 소품으로 지위가 격상됐다. 쟁반에 다리를 붙여 놓은 듯한 조잡한 양철상, 오래된 브라운관 TV, 음료회사 로고가 큼직하게 새겨진 우유 냉장고 등 분위기를 살려주는 인테리어 소품들도 몸값이 뛰었다. 특히 ‘서주우유’, ‘크라운’, ‘펩시콜라’ 등 추억의 상표가 찍힌 80~90년대 로고컵은 없어서 못 구할 만큼 인기다. 인스타그램에는 #옛날컵 #로고컵 #코리안빈티지(569개)란 해시태그를 달아 올린 사진들이 넘쳐난다. (중앙일보, 20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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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파도 계속 끝이 없는 팬질 가능한
그 시절 콘텐츠들
그 옛날 매력적인 물건들 뿐이랴, 새롭게 재해석 할 수 있는 수많은 과거의 콘텐츠가 세상 풍부하다. 유투브에서는 1980~1990년대 MTV 뮤직비디오가 넘쳐흐르고, 심지어 1920~1930년대의 흑백티비 스윙풍의 음악도 잔뜩이다. 순수했던 시대를 동경하고 약간의 불편한 아날로그가 신기한 사람들은 새로운 과거의 콘텐츠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오늘날 기술을 통해 공유한다. 영화를 보고 알게 된 퀸 음악을 유튜브로 검색해서 록의 과거와 더 과거를 검색하고, 가장 최신 기술을 배워 그 옛날 저화질의 영상을 고화질로 둔갑시키고 사람들에게 공유한다. 당시의 영상 중 인상적인 몇 컷을 잘라 붙인 ‘짤’ 혹은 gif를 만들어서 팬질한다. 인터넷에 ‘프레디머큐리gif’ 라고 검색하면 그들의 뮤직비디오와 당시에 출연했던 각종 프로그램을 초 단위로 잘라 만든 짤이 넘쳐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뿐이랴, 오히려 실제 퀸이 활동했던 시대보다 훨씬 미래를 사는 팬들이기에 퀸의 데뷔부터 지금 2018년까지의 멤버들 모습을 합성해서 만든 역추적 기록물들도 그득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SNS에 실시간으로 공유되어 빠르게 확산되고 사람들의 ‘좋아요’를 가져오고, 또 이 과거의 콘텐츠는 오늘의 내게 보여진다. 재생산 뿐만이 아니다. 그냥 보여주기도 한다. 페이스북은 작년의 내가 무엇을 했는지 5년 전 오늘 내가 무엇을 했는지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알려준다. 미국의 노스타지 머신Nostalgia Machine웹사이트는 ‘가장 좋아하는 음악의 해’ 의 노래를 재생하고, 어떤 서비스는 1년 전에 내가 듣고 있었던 노래를 재생한다. 멸종 위기의 소리 박물관 웹사이트는 중단된 상품의 소리를 재생한다. 이제 예전 콘텐츠가 오늘의 콘텐츠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노스탤지어가 실시간으로 배달되는 세상
2019년은 너무나 미래라고, 자동차가 날아다닐 것이라고, 퀸이 전성기를 누렸던 30년 전 사람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옛날의 것을 재창조하고 소비하며, 열광하고 그리워하고 있다. 기술 덕분에 과거와 현재의 경계는 흐려졌다. 실시간으로 과거의 것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나타나며 오히려 현재의 한 부분이 된다. 아마도, 지금의 이런 일상은 미래의 나에게 긍정적 감정을 가져다주는 또 다른 노스탤지어가 될 것이다. 또 다른 30년이 흐른 2049년, 오늘에서 출발한 노스탤지어는 미래의 우리 삶에 등장할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의 순간을 열심히 살고, 기록도 종종 남기면서 과거의 나와 비교하지 말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2018년 연말, 그리고 2019년 연초까지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30년 전 퀸이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Happy new year!
TEXT 김보름 이노베이션 컨설팅 전문가, <마이크로 트렌드 심리학> 공동저자
참고
<뉴스페퍼민트>, 추억(Nostalgia)이 인간에게 주는 것, 2013.7
<리서치페이퍼>, 과거에 대한 그리움,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 2017.12
<조선일보>,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에… 악기 찾는 ‘아재’들, 2018.12
<중앙일보>, 엄마의 자개장, 할머니의 컵…‘뉴트로’에 열광하는 20대, 2018.5
, The End of Forgetting, 20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