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척 노력했지만,
사실 주변의 관심과 동조에 기분이 좋습니다
사람들에게 모르는 사람들의 사진을 여러 장 보여주고 사진 속 사람들을 평가해 달라고 한다. 그러고 나서 사진 속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평가할 거라고 알리고,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했는지 알려줬다. 그리고 뇌의 사진을 찍었더니,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게 평가했다’고 할 때마다 뇌의 보상 부위가 반짝반짝 활성화되었다. 우리가 동경의 대상이 될 때마다 뇌에서는 우리에게 사회적 보상을 준다. 흥미로운 것은 참가자들이 제일 마음에 들어 했던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믿을 때 그 보상 부위가 특히나 강력하게 반짝거렸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아닌 척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거든’ 하고, 타인의 평가나 인정에 연연해 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행복의 방법임을 아주 잘 알고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사람들이 나를 더 좋아해 준다면! 인기가 있다면! 아마도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수련이 부족한 게 아니다. 우리의 뇌가 그냥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가 말합니다. 동경의 대상이 되어라! 내가 상을 내리겠다!
대뇌 깊숙한 곳에는 보상에 반응하는 부위인 복측 선조체ventral striatum 가 있는데, 그 보상이라는 게 맛있는 거 먹고, 몸을 움직이고, 아름다운 것을 보는 등 다양한 이유로 활성화된다. 그리고 그중 제일은 ‘사회적 보상’인데, ‘사회적 보상’이란 자신의 존재가 인정받고 찬양받으며, 자신이 영향력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을 때, 관심을 받을 때, 내가 인기가 있다고 느낄 때 활성화된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란 그만큼 우리의 행동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동기 중 하나일 수 밖에 없다. 친구에게 떠밀려 가입한 SNS지만 나도 모르게 ‘좋아요’ 수가 신경 쓰이는 그런 기분은 보상에 반응하는 나의 뇌 덕분이다. ‘인기’란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이나 연연하는 것인 줄 알았지만, 이제 우리는 주변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심지어 숫자와 통계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나 많다. 지금 우리의 뇌 - 그중에서도 복측 선조체는 디지털 기술과 SNS에 힘입어 가장 열심히 일하고 있다.
‘핵인싸’ 질풍노도의
청소년과 기술의 만남
성인들도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한 관심 지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 이 사회적 보상을 하는 복측 선조체는 사춘기가 되면 뇌에서 가장 먼저 변화하는 부위이다. 옥시토신Oxytocin 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인 호르몬은 우리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데, 사춘기가 되면 복측 선조체에서 옥시토신을 받아들이는 수용체를 급격히 증가시키고, 이를 통해 청소년들은 또래와 교류하고 유대를 맺으려는 욕구가 늘어난다. 친구들과 유쾌하게 지내는 재치쟁이의 모습이든, 홀로 우수에 찬 뭔가 달라 보이는 아웃사이더의 모습이든, 또래의 동경을 급격히 원하는 시기가 바로 사춘기 때이다. 그리고, 오늘날 기술은 10대에게 ‘핵인싸’ 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었다. ‘핵인싸’란 무리에 잘 섞여 놀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신조어로, 집단과 어울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일컫는 ‘아웃사이더’에서 반대말 ‘인사이더’를 가져와 핵심+인사이더를 합쳐, 인사이더 중의 인사이더를 지칭한다. 기술은 우리에게 누구나 많은 관심을 받을 기회를 열어 주었기에,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 안에서 조금만 빠르게 움직이면 사람들의 ‘좋아요’를 받는다. 방송국에서 쏘아 주는 것만 즐길 수밖에 없었던, 문화평론가 같은 몇 명만이 자기 생각을 알렸던 예전과 다르다. 이제는 누구나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이것 자체는 또 하나의 독립된 콘텐츠가 된다. 그리고 여기에 많은 ‘좋아요’를 얻은 사람들은 ‘핵인싸’가 된다.
illustration 이정윤
리액션 비디오부터 언박싱 쇼까지,
나의 반응을 보고 즐겨!
글로벌 아이돌 스타인 BTS의 새로운 뮤직비디오가 나왔다. 사람들이 그 뮤직비디오를 틀어놓고 자신의 표정과 감탄사 등의 반응을 찍어 올린다. 둘 다 즐길 수 있도록 화면을 적절히 분할해서 뮤직비디오와 리액션reaction하는 사람이 동시에 등장한다. 이게 바로 ‘리액션 비디오’ 인데, 말 그대로 각종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담은 영상물이다. 뮤직비디오뿐 아니라, 새로 나온 예능 프로그램, 과거에 유행했던 TV쇼나 드라마들도 그 대상이다. SBS의 <미운 우리 새끼>를 보자. 내용은 내용대로 화면을 그득 채우고 구석에는 패널들끼리 농담과 의견을 가감 없이 이야기한다. 내 자식과 관련 있는 사람이 나오든, 관련 없는 사람이 나오든 아무 상관 없다. 우리가 인터넷 기사에 댓글을 달고, 친구들끼리 카톡에서 이야기 하듯, 패널들이 나와서 본인의 생각을 공유하며 자신만의 주관으로 해석한다. 언제부턴가 예능의 기본 포맷이 된 해설하는 형태, ‘코멘터리commentary 트렌드’이다.
애플에서 스마트폰이 새로 나왔다. 어떻게 구입했는지 과정부터 새 제품이 들어있는 박스를 여는 전체 과정을 찍어서 내가 어떻게 기대했고 느꼈는지를 말한다. IT 기기뿐 아니라, 새로 나온 과자나 라면, 혹은 필기구 등 어떤 것이든 내 주변 집단이 관심 있어 할 만한 것을 비교적 빠르게 구입하고 상자를 오픈하는 언박싱unboxing 과정을 유튜브에 담는 것이 ‘언박싱 쇼’다.
어떤 세대,
어떤 주제에도 뒤쳐지지 않는다
JTBC에서 2018년 12월에 새로 시작한 <요즘애들>에는 ‘인싸’라는 단어조차 낯선 ‘요즘 어른’ 유재석, 안정환, 김신영과 트렌드를 아는 ‘요즘 애들’ 레드벨벳 슬기, 김하온, 한현민이 처음 만나 세대 간의 차이와 요즘 유행을 알려준다. tvN에서는 2018년 10월부터 최신 유행 코드를 다양한 코너에 담아 시청자를 핵인싸로 만들어준다는 취지의 <최신유행 프로그램> 시즌1을 시작, SNS에서 입소문을 타고 ‘좋아요’ 를 잔뜩 받으며 ‘핵인싸’라면 반드시 시청해야 할 프로그램으로 등극했다. 공중파 SBS는 유튜브에서 텔레비전과 다른 전략을 취하며, <스브스채널>이라는 채널을 운영한다. <스브스채널>에서의 ‘핵인싸’ 프로그램은 <문명특급>인데, 요즘 아이들에게 트렌드인 것은 어른들이 이해하기 쉽게, 어른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요즘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접근한다. 특히, 요즘 아이들의 유행을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신기하게 따라 하는 모습에 모두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며 역시나 ‘좋아요’ 를 잔뜩 받고 ‘핵인싸’ 프로그램이 되었다. 요즘 아이들이 말을 너무 줄인다면서 혀를 차지만, ‘핵인싸들이 쓰는 신조어’인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 ‘TMT’(Too Much Talker 말 많은 사람), ‘세젤귀’(세상에서 제일 귀여워) 등은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나’를 제일 궁금해하지만,
혼자만 알고 있지는 않다
친구한테 한번 해보라면서 심리테스트 링크가 하나 온다. 본인은 ‘천진난만한 양’이라고 한다. 내가 1919년 일제강점기 시대에 어떤 독립운동을 했을지 알아보는 테스트도 온다. 내 친구는 ‘이승만’이 나왔다고 한다. 최근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퍼뜨리는데, 가장 효과가 좋다는 다양한 심리테스트들. 예전에도 심리테스트는 있었지만, 요즘은 다르다. 아예 심심할 때 재미로 할 수 있는 각종 테스트를 모아놓은 <봉봉>이라는 서비스도 있다. 그 안에는 심리테스트부터 이런 상황에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지 물어보고, 혈액형, 별자리 등 각종 테스트들도 있다. 카카오톡이나 SNS를 통해 누구나 쉽게 테스트 내용을 공유하고, 나의 결과는 이렇다!며 결과를 공유하고, 나랑 비슷한 사람은 34,532명이란 것도 알게 된다. 결과의 정확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봤다는 것, 그리고 이것을 주변 사람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궁금해하면서, ‘너 나 알아?’라는 자신에 대한 8문 8답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보내는 서비스도 있다. 진짜 나 자신이 궁금한 걸 넘어서서, 주변 사람들은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반응이 궁금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궁금해한다.
‘핵인싸’ 는 주변 사람들과 원활하게
지내는 것이 핵심
관심만 받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날뛰는 ‘관심종자’(줄여서 ‘관종’)가 인터넷 상에서 꽤나 회자되었는데, ‘핵인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동경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관종’과 다르다. 우리의 뇌가 ‘사회적 보상’에 유독 반응하는 것은 주변의 눈치를 보고 휘둘리라는 게 아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상호 간의 진정한 소통을 하는 것이 생존에 중요한 만큼,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라고 뇌에서 보상을 주는 것이다. 그런 만큼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원활하게 지내기 위해 요즘 시대에 어울리는 방법으로 노력 중이다. 그 실용적인 유행을 배우기에 앞서, 각자의 사정이 있는 오늘날의 어린이, 청소년, 젊은이, 중년이, 장년이, 어르신이 모두를 이해할 수 있는 봄이 되기를 바란다.
김보름 이노베이션 컨설팅 전문가, <마이크로 트렌드 심리학> 공동저자
참고문헌
1. <모두가 인기를 원한다 : 관심에 집착하는 욕망의 심리학>, 미치 프린스틴, 위즈덤하우스, 2018.07.
2. <‘핵인싸’ 되는 2018 신조어 총정리 2편> 스포츠경향, 2018.12.
3. 요즘애들 홈페이지, JTBC, http://tv.jtbc.joins.com/coolki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