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기회를 가져다 주는 약한 유대관계
미국의 뉴튼에 살고있는 한 회계사가 학회에 참가하기 위해 근처 보스톤 로건 공항으로 가는 중이었다. 로건 공항에서 한 사업가와 택시를 함께 타게 되어 대화를 하던 도중, 그의 회사에서 회계사를 고용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회계사 역시 보스턴 시내로 이직하고 싶었던 터라 직장을 옮기게 된다. 그 회계사가 엄청난 행운아 일까? 1973년 미국의 사회학자 그라노베터Granovetter 교수는 보스턴 근교의 뉴튼 거주자 282명을 대상으로 직업을 구한 경로를 조사한 결과, 알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구직정보를 입수한 사람들 중 30% 정도만이 가족이나 친구 등 강한 유대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고, 70% 정도는 친밀하지 않은 약한 유대관계의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크게 강한 연결Strong Tie과 약한 연결Weak Tie로 나뉜다. 가족이나 친구, 또는 거의 매일 만나는 직장 동료 등 각별한 사람과의 관계로, 엄밀히 말하자면 강도의 세기보다는 빈번성이 높은 좀더 양질의 관계가 강한 연결, 반대로 아주 친밀한 관계는 아니지만 인사하고 안부를 묻고 지내는 사람들로 일상에서 가끔 혹은 우연히 접촉하게 되는, 넓은 의미에서 인맥으로 해석되는 관계가 약한 연결이다. 그리고 이 중 구직활동처럼 정보를 얻고 교류하는데에는 약한 유대 관계의 힘이 강력했다.
약한 유대로 가득찬 SNS ‘사회관계망서비스’
비단 직업을 구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디지털이다, 인터넷이다 한지 오래지만, 인터넷은 사람들 간의 관계 역시 변화시켰다. ‘페이스북’이라는 SNS를 사용해 본 적이 있다면, 뭔가 ‘어떻게 알았지?’ 싶은 정보가, 그러니까 나는 한 번도 내색한 적 없는 나의 특징을 반영한 정보가 등장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바로 ‘페친’, 즉 페이스북 친구들에 있는데, 여기서 친구는 정말 단짝 친구부터 그냥 아는 사람, 혹은 아예 얼굴은 본 적도 없지만 이름을 아는 사람까지 여러 단계의 인간 관계를 뜻한다. 페이스북은 나와 이 친구들 사이의 거리를 어찌저찌 계산하고, 그 친구가 한 활동이 나랑 얼마나 관계 있을지 또한 계산하여 ‘아마 너도 이 콘텐츠에 관심이 있을 것 같아’ 하면서 내 눈 앞에 콘텐츠를 등장시킨다. 친분을 나누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뿐 아니라, 그냥 클릭 한번이면 친구가 될 수 있는 세상에서 우리의 얕은 인간 관계는 더욱 확장되고, 친구의 활동이 내게 유용한 정보가 (혹은 광고가) 되고 있다.
동호회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몰랐던 사람들을 만나 게시판에서 관심사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친분을 나누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런 활동들이 SNS와 함께 실질적 사회적 연결성을 갖추어 나가 하나의 공동체 즉, ‘커뮤니티’로 발전했다. 충성도 높은 유일한 공통체가 아니라, 개인이 지닌 다양한 특징만큼 여러 공동체에 속하고 그 안에서 함께 활동을 즐기는 자유롭고 느슨한 관계이다. 정부와 기업에서는 지역이나 브랜드, 라이프 스타일 등을 기반으로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도록 장려한다. 커뮤니티 자체를 서비스로 만들어서 아예 사업화하거나, 비슷한 관심사를 나누던 인터넷 페이지의 유대가 강해지면서 커뮤니티가 되기도 한다.
잉여로운 시간과 두뇌를 함께, 취미 커뮤니티
노동자들에게 여유시간이 늘어났다. 직장에서 평생을 보낼 것처럼 일만했던 시대가 저물고, 이제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중요해졌다. 그리고 이제 그 여가시간을 커뮤니티에서 채워나간다. 백화점 문화센터나 주민센터 같이 다양한 수업을 진행했던 곳뿐 아니라, 취미와 자기계발 클래스를 비롯해서 함께 모여 다양한 활동을 제공하는 커뮤니티가 넘쳐난다. 선호하는 취향과 관심사를 책읽기로 엮어, 단순 독서에서 나아가 위스키 시음, 서울 답사 등 다양한 활동을 가미한 모임을 선보이는 커뮤니티가 있는가 하면, 운동을 함께 하는 커뮤니티도 쏟아진다. 혹시 한강을 걷다가 뭔가 무리들이 함께 달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면, 함께 운동하는 커뮤니티 사람들일 확률이 높다. 참가비를 내면 주최자가 장소와 재료를 준비하고, 참가자들은 준비된 재료로 직접 음식을 만들고 나눠 먹는 공유 부엌이나 소셜 다이닝 과 같은 커뮤니티도 자연스러워졌다. 지금 하고 있는 활동을 누군가랑 함께 하면 어떨까 생각이 든다면 인터넷에 한번 검색해보자. SNS를 통해 시작된 독서, 운동, 요리, 식물키우기 등 다양한 관심사 기반의 크고 작은 커뮤니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생 후반전, 100세 시대의 커뮤니티
100세 시대, 회사를 떠난 사람들에게 회사 밖 인연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인생의 후반전을 함께 한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고등교육이 보편화된 시대에 대학을 다닌 뒤 지식정보화 시대에 사회생활을 하고 퇴직 후 30년을 살아가야 하는 586세대가 이를 이끌고 있다. 대다수 대학에서 중년 졸업생들이 대학 졸업 후 50세가 넘어 대학 커뮤니티를 만들고, 자발적으로 평생교육 기회를 만들고 찾아다닌다. 깊지만 좁은 한 직장에서의 얻은 지식은, 자신이 속해 있는 분야에서 전문성으로 대접받지만, 직장 밖으로 나오면 무용지물이다. 그런만큼, 다른 업종과 다른 세계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시야를 넓혀 나가야, 노후에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기 쉽다. 서울시의 50+ 재단은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사람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이루도록 돕고, 또 그 안에서 각자가 가진 경험과 지식을 적극 나누도록 한다. 모두 처음 맞이하는 100세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이다.
illustration 이정윤
적절히 가깝게 삽시다, 주거 커뮤니티
아파트는 대한민국 주거 형태의 특징이다. 예전에는 쾌적한 환경 만들기라는 단순한 이유로 조성되었던 아파트 시설들이 삶의 질에 대한 관심 증대에 따라 커뮤니티 주거공동체로 변화 중이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운동시설 위주에만 국한된 물리적 요소들이 지금은 문화, 교육, 육아, 건강 등으로 그 범위가 넓어졌다. 집들이 때 사용 가능한 세컨드하우스, 입주민의 각종 행사장소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하는 게스트 하우스, 취미를 같이 향유하는 커뮤니티 키친, 열린 도서관, 영화감상실, DIY 목공실 등 프로그램이 결합된 형태의 모습을 자랑한다. 아파트뿐 아니라, 1인 가구 등 가족 형태가 다양화 되면서, 아예 느슨하게 개개인이 함께 사는 주거 공간인 코리빙co-living이 증가하고 있다. 혼자의 삶은 즐기고 싶지만 또 혼자만 살고 싶지는 않다는 밀레니얼 세대의 마음을 대변하는 코리빙은 하나의 공간을 공유해서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형태로, 공간의 활용과 효율을 취하면서, 혼자 있지만 여럿이 함께 있기에 외로움은 피할 수 있다. 입주자들이 사생활을 누리면서도 공용 공간에서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 협동 주거 형태로, 다양한 프로그램과 함께 개별적으로 커뮤니티를 운영한다. 강연, 교육, 파티 등 입주자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소셜 활동을 지원하고,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며, 살고 있는 사람 개개인과 그 안에서의 활동이 코리빙 자체의 브랜드를 만들기도 한다.
illustration 이정윤
‘개인주의를 보장하는 공동체 생활’의 시작
너무나 뻔한 말이지만, 어찌됐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가족처럼 친밀한 사람들과의 깊은 유대감이 우리에게 큰 안정감을 준다며 강한 유대감을 강조했던 과거에는 약한 유대감을 가진 넓은 인간 관계를 그다지 환영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시 전체 가구의 30% 가량은 1인 가구요, 미국은 2020년에 40%가 직장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가 된다는, 심지어 SNS에 익숙한 이 시대에는 약한 연결의 힘이 남다르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는 아니다. 취미나 관심사, 혹은 공통점 등 다양한 부분을 공유하며, 서로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여러 활동과 규칙들을 만들어 가며,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된다.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좋아하는 것들을 하고, 관심있는 것들에 목소리를 내면서, 비슷한 가치관이나 생각을 지닌 사람들과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며 원하는 방향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커뮤니티의 시대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글. 김보름 이노베이션 컨설팅 전문가, 「마이크로 트렌드 심리학」 공동저자
참고문헌
1. ‘약한 유대 관계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s)’, LG주간경제, 2004.09
2. ‘주 52시간 근로’ 수혜 톡톡… 취미 커뮤니티 스타트업 쑥쑥, 이투데이, 2019.02
3. ‘취미공유 넘어 사회 변혁 온라인 커뮤니티의 진화’, 서울경제, 2018.10
4. ‘네오사피엔스 NeoSapiens: 100세 시대가 바꾼 사회 풍경’, 중앙일보, 2018.10
5. ‘코리빙(Co-Living) 따로 또 같이 살아요’, 공유허브, 2016.10
6. ‘개인주의를 보장하는 공동체 생활’, 프레시안, 2008.03
7. ‘아파트 커뮤니티공간 변화’, 오도독, 201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