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 빠진 어르신을 잡아라!
유튜브는 더 이상 젊은 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2019년 4월 50대 이상의 유튜브 총 사용 시간은 101억 분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증가했다. 연령 순서로 보면 10대 20대 다음으로 50대 이상이 유튜브에 빠져있다. 단순히 보는 것만이 아니다. 최근 서울시 50플러스재단이 만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유튜브 스타로 성장할 기회를 제공하는 ‘50+유튜버 스쿨’ 참가자 모집에서 경쟁률이 21대 1을 기록했는데, 창작자를 꿈꾸는 실버 세대의 관심 역시도 높다. 2019년 콘텐츠 산업 전망 6대 키워드 중 하나가 인터넷, 스마트폰 등 스마트기기를 능숙하게 조작하는 50대 이상을 지칭하는 말인 ‘실버 서퍼silver surfer’가 새로운 콘텐츠 소비층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실버 세대가 만들어가는 콘텐츠에 대한 관심도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KT는 2018년 8월 IPTV 최초로 50~60세대 액티브시니어 취향에 맞춘 시니어 특별관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를 선보였고, LG유플러스는 올해 2월 50대 이상 시니어를 겨냥한 콘텐츠를 출시했다. 당뇨병, 고혈압, 관절염 등 주요 질환에 대해 건강정보를 전달하는 ‘우리 집 주치의’라던가, 인생 이모작과 관련된 콘텐츠인 ‘나의 두 번째 직업’을 제공하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풍경 소리 감상이 가능한 힐링 영상과 스마트폰 활용법도 알려준다. 경제력을 갖춘 중장년층이 온라인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만큼, 실버 세대를 대상으로 한 콘텐츠가 가능성 높은 시장으로 등장하면서 기업에서 만들어 제공하는 것뿐 아니라, 개인이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실버 크리에이터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다.
나의 이야기가 콘텐츠가 되는 세상
유튜브는 콘텐츠 중심이라 SNS 사용에 미숙한 사람들도 즐겨 볼 수 있다. 그래서 아직 글을 모르는 아이들도, 혹은 신기술에 밝지 않은 어른들도 접근이 쉽다. 유튜브에서 콘텐츠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을 ‘유튜브 크리에이터Youtube Creator’라고 하는데, 누구나 될 수 있다. 이들은 훨씬 생동감 있고, 마치 우리 주위 어딘가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친근한 사람들이다. 전통 미디어에서의 ‘스타’ 와는 다르게, 현실적인 자신만의 이야기가 매력이 된다.
인생 100세 시대라 앞으로는 좀 더 세분화되어야겠지만, 발달심리학자인 에릭슨Erik Homburger Erikson은 인생 주기를 8단계의 심리 사회 발달단계로 구분하여 단계마다 발달과업을 제시한다. 그 여덟 단계 중 65세 전후에 시작되는 마지막 단계가 ‘자아통합감 대 절망Ego Integrity vs. Despair’ 인데, 노년기에 성공적인 발달 과업은 ‘자아통합감의 달성’이라고 하였다. ‘자아통합감 달성’은 이 시기에 도달한 사람들이 과거를 돌아보며 행복하고 결실 있는 삶을 살았다고 느낄 경우 이를 수용하고 스스로 만족해하는 상태로 자기가 원했던 삶의 방향과 실제 살아온 삶이 일치하는 것을 자아통합 상태라 한다. 반대로 삶의 여정을 돌아봤을 때 그 안에서의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면, 자신의 인생은 무의미했고 성공할 기회는 놓쳤으며, 다시 시작하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다고 탄식하며 우울증에 빠져 자신이나 타인을 원망하면서 괴로운 노년기를 보내게 되는 것으로 절망 상태이다. 물론 이런 상태가 흑과 백처럼 명확하지는 않지만, 노년기에 통합감을 달성한 사람은 성숙함을 보이며 과거의 생활유형을 수용하고 평온해진다. 그 평온함은 포기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등 자아실현을 계속하게 되고, 죽음을 두려워는 할지언정 수용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에서 오히려 새로운 시각과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것이 바로 지혜Wisdom이다.유튜브라는 회사의 목표는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돕고 더 큰 세상과 만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유튜브라는 공간 안에서는 마냥 평범해 보이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유튜브 크리에이터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지루하게 보이는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인격과 개성을 통해 ‘자기다운 평범함’을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 가운데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는 ‘지혜’를 가진 다양한 어르신들의 매력에 우리는 빠져들고 있다.
인생 경험 자체가 콘텐츠 + 독특한 감성 = 실버크리에이터
여전히 TV에서도 시니어를 타깃으로 한 많은 프로그램이 있지만, 1인 미디어 시대의 실버 크리에이터는 이와 다르다. TV 속 시니어가 보다 ‘젊은 층’ 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실버 크리에이터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콘텐츠로 제작해 구독자와 소통한다.’는 점에서 여느 크리에이터와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보다 30~40년은 더 살아온 세월에서 온 경험담과 흉내 낼 수 없는 개성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실버 크리에이터 중 가장 유명한 분은 단연코 ‘73세 박막례 할머니의 무한도전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인공이자 현재 91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코리안 그랜마, 박막례 할머니이다. 치매 예방을 위해 손녀 김유라 씨의 제안으로 시작한 유튜브 라이프는 박 할머니의 낙이 됐다. 손녀와 함께한 호주 여행기를 시작으로, ‘가방 공개하기’, ‘생애 첫 요가 도전’, ‘파스타 첫 경험’ 등 일상 이야기를 다룬다. 젊은이들에겐 익숙한 것들이지만 할머니에겐 인생 최초의 ‘도전’이다. 화끈한 직설 화법을 선보이는 러블리한 할머니의 매력은 젊은 세대와는 다른 언어와 감성에 그 매력을 더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 파티나 여행 등 젊은 층에게 흔한 주제 대신 ‘치과 들렀다 시장갈 때 메이크업’ 등 친근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분석적이고 화려한 영화 리뷰가 아니라 어르신들이 누워서 보는 ‘막장’ 드라마를 실시간 리액션하며 찰진토크로 풀어내는 박막례 할머니 자체가 인기 콘텐츠가 되었다. 박막례 할머니의 매력이 거칠면서도 솔직한 입담이라면 82세 김영원 할머니는 조곤조곤한 말투로 인기다. 김 할머니는 손녀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31만 명의 구독자를 지닌 ‘영원 씨 TV’를 운영하는데, 촬영과 편집은 손녀가 하고 있다. 그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 영상은 먹방과 ASMR이다. ‘영원 씨의 불량식품 먹기’는 조회수 30만을 돌파하며 김 할머니의 이름을 먹방 유튜버의 신흥 강자에 올려놓았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 <랜선라이프>에 출연하면서 화제가 된 ‘심방골 주부’로 활동하는 63세 조성자 할머니는 28만 구독자를 가진 집밥 레시피 채널을 운영한다. 다른 레시피 채널처럼 쉴 새 없이 설명이 나오거나 긴박한 BGM이나 효과음 같은 것은 없다. 이를 대신하는 물소리와 칼질 소리만 들리고 군더더기 없는 영상에 친근한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엄마표 레시피’인데다가 집에서 아침에 누워있을 때 들려오던 부엌 소리 같아서 집밥을 그리워하는 자취생과 신혼부부들을 사로잡고 있다. 화려한 음식이 아니라 40년을 주부로 살면서 삼시세끼를 만들어온 편안한 집밥이 정겹다.
illustration 이정윤
늦은 건 없다!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다
가지고 있는 재능이 분명 있는데, 지금까지는 가족과 자신의 상황을 돌보느라 잠시 미루어 두었다가 60세가 넘어 꽃을 피우는 실버 크리에이터도 인기가 높다. 그중 제일 돋보이는 분은 바로 이는 데뷔한 지 겨우 2년 차 만에 온갖 광고와 패션쇼를 휩쓸고 다니는 65세 패션모델 김칠두 할아버지이다. 40년간 순댓국집을 운영하다 그만둔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긴 머리와 수염을 기른 채 할 수 있는 일이 아파트 경비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의에 빠지던 중 딸의 권유로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던 패션모델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길이 열렸다. 손주뻘 학생들과 함께 모델 학원에 다니며 노력한 그에게 하나둘 화보 촬영과 패션쇼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TV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자신의 활동을 기록하기 위해 시작한 인스타그램은 어느덧 7만여 명이 구독하는 인기 계정이 되었다.
36년 전 브라질에 이민을 떠난 77세 이찬재 할아버지는 은퇴 후 손자의 등하교를 돕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다 딸 가족과 두 손자가 한국으로 떠나면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빈자리를 걱정한 막내아들의 권유로 취미 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손자들과 얽힌 추억, 알려주고 싶은 한국의 전통문화, 함께 보고 싶은 자연 풍경 등을 그림으로 남긴다. 현재 35만 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들이 구독하고 있으며, 국내외에서 개인전을 열며 화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누구나 어떤 타고난 무엇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를 꽃피울 시기가 사회 기술적인, 혹은 개인적인 어떤 이유든 간에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기에 늦은 것은 없고 언제든 시작할 수 있다고 많은 실버 크리에이터들은 자서점가 베스트셀러-‘박막례, 이대론 죽을 순 없다’
박막례 할머니가 이번에는 책을 냈다. 베스트셀러인 이 책에서 할머니는 삶의 여정과 그 안에서의 깨달음을 함께 나누고 있다. 박막례 할머니는 고민 상담소에서 ‘좋은 사람은 어떻게 될 수 있어요?’라는 질문에 ‘정치인 아니면 그 꿈은 진즉 접는 게 좋을 것이여’라고 답하며 이어 ‘내가 70년 넘게 살아보니까 그래. 왜 남한테 장단을 맞추려고 하냐, 북 치고 장구 치고 네 하고 싶은 대로 치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추는 거여’라고 명쾌한 답을 내려줬다.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 지금까지의 인생 경험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세월의 힘을 쌓아 올린 지혜로운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비슷한 연배의 시니어에게는 용기를 주고, 젊은이에게는 웃음과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참고
‘유튜브에 푹 빠진 실버세대…소비자 넘어 창작자로’, 뉴시스, 2019.05
‘박막례 할머니에서 할담비까지! 실버 크리에이터의 인기 비결은?’, HS애드 공식 블로그, 2019.04
Erikson, E. H. (1963). Childhood and society (2nd Ed.). New York: Norton.
‘친할머니 같은 꾸밈없는 매력! 실버 유튜버 3’, 싱글리스트, 2017.05
‘인생 경험 자체가 콘텐츠…60세 이상 실버 크리에이터’, 뉴스픽, 2018.06신의 이야기로 직접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