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you are what you eat
슈퍼마켓에서 쇼핑 중인 사람을 보자. 특히 어떤 음식을 구입하는지 쇼핑카트를 볼까. 저 사람은 냉동식품과 콜라를, 저기 저 사람은 당근과 두부와 소고기를, 그리고 저쪽 사람은 과일과 음료수를 담았다. 이중 누구와 더 가깝게 지내고 싶은가. 쇼핑카트에 담긴 음식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답은 ‘그렇다’이다. 평소에 봤으면 데이트하고 싶었을 키 크고 잘 생긴 남성이지만, 그의 쇼핑카트에 맥주와 감자튀김이 잔뜩 담긴 것을 보고 나면 리모컨과 함께 집에서 소파와 한 몸이 된 그를 상상하고는 노땡큐를 외치게 된다. 1999년 영국 런던의 시티 대학교 설문 연구에 따르면 71%의 사람은 그 사람의 쇼핑카트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강력한 메시지라고 응답했다.
무언가를 먹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몸의 에너지 공급이지만,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고 결정하는 과정은 실제로 엄청나게 복잡한 과정이다. 무엇을 먹는가는 영양학적으로, 문화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의 근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전부터 이야기했다.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이라고. 라이프 스타일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음식은 어떤 생활습관을 가졌을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까지 설명이 가능하다. 그리고 요즘 가장 핫한 키워드가 바로 ‘비거니즘veganism’이다.
illustration 이정윤
채식을 하고 동물권리를 챙기는 사람들이 유난스럽지 않다고?
‘비거니즘’은 다양한 이유로 동물성 제품을 섭취하지 않는 식습관 및 그러한 철학을 뜻하며, 완전채식을 뜻하는 ‘비건’에서 파생된 말이다. 채식은 어떤 것을 얼마나 먹는가 먹지 않는가에 따라 아주 세분화되는데, ‘비건’은 동물을 활용한 유제품, 달걀 등도 먹지 않는 완전한 채식을 목표로 한다. 예전에는 건강과 체질상의 이유로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가 많았다면, 요즘의 비거니즘은 환경과 동물보호 같은 윤리적인 측면까지 고려하고 있어 좀 더 복잡하다.
‘소와 돼지, 토끼 등은 동물이고 동물은 가족이고 귀여워’라는 감성적인 접근이 아니다. 소가 내뿜는 메탄가스의 온실효과는 전세계 자동차가 내뿜는 것보다 크고, 채식 위주로 식단을 바꾸면 온실가스 70%까지 감축 가능하다는 것. 쇠고기를 생산하는 데는 같은 칼로리의 곡물을 생산할 때보다 160배 더 넓은 토지가 필요하고, 그 토지를 만들기 위해서 숲을 파괴하고, 식량과 물 부족, 수질 악화 등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9년이 ‘비건의 해’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비건과 관련된 다양한 경제가 만들어지는 ‘비거노믹스’라는 말도 등장했다. 이제 비건은 어떤 깐깐하고 유난스러운 선택이 아니라 당연한 시대적 흐름이 되었다.
채소? 고기? 대세는 식물성 고기!
고기의 상징 햄버거, 그리고 햄버거의 대명사 맥도널드가 매출 5위 독일 매장에서 고기 없는 버거 ‘빅비건TS’ 판매를 시작했고, 미국에서도런칭 예정이다. 이미 2년 전에 콩고기 패티를 넣은 햄버거를 선보였지만, 이번에는 ‘가짜 고기’라고 불리는 식물성 고기로 만든 버거이다. 2009년에 시작되어 2019년 5월 미국증시 상장을 엄청난 인기와 함께 성공적으로 입성한 미국 대체육 시장의 선두주자 ‘비욘드미트Beyond Meat’는 콩이나 버섯 등에서 추출한 식물성 단백질로 식물성 고기 제품을 생산한다. ‘임파서블 푸드Impossible Food’도 대표적인 대체육 신생기업인데, 2011년 스탠퍼드대 생화학과 교수 패트릭 브라운이 창업했다. 이 업체는 스타 요리사와 손잡고 감자 단백질, 밀 단백질, 코코넛오일, 지방과 헴Heme 등 식물성 재료만으로 고기 패티를 거의 완벽히 재현한 ‘임파서블 버거’를 출시하며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외에도 해외 시장에선 닭 없이 달걀을 만드는 ‘햄튼 크릭 푸드’, 동물 줄기세포를 근육조직으로 분화시켜 고기를 배양하는 ‘멤피스 미트’ 등의 업체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시장을 이끌고 있다. 이러한 대체육은 진짜 고기보다 두배까지 비싸지만, 기술개발을 통해 가격은 안정화 될 예정이다. 국내는 서구만큼 육식을 하지 않고, 고기를 굽거나 삶아 먹는 식문화 기반이다 보니 아직까지 대체육 시장이 그리 커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비거니즘 라이프 스타일을 대변하는 하나의 세련된 트렌드로서 사람들의 관심은 증가 중이다.
계란, 우유, 버터 없는 빵과 아이스크림
종종 잊어버리곤 하지만 계란, 우유, 버터는 대표적인 동물성 식품이다. 이걸 어떻게 포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미 이를 대체하는 식재료 시장은 이미 크다. 평소 알레르기에 시달리다 건강을 생각한 비건 빵집을 오픈했다는 서울 연남동의 ‘베지홀릭’은 설탕도 넣지 않은 순수 담백한 맛으로 현미그루통과 흑미세글러노아가 인기다.마니아층만 찾던 시절은 예전에 지나갔다. 신세계푸드는 작년 9월 국내 업체 중 처음으로 영국 채식협회 인증을 받은 비건 베이커리를 선보여 스무디킹, 스타벅스에서 판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유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이른바 비건 아이스크림 혹은 채식 아이스크림도 최근 들어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출시되어 조명받고 있다. 미국의 솔트앤스트로우 아이스크림은 두유와 아몬드 우유를 사용한 아이스크림을 내놓고 앞으로도 20% 이상의 메뉴를 비건화 할 것으로 밝혔다. 아이스크림의 묵직한 우유맛을 오히려 안 좋아한다면 비건 아이스크림을 한번 먹어보자. 깔끔한 맛에 계속 먹게 되는 것이 빵과 아이스크림 등 비건용 간식이니 말이다.
패션과 뷰티도 비건 스타일
동물 털을 걸치느니 누드로 다니겠다는 시위를 본적이 있는가. 이제 의류업계에서는 가죽, 모피, 실크, 울 등 동물성 섬유 대신 인조가죽, 인조모피 등 대안 원단을 사용한 브랜드가 각광 받고 있다.
구찌, 아르마니, 캘빈클라인 등 명품 브랜드는 이미 수년 전부터 모피 사용을 중단한 지 오래다. 휴고 보스는 동물 가죽 대신 파인애플 가죽으로 만든 신발 라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동물 가죽이나 털을 얻는 과정이 비윤리적이라 생각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비건 패션을 택한다. 새끼 소가 암컷이면 젖소로 기르고, 수컷이면 몇 달 키운 뒤 잡아서 가방이나 운동화를 만드는 데 쓰는 가죽을 얻고. 발버둥 치는 오리나 거위를 꽉 붙잡은 채로 잡아 뜯은 20~30마리의 가슴 부위 깃털로 만드는 한 벌의 패딩. 이미 알게 된 이상 아무 생각 없이 옷을 사기란 쉽지 않다.
화장품 업계도 ‘비거니즘veganism’이 확산되고 있다. 비건 화장품은 일체의 동물성 성분을 포함하지 않고, 성분개발 과정에도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화장품을 뜻한다. 유기농 화장품 전문 브랜드 ‘닥터 브로너스’ 의 매출은 런칭 이후 20년 만에 30배 이상 급성장했다. 비건 화장품 업체 ‘아워글래스’는 지난해 모든 제품을 2020년까지 100% 비건으로 내놓겠다고 밝혔다. 립스틱 등 색조 화장품의 필수 원료인 구아닌은 생선 비늘에서 얻어야 하지만, 이를 식물성 원료로 교체하겠다는 것이다. 무엇이 진짜 비건인지 구별하기란 쉽지 않지만, 깐깐하고 똑똑한 오늘날의 소비자는 과정과 재료를 체크하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지갑을 연다.
나와 지구를 위한 당연한 선택 ‘비거니즘’
‘비건’이라는 단어 뒤에 관심 있는 분야를 인터넷에 검색해보자. 비건 베이커리, 비건 아이스크림, 비건 패션… 의외로 많은 부분이 서구권 국가를 시작으로 기존 산업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식물성 고기의 주재료인 완두콩 등의 가격 급등으로 수급난에 빠질 가능성, 축산농가들이 심각한 생존의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의견 등 당연히 걱정 어린 시선도 많다. 이미 비건 열풍에 타격을 입고 업종을 바꾸는 모습도 발견되는데, 미국 캘리포니아 농가 일부는 소를 키우다가 아몬드 나무 재배로 사업을 바꾸고 비건 우유를 만들어 팔고, 뉴질랜드의 축산농가는 아보카도를 재배하기도 한다.(아보카도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물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하지만, 이 지구에서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큰 생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누가 진짜 채식주의자인지를 가리는 분위기가 아니라, 지구를 생각하는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서 사람들은 본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비건을 선택한다.
이들은 동물과 환경을 사랑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며,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실천해 나가려고 노력한다. 비록 더 많은 돈과 정보가 필요하며,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지만, 오늘을 덜어내고 내일을 지켜가는 것이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이 되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불필요한 사육과 죽음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보다 공론화된 질문을 던지며, 환경과 지구, 그리고 나의 건강을 생각하며 모두가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참고
‘You are what you eat: the link between food choice and identity’, Erica Mcneice, 2016.09
‘Take a pass on the fish sticks’, Chicago Tribune, 1999.04
‘급성장하는 비거노믹스 - ‘동물·환경 보호하자’ 육식 out! 식물로 만든 고기·의류·화장품 인기’, 매일경제, 2019.05
‘채식 위주로 바꾸면 온실가스 70%까지 감축’, 한겨레, 2016.03
‘들어는 봤나? 착한 화장품, 비건 화장품’, 이코노믹리뷰, 2018.11
‘채식주의 - 비건 라이프 스타일에 대하여’, 매일경제, 201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