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 문화 센세이션인가? 창작 없는 메모리 재생인가?
다시 사랑받는 복.고.문.화
복고열풍이 몰아친 이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옛 가수는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게스트가 되었고,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선 연신 젊은이들의 입을 빌려 옛 노래가 흘러 나온다. A쇼핑몰에서는 청청패션의 대표격인 데님재킷은 15배, <떡볶이 코트>라 불렸던 더플코트가 전년 동월대비 195배나 많이 팔렸다. 타이포그래피를 기반으로 하는 Y소프트사의 복고폰트(사춘기체, 어반빈티지체, 쾌남열차체)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미국과 영국 등 서방세계를 중심으로 LP 음반제작과 판매가 점진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다. 실제 지난해 미국내 LP음반 판매량은 7년 만에 9배로 껑충 뛴 것으로 조사되었다. 팝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대중의 사랑을 받는 미국의 레이디 가가 등 유명 팝스타들도 새로운 앨범을 LP로 제작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특별한 활동 없이(?) 꾸준한 사랑을 받는 가수 김동률이 정규음반 6집(동행)을 3천장 한정으로 LP로 제작, 발매하여 전량 판매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기기의 홍수, 인터넷 등 매체의 다양화 속에서도 80~90년대의 추억 회상과 질적으로 좋은 음악을 갈망하는 대중 기호가 서로 맞물려 아날로그 음악이 다시금 전성기를 맞고 있다.
스크린을 뒤덮은 ‘그때 그 시절’
2000년대에 접어 들면서 국내 스크린에서의 복고강세는 유별나다. 복고소재의 영화가 스크린 흥행을 주도하는 형국이다. 1,400만 관객을 훌쩍 넘긴 국제시장(2014년 12월 개봉, 윤제균 감독)의 흥행기록은 명량(누적 관객 수 1,700만)에 이어 국내영화 누적 관객 수 2위의 기염을 토하며 개봉 3개월이 지나도록 박스오피스 상위에 랭크되고 있다. 올해 국내 스크린은 국제시장뿐 아니라, 무교동 음악 감상실을 무대로 한 <쎄시봉, 김현석 감독>, <조선명탐정:사라진 놉의 딸, 김석윤 감독>, <강남1970, 유하 감독>, <허삼관, 하정우 감독> 등의 영화가 복고문화를 대변하듯 스크린을 장식했다. 복고라는 트렌드를 담아낸 콘텐츠지만, 흥행에 참패한 작품들도 있다.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스크린의 대부분은 억지춘향식 시나리오 각색과 관객이 용납하지 못할 정도의 시대착오적 인간애 강조 등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문화계에 있어서 복고열풍이 새삼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2000년 초반부터 스크린(친구 2001, 써니 2011, 건축학개론 2012), TV 예능(놀러와 쎄시봉편) 및 가요 프로그램(불후의 명곡, 나는 가수다), TV 드라마(응답하라 시리즈)에서 꾸준하게 이목을 집중시키며 사랑 받아 왔다. 사회문화계 일부 학자들은 복고트렌드가 2015년 대중문화뿐 아니라 사회변화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사회학적 진단을 내 놓고 있다.
왜 지금 복고열풍일까?
복고열풍은 순수했던 기억에 대한 회상을 즐기려 하는 인간의 보편적 욕구에서 오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섬세하거나 정교하지 않고 조금은 투박하고 느렸던 시절이지만 아련한 기억 속의 정겨움과 계산적이지 않고 순수했던 지난날에 대한 기억을 누구나 가지고 있고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문화콘텐츠와 맞물린 탓이라 하겠다.
또 다른 반증으로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이 사회, 경제, 정치적 피곤함의 누적으로 인한 해방구를 찾고, 워낙 빠르게 변하는 경쟁사회에서의 고단함을 풀어내기 위한 과거 회상의 연장선상 일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에게나 소싯적에 잘 나갔던, 자랑하고 싶은 기억을 이야기 하고 싶은 갈망이 복고열풍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소통이 부족한 시대에서 흔히 나타나는 사회문화적 표현 방식이라 하겠다.
복고문화는 예나지금이나, 추후에도 대중문화의 주요한 문화상품으로 대중의 소비를 이끌어 낼 것이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창작을 곁들이지 않은 채, 단순히 복고에 심취한 대중을 대상으로 한 상업적 접근이다. 복고문화의 지나친 유행은 문화콘텐츠에 대한 새로움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아날로그적 감성과 향수를 회상하는 대중의 심리야 말릴 수 없지만, 문화 창작에 대한 열정과 소재 발굴에 대한 의지 없는 우려먹기 식의 복고 콘텐츠 남발은 문화창작 시스템을 무너지게 하는 문화적 퇴행을 가져올 것이다.
“옛날에는 완전하고 깨끗한, 올바른 모습을 가진 세상이 있었다고 믿는다. 요순우탕 문무주공의 세상은 처음부터 없을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옛 시대란 언제나 몽롱한 대의명분이었으며, 인생이란 언제나 그렇고 그런 추레한 외양간이었다”
이인화 장편소설 <영원한 제국>의 한 구절이다. 옛 것에 대한 일방적 그리움을 예쁘고 그럴듯하게 포장하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최근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복고문화는 우리 사회전반에 누적되어 있는 정치사회경제적 관계들을 뒤흔들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단순한 일회성 열풍이 아닌 복고에 대한 진정한 의미가 공유되는 계기가 되어 사회문화적으로 한층 더 성숙해 지는 거름이 되기를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