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기근의 시대
세상이 온통 봄 내음으로 가득하다. TV 뉴스의 언저리는 상춘객의 북적거림을 담은 영상을 끊임없이 보도한다. 무의식적으로 뉴스를 시청하는 필자에게는 적잖은 부담이다. 필자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생에게는 봄의 따스함이 유쾌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일월 송학에 소식을 듣고, 이월 메주에 님을 만나, 삼월 사쿠라에 산보를 간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어여쁜 너를 두고 나는 간다. 따라지 인생으로 돌아간다.”
품바타령(화투가)의 가사 일부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이 연애를 포기하고 혼자만의 세상에 스스로를 가두는 내용을 철학적으로 담아 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삼포, 오포를 넘어 삶포, 달관세대라는 표현이 난무하는 요즘세상, 연애를 포기한 세대들의 애잔함을 어찌 달랠 수 있으랴. 금번 호는 연애의 짜릿함, 두근거림, 애틋함을 대신할 고전문학으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두 여자의 서로 다른 사랑 방식
영국이 낳은 또 하나의 셰익스피어라는 평을 듣는 제인 오스틴(1775~1817)은 장편소설 『이성과 감성(1795)』에서 극단적 성향을 지닌 두 자매를 통해 연애의 희열과 이별의 고통을 이야기하며 인생을 보여준다. 이성적인 언니 엘리너와 직설적이고 감성적인 동생 마리앤이 풀어내는 연애 이야기는 답답함과 조바심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닌다. 소설은 대비되는 두 자매의 연애와 결혼을 주요 플롯으로 하지만, 인간관계 또는 가족관계에 대한 지혜를 습득할 수 있는 여지를 내포하고 있다.
“돈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건, 다른 아무것으로도 행복해질 수 없을 때뿐이야. 풍족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이야 주겠지만 진정한 행복은 줄 수 없다고.” - 감성 소녀 마리앤
“한 사람에게 한결 같은 애정을 갖는다는 생각이 매력적이긴 해도, 그리고 자신의 행복이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말이 일리가 있긴 해도, 꼭 그래야만 한다는 건 맞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아.” - 이성 소녀 엘리너
연애 혹은 이별, 그리고 행복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천차만별 일수밖에 없다. 다만, 한 가지 새로운 것은 이성과 감성 사이에 나 자신을 포함한 주변인(특히 가족)들에게 얼마나 더 만족스러우며, 덜 고통스러운 연애방식이 무엇인가를 고심한다는 것이다. 사춘기 시절의 돌발적이며 즉흥적인 연애와 골드 미스의 꼼꼼한 듯 계산적인 연애의 공통분모가 거기에 있다.
한 남자의 격정적인 사랑
30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영국 여류작가 에밀리 브론테(1818~1848)는 그녀의 저서 『폭풍의 언덕(1847)』을 통해 세속을 뛰어 넘어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는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 한다. 비윤리적이며 야만적이라는 이유로 혹평을 얻기도 한 작품이지만, 독특한 캐릭터 설정과 서정적 배경, 긴박한 필치는 둘째 치고라도, 긴장감 넘치는 연애, 흠칫 놀랄 정도로 간절한 애정에 대한 욕구, 이별에 대한 복수심이 불러내는 절망감은 읽는 이의 심장을 쪼그라들게 한다. 『폭풍의 언덕』은 세상 모진풍파를 겪어본 어른들보다는 격랑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랑의 열병에 쉽게 빠져드는 청소년들에게 제법 어울리는 연애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 녀석처럼 금발에다 살결도 희고, 옷도 잘 입고 행실도 점잖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만큼 부자면 더 좋겠고...” - 사랑에 눈 뜬 소년, 히스클리프
“당신은 내가 당신을 죽였다고 했지. 그러면 귀신이 되어 나를 찾아오란 말이야! 죽은 사람은 죽인 사람에게 귀신이 되어 찾아온다면서? 난 유령이 지상을 돌아다닌다는 것을 알고있어. 언제나 나와 함께 있어 줘. 어떤 형체로든지, 차라리 나를 미치게 해줘!” - 죽음을 초월한 사랑을 이어간 남자, 히스클리프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에밀리 브론테의 이야기는 TV 속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 묘한 기분에 휩싸이게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과 이별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욕망은 비슷한 모양이다. 막장으로 치닫는 히스클리프의 사랑에 대한 집착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이렇듯 뜨거운 사랑을 해
본 적이 언제였던가 싶다.
청춘을 응원하며
연애를 포기하면, 곧 미래에 회상할 추억마저 포기하는 것이다. 젊은 세대에게 고한다. 삶이 고단하고 현실을 수용하기 버거운 시절일수록 뜨거운 연애로 피로감을 희석시키며 살자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는 인간의 보편적 욕구인 연애의 바람을 피하지 말자고.
아가씨에게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말한 후, 나는 천막 앞에 아가씨에게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말한 후, 나는 천막 앞에 앉았습니다. 비록 누추하지만 아가씨가 내 보금자리에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아가씨는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순결한 한 마리 양처럼 내 보호를 받으며 쉬고 있었습니
다. 내가 아가씨를 지켜 주고 보호한다는 생각이 들자 자랑스럽고 마음이 벅차올랐습니다. 오늘 밤처럼 하늘이 넓고 깊어 보인 적은 없었고, 하늘에 별이 이렇게 많았는지 그리고 그 별이 이처럼 아름답게 빛나는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 알퐁스 도데, 『별(1873)』
연애는 나와 상대를 이해함으로써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가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