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수원화성은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의 역작품으로 총 길이 5.7킬로미터, 면적 1.2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처음 공사는 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정약용과 채제공의 주도 하에 2년 반이라는 단기에 완공되었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효심과 백성을 위하는 애민정신, 그리고 조선 후기 정약용을 비롯한 실학자들의 정치 이념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예술성, 과학성, 경제성까지 살린 조선 후기 건축의 백미로, 우리나라 성곽 중에서도 건축학적, 예술학적으로 매우 뛰어난 성곽이다.
바람도 쉬어가는 팔달문-서장대
수원화성 걷기는 팔달문에서 시작되었다. 수원화성은 어느 곳에서 출발해도 3시간 남짓이면 성곽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팔달문은 장안문, 화서문, 창룡문과 함께 수원화성의 4개 성문 중 하나로, 팔달산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팔달문을 비롯한 수원화성의 성문은 방어라는 기본적인 목적 외에도 사방팔방에서 물자가 모이고 사람이 모여 유통기능을 원활하게 한다는‘사통팔달’의 의미를 갖고 있다. 화성행궁을 둘러보고 나와 크고 작은 공방과 맛집이 늘어선 행궁길을 따라 걷다 보면 팔달문관광안내소를 만나다. 이곳에서부터 시작된 수원화성 성곽길 걷기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한걸음 한걸음 오르다 보니 어느새 서장대에 이르렀다. 장대는 장수가 병사들을 모아 훈련을 하거나 지휘하는 건물을 말하는데 화성 서쪽 팔달산 정상에 있는 것을 서장대 또는 화서장대라고 한다. 서장대 앞에 서니 가까이 화성행궁이 눈에 들어오고 구릉을 따라 건설된 높고 낮은 성곽을 따라 도시가 안락하게 자리해있는 것이 보인다. 2층 누각으로 지어진 서장대는 아래층은 사방이 개방되어 있고 위층에는 군사가 올라가 성 안팎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정조가 이곳에서 직접 군사훈련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조의 명령이 떨어질 때마다 우렁찬 나팔소리와 함께 서장대 앞 깃대에 깃발이 올라갔고, 병사들은 이 깃발을 보면서 훈련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조의 명령이 아직도 쩌렁쩌렁 울리는 듯 서장대의 기품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다. 수원화성에는 2곳의 장대가 있는데 서장대가 팔달산 정상에 있다면 나머지 1곳은 화성 동편에 자리한 동장대(연무대)가 있다. 동장대는 주로 군사훈련과 지휘의 역할이 더 컸다고 한다.
2층 누각에 앉아 땀을 식힌다.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지은 성곽은 여전히 도시를 품고 있다.
정조의 효심이 스민 화성행궁
화성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인 화성행궁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 서장대다. 서장대에서 내려다보는 행궁은 일렬로 난 세 개의 문이 뚜렷이 보일만큼 시야가 좋다. 본래 행궁은 임금이 지방을 둘러보거나 전쟁이나 재난으로 궁궐을 떠나 지방에 머물 때 임시로 사용했던 궁궐을 말한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화산(지금의 경기도 화성)으로 옮기고 참배하기 위해 머물렀던 곳으로 조선시대 대표 행궁으로 건립 당시 600여 칸에 이르렀다. 정조는 13차례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하였고 그때마다 이곳 행궁에 머물렀다. 일렬로 난 세 개의 문인 신풍루, 좌익문, 중앙문을 지나야 정당인 봉수당에 이르도록 설계됐는데, 봉수당은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장수를 기원하며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정조는 이곳에서 다채로운 행사를 벌이곤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1795년에 치러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아버지 사도세자가 동갑이었으니 사도세자가 살아있다면 두 사람의 회갑을 치르게 되는 아주 특별한 해였던 것. 효자 정조는 성대하고 장엄한 행사를 기획하고 회갑연을 비롯해 과거시험, 군사훈련 등을 이곳에서 치뤘다. 행차 시 정조가 머물렀던 복내당, 혜경궁 홍씨의 침전인 장락당, 정조가 활을 쏘던 득중정을 비롯해 낙담헌, 노래당, 유여택, 외정리소 등이 있다. 화성행궁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조선시대 행궁 가운데 가장 크고 아름다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병원이 들어서면서 파괴되었고, 봉수당 북쪽의 낙남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건물이 허물어져 지금의 행궁은 10여 년 전에 복원된 것이다.
팔달문. 성문 밖 옹성을 세워 성문을 한번 더 보호함은 물론 적이 불을 지르면 옹성 위 다섯 개의 물구멍에서 물이 흘러나와 불을 끄도록 설계했다.
서장대. 아직도 정조의 기품이 배어 있는 채로 위풍당당 팔달산 정상에 우뚝 솟아있다.
서장대에서 내려오면서 바라다본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풍경. 동그랗게 쌓아올린 공심돈은 수원화성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조선 성곽 중 유일한 화성 공심돈
서장대에서 서문인 화서문 그리고 정문인 장안문을 향해 걷는다. 서장대에서 화서문으로 내려오는 길은 경사가 급하지 않고 숲길처럼 이어져 있어 더운 날 산책에도 부담이 없다. 그러나 화서문 구간을 지나서는 그늘이 없어 한여름에 걷기에는 다소 고역이다. 다행인 것은 중간쯤 큰 나무 한그루가 그늘을 만들어주고 쉬어가기를 권한다. 잠시 않아 여유를 갖고 성곽길과 인접해있는 마을을 살펴본다. 담벼락마다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져 있어 정답다. 화서문 앞에는 서북공심돈이 있다. 화성은 성곽을 따라 모두 48개의 시설물이 있는데 그중에 공심돈은 조선시대 성곽에서 유일하게 화성에만 있는 건축물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속이 텅 비어 있는 돈대’라는 뜻으로 성벽을 돌출시켜 그 위에 돈대를 쌓고 꼭대기에는 군사들이 머물 건물을 올렸다. 돈대에는 층마다 총과 포 구멍을 뚫었다. 화성에는 3개의 돈대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남공심돈은 사라지고 없고 현재는 서북공심돈과 동북공심돈이 남아 있다. 서북공심돈은 13미터 높이로 벽돌로 안이 네모난 통 모양의 구조물을 만들어 내부를 3개 층으로 지었다. 각 층에는 화포로 공격할 수 있는 구멍이 특징이다. 창룡문 인근에 위치한 동북공심돈은 화성의 건축물 중 유일하게 원형으로 세워진 건축물이다. 바닥에서부터 원통형으로 세워 꼭대기에 누각이 올라가 있다. 3층 내부에는 둥근 벽을 따라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소라각’이라 부르기도 한다. 누각에 오르면 화성이 한눈에 잡힌다.
수원화성의 정문인 장안문.
한양에서부터 아버지 사도세자를 참배하러 오는 첫 문인 장안문을 북문임에도 정조는 정문으로 삼았다.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은 방어시설이라기 보다 아름다운 풍광에 지은 누정 같다.
화성 성곽길의 백미 장안문-화홍문
장안문은 화성의 정문이다. 대부분 성은 남문이 정문이지만 화성은 북문인 장안문이 정문이다. 이유는 정조가 한양에서 출발해서 올 때 가장 먼저 성안으로 들어오는 문이 북문이었기 때문에 북문을 정문으로 삼았다. 장안문은 국보 1호 숭례문과 유사하지만 규모면에서도 크고 성문의 장점만을 취해 지은 것으로 조선시대 성문 중에서 가장 잘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화성의 성문은 일반 성문과 달리 성문 밖을 둥글게 성벽을 다시 쌓아 성문을 보호하는 ‘옹성’이 출입문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옹성 위에 물구멍을 5개 만들어 적군이 성문에 불을 지르면 물을 흘려서 불을 끌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정약용이 중국의 병서를 참고해 설계한 것으로 장안문과 팔달문에만 있다고. 명칭은 ‘오성지’이다. 장안문에서 북동적대, 북동포루를 지나면 화홍문에 닿는다. 화홍문은 북수문다리 위에 세워진 누각이다. 방화수류정과 어우러져 방어시설이라기 보다 아름다운 풍광에 지어진 누정 같다. 7개의 무지개 모양의 수문은 각기 다른 크기로 설계해 수위를 효과적으로 조절하도록 했다. 방화수류정은의 원래 이름은 동북각루로 적의 동태를 살피는 감시 기능을 하던 곳인데 경관이 뛰어나 방화수류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꽃을 찾는다는 방화(訪花), 버드나무를 쫓는다는 수류(隨柳)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곽길은 이어서 동장대(연무대)로 창룡문으로 다시 팔달문으로 이어진다. 역사가 흐르듯 성곽길은 둥글게 도시를 감싸고 계속 이어진다. 수원화성은 걷는 만큼 보인다. 성곽길을 구석구석 걷다 보면 역사가 보이고 선인들의 지혜가 보인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에 대한 내 삶의 답이 보인다.
수원화성 관광안내
수원문화재단 www.swcf.or.kr
전화번호 031-290-3600
관람시간
• 하절기(3월 ~ 10월) : 09:00 ~ 18:00
• 동절기(11월 ~ 2월) : 09:00 ~ 17:00
문화관광해설
• 4인 이상 신청 가능. 수원화성 관광안내소 현장신청
• 단체 20인 이상은 방문일 7일전 온라인 신청
관람코스
• 1시간 코스
화성행궁-화령전
서장대-화서문-장안문
연무대-방화수류정-장안문
• 1시간 30분 코스
팔달문-서장대-화서문
서장대-화서문-장안문-방화수류정
연무대-방화수류정-장안문- 화서문
• 2시간 코스
팔달문-서남각루-서장대-화서문-장안문
연무대-방화수류정-장안문-화성행궁
장안문-화서문-서장대-화성행궁
• 3시간 코스
화성행궁-서장대-화서문-장안문-방화수류정-창룡문-봉돈-재래시장
팔달문-서장대-화서문-장안문-방화수류정-창룡문-봉돈-재래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