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힐링이 필요한가?
힐링(Healing)은 몸과 마음에 대한 치유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외래어가
‘스트레스’라고 한다.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가 있으면 입에 그 말이 붙어버린 셈이다. 치열한 경쟁과 불안한 미래 속에서 스트레스의 중압감은 더 커지고 있고, 더 이상 혼자 해소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누적된 스트레스와 상처를 참아내던 임계점을 넘어선 것이다. 개인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임계점이다. 더 이상 개인의 노력으론 해결되지 않을 만큼 어려운 경제위기 앞에서 청년은 취업을, 중년은 퇴사를, 노년은 생존을 심각하게 고민한다. 그 고민을 터놓을 상대가 없고, 그걸 위로받을 방법이 없는 사람들처럼 가혹한 상황도 없을 것이다. 바로 힐링이 필요한 시점이자 힐링을 상품화해서라도 소비해야 할 이유인 셈이다. 그만큼 우리가 힘들다는 얘기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엔 늘 마음치유에 대한 트렌드가 등장한다. 1997년 IMF 구제금융으로 한창 어려워진 시점 전후로도 등장했었다. 그땐 실패자 캠프 같은 것도 만들어지고, 경제 위기 앞에서 어려워진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고 위안하는 콘텐츠가 쏟아져 나왔었다. 금모으기 운동 같은 것도 사회적으론 위기를 극복할 하나의 치유책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장롱 속 금을 꺼내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한 것은 애국 때문이 아니라 고통분담을 통해 우리모두 잘살아보자는 재기이자 위안의 선택이었다. 1988년 올림픽을 치른 이후 들떠있던 시기에서도 등장했다. 모두가 축제처럼 산업화 성장을 바라볼 때도 그림자는 짙었었다. 그때는 명상이 화두였다. 어려운 시기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한창 인기였었다.
일러스트. 최경란
진짜 힐링은
내 얘길 들어줄 사람에게서 찾는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거나 밥 사먹도록 돈벌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너도 배고프고 나도 배고프고 우리 모두 고프니 잘 참아보자며 위로하거나 딴 생각하면 배고픈건 잊어먹는다고 하거나 가끔은 배도 고파봐야 진짜 인생이라고 얘기하는걸 우린 힐링이라고 하는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만큼 요즘 사회가 소비하는 힐링 트렌드는 진짜 문제에 대한 해결보다는 그걸 살짝 회피하며 달콤한 위로만 소비시키고 있다.
우린 누군가에게 마음을 터놓을 기회가 부족하다. 사람과의 관계가 주는 결핍이 상처가 되고 위로받아야 할 스트레스가 된다. 그래서 소셜네트워크에 열광하고 반려동물을 키운다. 누군가와 쉽게 연결되어 쉽게 얘길 주고받는 대상을 찾기엔 소셜네트워크만한 게 없고, 반려동물을 보듬어주면서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고 외로움도 달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에겐 소셜네트워크에서 만난 가상의 누군가가 옆에 있는 가족이나 동료보다 더 쉽게 마음을 터놓을 대상이 된다. 그리고 우리가 주변에서 가족이나 친구 중에서 멘토를 찾지 못하니 사회적인 명사를 멘토로 바라보게 되어, 위로를 주는 책과 토크 콘서트를 적극 소비한다.
요즘 힐링은
모두 소비와 연결되고 있다
뭐든 트렌드가 되면 마케팅에선 가만두지 않는다.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소비로 연결시키고 있는데, 힐링도 이미 대표적인 소비 유인도구가 되어버렸다. 광고에선 위로가 넘쳐나고, 방송에서도 속마음 터놓고 눈물도 흘리며 위로도 하는 식의 콘텐츠가 확산된다.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결국은 성공한 이들의 책과 토크를 보며 대리만족이자 대리위안을 받는 이들을 공략하는 출판시장과 토크 콘서트들이 줄지어 쏟아져 나온다. 가장 치열한 곳은 제품과 서비스 분야의 마케팅이다. 힐링이 섹시를 눌렀다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로, 섹시한 모델이 등장하던 술 광고에서 친구처럼 이야기를 들어주며 위로해줄 것 같은 이미지로 바뀌었다. 힐링은 교육, 콘텐츠, 여행, 식품, 취업, 금융, IT 등에 이르기까지 영역의 제한이 없을 정도로 전방위적인 마케팅 코드로 쓰여진다. 물질 없이 마음만으로 행복을 누리긴 쉽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기에 힐링도 곧 소비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요즘 다가온 힐링이라는 것이 모두 돈이 들어가는 힐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물질과 별개일 수 없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현대인의 진짜 힐링이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기업은 마케팅을 통해 우리를 계속 힐링으로 홀리고 있고, 우린 거기에 홀려 힐링이란 상품과 서비스를 계속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진짜 힐링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아무리 뜨거운 트렌드도 식을 시기는 온다. 트렌드는 그 필요성이지 욕구를 다해서 소멸하는게 아니다. 트렌드를 넘어 메가트렌드가 될 힐링, 그만큼 우리에겐 아직 위로해야 할 상처와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이다.